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Vol.11
선입견을 넘어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 드랙 아티스트 나나영롱킴
‘여장남자’로 치부되며 소수의 인원이 향유하던 한국의 드랙 문화가 새로운 흐름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드랙 문화에 대한 다양한 정의와 카테고리가 등장하며 드랙 아티스트는 다양한 장르로 확장을 시도 중입니다. 이런 새로운 지형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을 대표하는 드랙 아티스트, 나나영롱킴입니다. 드랙 아티스트로서 나나영롱킴은 표현의 자유로움과 장르의 다양성을 소화하며 자신의 신념을 몸소 증명하고 있습니다. 바로 ‘드랙이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행위’라는 믿음입니다. 드랙 문화는 세상 모든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자유를 부여하는 매개와도 같습니다. 《기아 디자인 매거진》은 나나영롱킴을 만나 드랙을 둘러싼 고정관념을 바꾸고, 우리 시대를 더욱더 풍요롭게 만드는 원동력으로서 드랙 문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하는 그의 관점과 태도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Cred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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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닝오브
연출
미닝오브
촬영
김본희, 서시온, 홍경연
편집
김본희, 정경희
About the Artist
나나영롱킴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드랙 아티스트다.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배우의 길을 모색했지만, 남녀의 고정된 성역할과 로맨스가 주를 이루는 관습적 연기에서 한계를 느끼던 그는 우연히 드랙 아티스트를 조명한 영화 〈프리실라〉와 〈헤드윅〉을 접했고, 영화에 등장하는 드랙 아티스트의 화려한 의상과 소품에 마음을 빼앗기며 드랙 문화에 빠져들었다. 그때부터 현재까지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기존의 클럽 무대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문화 예술 장르에 도전하며 ‘성소수자들만의 문화’라는 드랙의 선입견을 허무는 데 지속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브라운아이드걸스, 마마무, 박효신, 유노윤호 등 다양한 K팝 아티스트와 협업했고, 럭셔리 브랜드 베르사체, 모스키노, 로에베, 루이 비통 등의 러브콜을 받았으며, 코스메틱 브랜드 헤라HERA의 캠페인 모델로 활동하며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발매했다. 그는 드랙을 주제로 한 개인 다큐멘터리 〈NA, NA〉를 제작하고, 한국 드랙 아티스트로는 유례없이 사진전을 여는 등 드랙 문화의 확장성을 계속 증명하는 중이다.
‘드랙drag’은 사회가 부여한 정의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모습과 행위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문화를 일컫는다. 우리가 어림잡아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유서 깊은 역사를 갖는데, 드랙의 어원을 설명하기 위해서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희곡을 쓰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다. 여성이 무대에 서지 못하던 당시에는 남성이 극 중 여성의 역할을 연기했는데, 이때 남성이 입은 거대한 드레스 자락이 ‘끌린다(drag)’라고 말했던 것에서 따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1930년대 이후 드랙은 LGBTQ+ 문화와 결합한다. 그때부터 시스젠더 게이 남성이 화려한 메이크업과 의상을 통해 ‘여성성’을 부각하는 드랙퀸을 선보이며 드랙 문화를 이끌어 왔지만, 시간이 흐르며 오늘날 드랙의 양상은 점점 다채로워지고 있으며, 아티스트마다 드랙에 대해 내리는 정의 또한 다양하다.
브와디스와프 차후르스키, 〈햄릿 앞의 배우들〉, 1872-1875. 바르샤바 국립미술관 소장.
에드윈 오스틴 애비, 〈리어왕 1막 1장〉, 1898.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드랙을 둘러싼 여러 해석과 시도의 기저에 깔린 것은 드랙이 지닌 예술성이다. 드랙은 표현력과 창의성을 동원한 움직임을 통해 성규범에 따라 부여된 사회적 역할을 통합하고, 금기를 깨면서, 공연 예술의 저변을 넓혀 왔다. 무대에서 시작한 담론을 예술적 창조 행위로 성장시킨 드랙 문화는 예술의 적통으로 여겨지는 미술기관에서도 자신의 영역을 구축 중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동시대 미술관인 휘트니 미술관이 역량 있는 신진 작가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지난 2017년 ‘퍼피스 퍼피스Puppies Puppies’는 자유의 여신상 의상을 입고 대중 앞에 서는 드랙 퍼포먼스, 〈Liberty〉를 선보이고, 세계적인 공공미술 기관인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Hayward Gallery가 2018년 기획전 《DRAG: Self-portraits and Body Politics》을 통해 저항을 위한 정치적 도구로서의 드랙의 의미를 살펴본 것은 드랙이란 시류를 다루는 다양한 예일 것이다.
Puppies Puppies, 〈Liberty〉, 2017. 휘트니 미술관 소장.
Cindy Sherman, 〈Untitled #360〉, 2000, Courtesy of the Artist, Sprüth Magers, and Metro Pictures. © Cindy Sherman
우리 문화 속에서도 드랙은 꽤 양감 있는 역사를 가진다. 나나영롱킴이 드랙 공연을 펼치는 ‘트랜스’는 오픈 30주년이 다 돼간다. 그런데도 드랙 하면 최근에 생긴 재미있는 문화로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그도 그럴 것이 드랙 문화가 수면 위로 본격적으로 떠오른 지 6~7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나영롱킴이 올해로 18년 차 드랙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밝힐 때마다 사람들이 놀라워하며 나이를 되묻는 상황이 종종 발생할 정도로, 우리 사회는 드랙을 이제 막 태동기를 지난 문화로 간주하기 일쑤다. 18년 전부터 드랙 아티스트로 활동했다는 말은 곧 지금처럼 빛을 보기까지 10년 넘는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다는 뜻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나영롱킴은 드랙 문화에 대한 선입견을 불식시키고 더 많은 사람과 향유하기 위해서 어떤 행보를 보였을까.
롤링홀에서 열린 ‘2023 트랜스 콘서트’의 한 장면. © 나나영롱킴 인스타그램
콘서트에 출연한 모든 아티스트가 ‘Proud Mary’를 끝 곡으로 공연의 대미를 장식했다. © 하이테이블 스튜디오
“초창기에는 ‘나나영롱킴. 댄서, 싱어, 퍼포먼서’라고 적은 명함을 들고 돌아다니면서 파티가 열리면 불러달라고 말했어요. 드랙쇼 클럽에 고정으로 나가 공연을 하는 방법이 가장 쉬웠지만 이 재미있는 드랙쇼를 우리만 즐기긴 싫었어요. 어떻게든 외부에 알리고 싶었죠. 지금 보면 패기가 넘쳤어요.”
— 드랙 아티스트 나나영롱킴
당시 드랙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고, 스마트폰이나 소셜 미디어도 없던 시절이었다. 낯선 이에게 드랙 문화를 알리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명함 뿌리기라니,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확신과 애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시도다. 하지만 패기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었다. 드랙은 화장과 의상, 액세서리 등을 통해서 매력적인 시각 이미지를 전달하는 게 아주 중요한 행위 예술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공연에 설 수 있을 만큼 꾸미기 위해서는 드랙으로 번 돈 중 절반을 다시 드랙을 준비하는 데 써야 했다. 한 달에 서너 번 있는 공연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드랙을 지속하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나나영롱킴은 생활을 영위하는 일부터 해결하면서 돈을 모아야겠다고 결론 내리고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전업 직장인으로 생활한 지 3년 정도 되었을 무렵, 나나영롱킴은 온라인에서 드랙 아티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장면을 목격한다. 미국의 유명 드랙 서바이벌 프로그램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RuPaul’s Drag Race〉 시즌 8에 ‘김치’라는 이름으로 출연한 한국계 미국인이 Top 3에 들면서 한국에서 화제를 모은 것이다.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 드랙 아티스트 김치의 활약은 나나영롱킴에게 다른 자극으로 다가왔다. 드랙 아티스트로의 복귀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야근을 마치고 우연히 회사 책상 모니터에 비친 자기 모습을 마주하면서, 자기가 소망하는 자리는 사무실 책상이 아니라 무대라는 결론을 얻는다. 그는 그날로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드랙 신에서 활동을 재개한다.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시즌 8에 출연한 한국계 미국인 김치 © Logo
한복으로 드랙을 한 김치의 모습 © 김치 인스타그램
나나영롱킴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자기 영역을 구축하고 드랙 아티스트로서 대중과 호흡하는 데 성공한다. 초창기에 비해 사뭇 다른 양상이 펼쳐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소셜 미디어의 역할에 주목한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고 많은 사람이 소셜 미디어에 익숙해지면서 이제 모두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누구나 원한다면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찍어 업로드하며 수많은 사람에게 송출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것이다. 이런 상황은 나나영롱킴을 비롯한 드랙 아티스트가 자신의 가능성을 아낌없이 표현하며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는 계기로 기능했다. 그런데 정말 소셜 미디어가 모든 것을 바꾼 걸까?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삶을, 자기 인생을 살잖아요. 자기가 주인공이면 화려해도 되지 않을까. 새드보다는 해피엔딩, 안 그래요?”
— 드랙 아티스트 나나영롱킴 (헤라 2021 ‘I AM CAMPAIGN’ 중에서)
코스메틱 브랜드 헤라의 ‘I AM CAMPAIGN’ 영상에서 나나영롱킴은 우리 모두가 자신을 위해 각자의 삶을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길 제안한다. 커머셜 광고의 문법 안에서 던지는 문안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대중이 그를 바라보며 무엇을 기대하고 충족할 수 있는지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평소 모습에서 벗어나 여성성과 남성성 모두를 탐험하고 실험하는 드랙은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교란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진정한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싶지만, 사회의 시선이 두려워 선뜻 실행하지 못한 많은 이에게 해방감과 통쾌함을 선사하는 매개 역할을 맡는다. 규격화된 사회에서 해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대중은 자연스럽게 드랙 문화에 호기심을 갖게 되고 드랙 문화를 향유하고 소비하는 자발적인 구성원으로 변한다. 드랙 문화가 21세기 들어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얻게 된 데에는 이런 카타르시스의 성취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밥상을 차려줘도 못 먹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나나영롱킴의 성공은 대외적인 상황이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가 아니다. 그가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은 머릿속으로 생각한 건 어떻게든 빠르게 실현하는 실행력에 있다. 스스로 고백하길 자신의 가장 큰 무기라고 지칭하는 실행력은 방대한 활동 영역에서 잘 드러난다. 무대 공연을 차치하고도 나나영롱킴이 활동하는 범주는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뮤직비디오, 브랜드 캠페인 모델, 광고 등 다른 이에 비해 굉장히 넓은 편이다. 특히 그는 작년과 올해 한국의 드랙 아티스트로서 유일무이하게 전시회까지 열었다. 작업의 피사체 역할 뿐 아니라 아이디어를 내고 콘셉트를 잡고 촬영을 구성하고 모델 캐스팅과 스타일링까지 도맡는 총괄 디렉터로 전시를 준비하고 개최했다. 그가 이처럼 기존의 역할에서 벗어나 드랙 아트의 확장성을 증명하며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었던 동력은 어디서 기인할 걸까? ‘드랙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라고 믿는 그의 태도와 관점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드랙을 소재로 한 개인 다큐멘터리 〈NA, NA〉 포스터 © 텀블벅 프로젝트 페이지
리메크 × 캣워크 페스타 런웨이 메인 스테이지 공연 모습  © 나나영롱킴 인스타그램
“거리를 둘러보세요. 실제 드랙 퀸 같은 차림으로 거리를 걷는 여성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드랙 아트에서 중요한 건 여장이 아니에요. 인물, 동물, 사물 등 세상 무엇으로든 변신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 드랙 아티스트 나나영롱킴
드랙에 대한 관심이 대중문화의 수면 위로 올라온 상황에서 나나영롱킴은 주어진 상황을 더 멀리 내다본다. 과장된 화장과 가발, 화려한 액세서리를 걸치고 굴곡 있는 몸매를 드러내는 방식만이 드랙 아트라고 생각하는, 소위 ‘여장남자’에 대한 고정관념이 여전히 팽배하기 때문이다. 만일 여장이 드랙 아트의 전제가 아니라면, 무엇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까? 그는 행위자가 상상하는 그 어떤 모습으로든 분할 수 있는 자유로움에 주목하길 당부한다. 아티스트가 욕망하는 어떤 것이든 자유롭게 표현하는 무한한 가능성이 그가 생각하는 드랙 예술의 요체인 셈이다.
지난해 치른 첫 번째 개인전의 콘셉트는 애니메이션 〈은비까비〉에서 영감을 받아 〈더 스포트라이트The Spotlight〉 연작과 〈옐로우 맘바Yellow Mamba〉 연작으로 구성했다. 전자가 정석대로 일을 처리하는 은비라면, 후자는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고 일을 처리하는 까비로 서로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를 위해 앞에서는 풍성한 헤어 스타일링 등 과거의 드랙 하면 상상하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분했고, 뒤에서는 화려한 노란색 드레스에 검은 복면을 쓰고 검은색 권투 장갑을 끼는 등 현재에 맞게 진화하는 드랙의 방향성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유구한 전통을 가진 과거의 드랙과 새로운 예술로 진화하는 동시대 드랙의 타임라인에서 나나영롱킴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선택해 드러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사진으로 증명한다. 〈더 스포트라이트〉 속 짙은 화장과 풍성한 헤어, 〈옐로우 맘바〉 속 얼굴 전체를 뒤덮은 새까만 가면, 그 무엇도 자아를 감추는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더욱더 과감하게 드러내는 도구다. 제한 없는 표현을 위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드랙 아트의 가능성을 이해하고 자신의 활동에 반영해온 나나영롱킴의 유연한 시각은 자신을 냉철하게 인식하는 면모에서도 엿볼 수 있다.
나나영롱킴, 〈더 스포트라이트〉 연작, 2022. 제공: 더 트리니티 갤러리
나나영롱킴, 〈옐로우 맘바〉 연작, 2022. 제공: 더 트리니티 갤러리
“사람들은 종종 페르소나와 제 자신 사이에 괴리감을 느끼지 않는지 묻곤 해요. 하지만 사실 저는 페르소나를 설정하지 않아요. 메이크업을 하고 화려한 의상으로 변신한 존재도 나나영롱킴이고, 그렇지 않은 자연스러운 상태 역시 모두 나나영롱킴입니다. 본질적인 차이가 없어요.”
— 드랙 아티스트 나나영롱킴
드랙 아티스트를 설명할 때 ‘페르소나persona’라는 단어를 자주 듣게 된다. 고대 그리스에서 연극을 올릴 때 배우가 쓰던 가면에서 기원한 페르소나는 개인이 밖으로 표출하는 공적인 얼굴로, 실제 성격과는 다르게 타인의 눈에 비치는 모습을 의미한다. ‘드랙 아티스트는 페르소나를 구축한다’라는 인식이 지배적일 정도로 많은 드랙 아티스트는 페르소나를 설정한다. 실제로는 낯선 사람에게 말을 잘 걸지 못할 정도로 수줍음이 많더라도 당당한 성격의 페르소나를 구축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를 위해서 페르소나의 설정은 매우 유용하다. 하지만 무대에서 내려오고 일상에서 마주하는 본연의 모습과 페르소나 사이의 간극은 드랙 아티스트가 흔히 겪는 심리적 혼란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지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드랙 아티스트인 나나영롱킴은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딱 잘라 말한다. ‘드랙 아티스트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라는 태도로 퍼포먼스에 임하는 것처럼, 그는 자신을 인식할 때도 내면에 있는 여러 특질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긍정하며, 표출할 뿐이다. 이런 면모는 올해 개최한 개인전 《NA, 나》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전시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인 ‘더 페르소나 프리즘The Persona Prism’에 따르면, 페르소나는 나나영롱킴 자신이며 빛이 프리즘을 통해 총천연색으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아티스트 본인 또한 전시회를 통해 내면의 다양한 면모를 표출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즉 자기 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가장해서 연기하지 않고, 자기 안에 이미 존재하는 여러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나나영롱킴이 추구하는 예술적 테마의 핵심이다.
나나영롱킴, 〈더 페르소나 프리즘〉 연작, 2023. 제공: 더 트리니티 갤러리
“사람들을 만나면 늘 듣는 말이 있어요. “해보고 싶은 걸 다 하고 사는 것 같아서 부러워요.” 근데 이게 꼭 저만 가능한 건 아니거든요. 저와 교감하는 대중도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 드랙 아티스트 나나영롱킴
나나영롱킴이 지금껏 드랙 아티스트로서 행한 수많은 시도는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다’는 통념에 반론을 제기해온 시간으로 바꿔도 큰 무리가 없다. 그가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면 ‘나다움’에 대한 믿음을 바탕 삼아 속도감 있는 실행력으로 구축한 선택의 순간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것을 해낸 이 통쾌한 저항은 제한 없는 변신의 가능성을 품은 드랙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나영롱킴의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평범하고도 중요한 교훈은 고정관념을 잠시 접어두고 ‘나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라는 쉬이 믿기 힘든 사실을 인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걸 표현하는 용기로 가득한 신념 앞에서라면, 비록 시작은 미약할지라도 그 끝은 분명 창대할 지니. 
미닝오브
미닝오브는 인터뷰를 기반으로 영상과 출판, 전시를 기획·제작하는 스튜디오다. 한 사람의 생애를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생애기록집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종로의 풍경들』(2021), 『이름 없는 갈비탕집』(2021), 『아카이브가 답한다』(2020)를 출간했다. 각 지역의 문화재단과 협업해 역사적 공간, 지역 예술가, 청년 창업가를 기록하는 일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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