디자이너 로베르트 클로스. 그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디자이너 / 기아유럽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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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e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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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르첼 셰베슈첸
Q1.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로베르트 클로스Robert Klos입니다. 2017년 기아유럽디자인에 입사해 약 6년간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근무했어요. 지금은 퓨처 디자인팀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Q2.
지금의 커리어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아주 어릴 때부터 자동차, 기차, 자전거를 참 좋아했어요. 몇 살인지 기억도 안나네요. 기계적인 면모를 띤 움직이는 사물에 항상 관심을 빼앗겼죠. 아파트 창밖을 내다보며 저 멀리 지나가는 열차의 화물칸 갯수를 세곤 했다니까요. 동네에 처음 보는 차가 지나가거나, 큰 트럭을 발견할 때면 뛸 듯이 기뻐했던 경험도 기억나네요. (웃음) 또 다른 취미는 그림 그리기였어요. 건축물이나 아파트 설계도를 그렸는데, 건축사무소에서 일하시던 할머니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어요. 물론 자동차도 자주 그렸습니다! TV에 나온 F1 자동차를 따라 그리곤 했죠.
제가 디자인에 관심을 가진 특별한 계기가 있어요. 14살 때 제 사촌이 제품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었어요. 그가 만든 작업물을 본 순간 깨달았죠. ‘내가 하고 싶은 건 바로 이런 거였어!’ 저는 제품 디자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릴 적부터 늘 제 넋을 빼놓던 자동차를 디자인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어요. 하지만 목표를 이루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어요. 당시 제가 살던 폴란드 바르샤바에는 자동차 회사가 없었고,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할 길도 묘연했어요. 그래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공부를 했답니다. 시간이 흘러 2017년부터는 기아유럽디자인에서 일할 수 있었죠. 지금 이렇게 《기아 디자인 매거진》과 인터뷰를 하는 거 보니, 결국 꿈을 이룬 게 아닌가 싶네요. 하하.
Q3.
CV를 보니 2017년 2월에 인턴으로 입사해 6월까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했네요. 인테리어 디자인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인테리어 디자인은 단순히 스타일을 논하는 분야가 아니에요. 인간과 기계 사이를 어떻게 연결한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해요. 상호작용을 고려하면서 인터페이스도 살펴야 하고, 인체공학적인 측면도 놓칠 수 없죠. 말 그대로 사용자를 둘러싼 ‘안락한 실내(cocoon)’를 만드는 일인데요. 인테리어 디자인은 유저의 기분을 좌지우지할 수 있어요. 좋은 인테리어 디자인은 탑승자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맡죠. 그래서 고민해야 할 지점이 많지만, 그렇기에 늘 흥미로워요. 사실 저는 학교에서 자동차 디자인이 아니라, 제품과 그래픽, 그리고 산업 디자인을 공부했는데요. 그래서인지 인테리어 디자인에 더욱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혹시 인테리어 스케치를 한 번이라도 해보셨나요? 관심이 생긴다면 꼭 해보길 추천할게요. 정말 흥미롭답니다. (웃음)
Q4.
지금 기아유럽디자인 퓨처 디자인팀에서 일하고 있어요. 주로 어떤 업무를 하시나요?
아, 제 업무는 일급비밀에 해당하기 때문에 말씀드리기 참 곤란한데… (웃음) 간단히 설명하자면 미래를 예측하고 인류와 사회가 원하게 될 니즈를 미리 탐색하고 준비해요. 사회와 지속가능성, 인류의 행복을 위한 미래 시나리오를 연구하죠. 모빌리티와 관련된 내용도 다루지만, 이를 기반으로 더 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Q5.
기아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을 기억하세요?
오, 물론이죠. 제 인테리어 스케치가 ‘이매진 바이 기아Imagine by Kia’의 쇼카에 선정됐었어요. 당시 갓 입사한 주니어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설레는 한편 무섭기도 했어요. 상상한 게 현실이 되는 순간을 직접 마주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죠. 경험 많은 동료들의 지원과 훌륭한 팀워크 아래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어요. 최근 참여한 콘셉트 카 인테리어 작업도 기억에 남아요. 운 좋게도 한국을 여러 번 방문할 수 있었거든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한국이란 나라를 경험하는 즐거운 순간이었습니다.
Q6.
지난 2021년 새로운 기아 디자인 철학 ‘Opposites United(OU)’가 발표됐을 때 제일 처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좀 헷갈렸어요. 기존에 알고 있던 기아의 디자인 철학과는 꽤나 달랐거든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었어요. OU가 단순히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스타일링을 넘어, 훨씬 더 고차원적이고 종합적인 디자인 가이드라는 사실 말이죠. 덕분에 디자인을 대하는 사고가 더욱더 유연해지고, 창의적인 해석이 가능해진 것 같아요.
Q7.
폴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등 여러 나라에서 생활했어요. 이런 성장 환경과 OU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여러 문화권을 경험한 덕분에 세상을 보는 시야가 더욱더 넓어졌어요. 특히 제가 나고 자란 폴란드는 대학교를 다닌 독일과 오스트리아와 비교해 사람들의 사고방식부터 경제 상황, 심지어는 풍경도 달랐어요. 그렇게 다른 문화를 마주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디자이너는 현실을 반영한 디자인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여러 나라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디자인을 시도할 수 있었어요. 다양한 시각으로 결과물을 살펴보며 ‘혹시 내가 지금 우물 안에서 허우적대는 건 아닐까?’ 스스로 돌아볼 수 있었죠.
그리고 폴란드는 OU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어요. 여러모로 한국과 닮은 점도 많고요. 폴란드 역시 큰 전쟁과 식민 지배를 겪었고, 이후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뤘거든요. 그래서 폴란드에는 전통과 기술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큰 회사는 없고, 외국 투자에 의존하는 편이지만 발전을 거듭하면서 수많은 스타트업이 등장했어요. 제 고향인 바르샤바를 방문할 때마다 한층 발전하는 모습에 놀랄 정도예요.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한 게임 〈위처The Witcher〉 시리즈도 폴란드에서 태어났죠.
전 세계적인 인기를 기록한 게임 〈위처〉 일러스트레이션. © CD PROJEKT RED
Q8.
OU가 센터 구성원에게 공유된 지 벌써 3년이 다 됐어요. 개인적으로 OU를 어떻게 해석하나요?
OU는 상반된 가치가 공존을 꾀하며 상호보완을 통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디자인을 지향한다고 생각해요. 날렵하고 미래지향적인 익스테리어와 집처럼 편안한 인테리어 디자인이 만날 때, 복잡한 기술과 친근한 상호작용이 어우러질 때 OU의 가치가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저는 이유 있는 즐거운 경험을 선사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요.
Q9.
동료와 일하다 보면 OU에 대해 각자 다양하게 해석할 것 같은데요. 기억에 남는 의견이 있을까요?
3D 모델링을 진행할 때였어요. 외관과 내관의 3D 모델링이 서로 어울리지 않아서 다들 한숨을 쉬며 고민에 빠졌는데요. 그때 어느 친구가 “어라, 이거야말로 OU적인 디자인 아닌가요?”라고 말해서 모두가 순간 빵 터졌어요. (웃음) 그의 유머 덕분에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여러 아이디어를 체크하며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답니다.
Q10.
OU에 기반한 창의적 사고를 ‘OU적 사고’라고 정의할 때, OU적 사고가 디자이너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세요?
OU적 사고를 되뇌며 디자인적으로 흥미로운 대비를 찾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요. 덕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게 되죠. 또한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고,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 같아요. 실무에서도 저는 처음 아이데이션을 할 때 OU적 사고를 기반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상을 결합해 봐요. 그리고 이를 바로 결과물로 만들어 안전지대(comfort zone)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합니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OU적 사고를 활용할 때 늘 흥미로운 결과물이 탄생했던 것 같아요.
Q11.
OU가 떠오르는 아이템을 소개해달라고 부탁드렸는데요.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요?
제가 아끼는 자전거를 소개하고 싶어요. 2011년 구입해서 폴란드, 독일, 오스트리아를 거쳐 다시 독일에 오기까지 저와 늘 함께 한 친구입니다. 서비스 센터에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해서 아주 만족해요.
Q12.
자전거는 어떤 면에서 OU를 떠올리게 하나요?
자전거는 ‘자유’와 ‘모빌리티’라는, 매우 복잡한 주제에 대한 아주 간결한 해답이라고 생각해요. 자전거는 사용하기에 간편하고, 다른 이동 수단보다 가볍기 때문에 매우 실용적인데요. 출퇴근부터 주말에 공원 갈 때도 언제든 쉽게 이용할 수 있죠. 버스나 기차에 실어 나를 수도 있고요. 그래서 자전거는 ‘적을수록 풍요롭다(Less Is More)’라는 표현을 상기시키는 훌륭한 예시라고 생각합니다. 자전거를 보고 있으면, ‘행복에는 너무 많은 것이 필요 없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그리고 저와 함께한 이 자전거의 프레임은 무려 30년이 넘는 세월을 버텼답니다. 나이를 많이 먹었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친구예요.
Q13.
이 외에도 다양한 아이템이 당신의 OU 목록에 있을 것 같은데, 공유해주시겠어요?
반려묘 두 마리를 꼭 소개하고 싶어요. 남매 사이인데 생김새부터 성격까지 정반대예요. 첫째는 덩치가 크고, 성격이 순하며, 항상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어요. 반대로 둘째는 첫째보다 몸집이 훨씬 작아요. 매우 까다로운 성격이면서 동시에 시끄럽고, 늘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죠. 하지만 두 고양이 모두 제 삶에 정말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존재예요. 혹시 고양이 두 마리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계정 @cocobaika에서 꼭 살펴보세요!
로베르토 클로스의 반려묘 코코Coco와 바이카Baïka.
Q14.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보통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커피를 내려 마셔요. 고양이 밥을 주고, 간단히 샤워를 마친 후 아침을 먹습니다. 가끔은 체력 단련을 위해 헬스장에 가요.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마음이 상쾌해지더라고요. 하루를 살아가는 데 좋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죠.
Q15.
평소 즐기는 개인적인 취미에 대해 알려주세요.
저는 영화 보는 걸 좋아해요. 특히 기발하고 색다른 영화를 좋아해서,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감독의 영화를 자주 봅니다. 그가 창조한 독특한 세계 속 캐릭터를 들여다보고, 기발한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는 일은 언제나 즐거워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2005)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2022)도 추천하고 싶어요! 더불어,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영화도 좋아합니다. 인간의 본성과 사회 문제를 꼬집는 영화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잖아요. 〈서던 리치: 소멸의 땅(Annihilation)〉(2018), 〈기생충〉(2019), 〈더 플랫폼The Platform〉(2020) 같은 영화가 대표적인 예일 것 같아요. ‘만약 내가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 빠진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고민의 시간을 만들어 주는 영화랍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영화 포스터. © A24
〈서던 리치: 소멸의 땅〉 영화 포스터. © Paramount Pictures
Q16.
디자이너에겐 창의력 고갈을 막기 위한 휴식이 필수잖아요. 혹시 노하우가 있으면 알려주세요.
저는 가능한 한 아주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요. 새로운 자극을 받으면 창의력이 다시 샘솟는 편이거든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문화를 경험하고, 낯선 장소를 거닐며 시야를 넓히려고 노력합니다. 만약 여행이 여의치 않는 상황이라면, 직장에서라도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요. 예를 들어,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배우거나, PT를 준비할 때 새로운 템플릿을 써보는 거죠. (웃음)
Q17.
혹시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디자이너가 있나요? 어떤 점이 당신의 마음을 흔들었나요?
좋아하는 디자이너 대부분은 제 지인들이에요.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도전을 하는지 가까이서 지켜보면 존경심이 들어요. 저도 자극을 받아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되죠. 특히 고향 친구 하니아Hania와 아가타Agata는 특별해요. 두 사람은 지난 2015년 가죽 제품 브랜드 ‘발라간BALAGAN’을 만들었는데요. 처음 회사를 시작할 때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두 사람이 소비자에게 제품의 가격을 책정하는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했거든요. 생산 비용이 60유로인 가방을 200유로에 판매하는 사실을 아는 순간 손님이 떨어져 나갈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어요. 두 사람의 행보에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죠. 현재 두 사람은 인기에 힘입어 가죽을 대체하는 비건 제품을 만드는 데 몰두 중이에요. 주변 영세 기업과 상생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지역 사회에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존경하는 또 다른 디자이너, 마르친 루사크Marcin Rusak도 언급하고 싶네요. 바르샤바에서 함께 공부하며 알게 된 사이인데, 그는 자신을 예술가이자 다학제적 디자이너라고 소개해요. 마르친은 꽃 폐기물을 재료 삼아 재해석한 제품과 아트 오브제로 주목받았어요. 관심 있다면 그의 웹사이트(www.marcinrusak.com)를 꼭 방문해 보시길 바랍니다.
Q18.
한 사람의 디자이너로서, 당신의 디자인 철학이 궁금합니다.
저는 ‘기쁨은 기능을 따른다’라는 말을 믿어요. 좋은 디자인은 우리 삶을 편리하게 만들기에, 내 디자인이 정말 유용한지 끊임없이 고민하곤 합니다. 사람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점을 짚어내어 일상에 편리함을 더하는 일이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다 아는 아이폰이 좋은 사례 같아요. 불과 15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휴대전화 버튼이 더 커지면 편리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잖아요. 그런데 아이폰은 도리어 버튼을 없애고 터치스크린을 적용했죠. 덕분에 상상하지도 못한 편리함이 펼쳐졌지요.
Q19.
최근 관심을 끄는 게 있나요?
이미지 생성 AI를 주목하고 있어요. 아이디어를 몇 초 만에 시각화할 수 있으니까요. 디자이너의 작업 방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생성형 AI가 얼마나 더 발전할지, 설레면서도 두렵습니다. 
Q20.
10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면요?
그때도 여전히 행복하게 일하고 있지 않을까요? (웃음)
Double D
Double D는 2012년 설립 이후 브랜딩, 패키지, 편집, 광고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다. 2021년 기아의 비주얼 아이덴티티 리뉴얼을 담당해 전용 서체 및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기아 디자인 매거진》의 태동부터 함께 고민하면서 현재 기획과 디자인을 맡고 있으며, 창작자를 위한 온라인 매거진 《비애티튜드》를 발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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