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Vol.8
우리가 모르는 한식의 세계
— 셰프 권우중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권숙수’의 오너 셰프, 권우중. 유명 이북 음식점을 운영한 외가(外家)의 손맛을 이어받은 한식 요리사, 대기업 소속 한식 레스토랑 총괄 셰프, 그리고 지금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셰프에 이르기까지 그를 설명하는 다양한 수식어가 존재합니다. 《기아 디자인 매거진》은 철학을 담아 한식에 몰두하는 창작자의 모습에 주목했습니다. 한식의 고급화를 지향하는 권우중 셰프에게 고급문화란 그저 값비싼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인간으로서, 창작자로서의 예술혼이 담긴 문화죠. 그는 우리 먹거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조명받지 못했던 전통문화를 재해석해 독특하고 아름다운 음식으로 창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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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닝오브
연출
미닝오브
촬영
김본희, 백재령, 김규민
편집
김본희
About the Artist
권우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식 셰프다. 이북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한식을 맛보고, 배우며 자랐다. 경희대학교 조리학과를 졸업한 뒤, 웨스턴 조선 서울에서 요리사로서의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일본과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헤드 셰프로 일하며 선진 미식 문화를 접했고, 세계 속 ‘한식’의 현실을 마주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권우중은 CJ푸드빌 한식 총괄 셰프로 R&D를 지휘하면서 ‘이스트빌리지’의 오너 셰프로 활동했고, 이때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발판으로 2015년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권숙수’를 열었다. 궁중에서 음식을 담당하는 남성 전문 요리사를 뜻하는 ‘숙수(熟手)’라는 명칭을 레스토랑에 차용한 그는 열렬히 꿈꿔온 한식의 고급화를 추구하며 한국에 처음으로 도입한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에서 2스타를 받았고, 이후 7년 연속 그 명성을 지키고 있다. 2016년 세계 최고 요리 행사 ‘마드리드 퓨전’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해 한식을 소개했고, 청와대 국빈 행사 자문역을 맡은 바 있다.
권우중 셰프가 권숙수에서 선보이는 한식은 한국인에게도 새롭다. 익숙한 한 상 차림과 대비되는 작은 독상에 오르는 능이 온반, 꿩 불고기와 꿩김치, 딱새우 두릅튀김, 유채 백합죽 등 다양한 음식은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어 더 매력적이다. 권우중 셰프는 이 차림표를 통해 한식을 다시, 새롭게 소개한다. 그 앞에서 우리는 ‘알고 있다’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음식과 문화를 좀 더 겸손한 태도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이는 곧 몇 가지 질문으로 이어진다. ‘무엇이 장(醬)인가?’, ‘무엇이 김치인가?’, ‘무엇이 한식인가?’. 가장 익숙한 것을 재정의하는 순간, 비로소 K푸드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권우중 셰프는 우리가 가진 독특한 식재료 문화에 주목했다. 평지가 적고 산이 많은 우리나라 지형의 특징에 따라, 조상들은 산지에서 나는 식생을 먹는 다양한 요리법을 만들었다. 다른 나라에서 잘 먹지 않는 온갖 나물들의 독을 빼고, 무치고, 장아찌를 만들어 밥상 위에 올렸다. 먹을 것이 귀했던 당시의 생존 전략이기도 했으나, 이는 오늘날 한식만의 특별한 식문화가 되었다. 권우중 셰프는 우리 땅에서 나는 것 중 풍미가 높지만, 인지도가 낮은 재료를 찾아 그 맛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한식에 접근했다. 가죽나물, 소백산 까치버섯, 산기슭에서 나는 콩으로 만든 잣 두부, 제피 잎, 참게. 우리에겐 통 낯설게 느껴지는 이 식재료는 권우중 셰프의 손길을 통해 고급 요리로 재탄생한다. 하지만 그는 한국의 식생과 식재료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게 한식의 고급화, 그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맛과 미를 만들어보고 싶은 거예요. 재료의 중요도가 전체에서 50% 정도라면, 그릇의 중요도는 20~30%입니다. 저희는 장인에게 직접 그릇을 의뢰하고 있어요. 파인다이닝에 걸맞은 최상의 경험을 손님께 드리고 싶거든요.”
— 셰프 권우중
우리 술과 작은 안주를 곁들인 주안상
음식을 통해 한국의 맛과 미를 선보였던 예로, 그는 ‘송이버섯 육회’라는 요리를 ‘소나무 그릇’으로 완성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릇 속 소나무를 어떻게 그릴지 고민한 그는, 그 원형을 찾기 위해 수많은 전통 민화(民畵)를 살펴보았다. 그 긴 여정은 우연히 마주친 달항아리 귀퉁이에 그려진 작은 소나무를 보았을 때야 끝이 났다. 이후 도자기 장인을 찾아가 이를 커다란 접시에 맞게 그려달라고 부탁했고, 결국 6개월 넘는 시간을 기다려 원하던 그릇을 얻어냈다. 그리고 소나무 절경을 배경 삼아 송이버섯 육회로 구름과 눈을 표현했다. 그가 생각하는 한식의 고급화는 음식 맛도 중요하지만, 이와 어우러지는 고유의 전통 문화와 깊게 연결돼있다. 그렇지만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특별함을 창조할 수 없고, 근본 없이 새로움이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현대에는 수많은 창작물이 나오고 있고, 음식에도 자신만의 개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 또한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한식에 대한 깊이와 넓이가 부족하기 때문에 자꾸만 서양의 레퍼런스를 가져오는 건 다른 층위의 이야기입니다. 한식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태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과 제대로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남의 것을 가져와서 접목하는 일은 천지차이예요.”
— 셰프 권우중
권숙수의 다양한 요리들
그는 음식의 조합을 새롭게 시도하는 동시에 한식의 본질에 집중한다. 새로움과 특별함을 단단히 지탱해줄 뿌리를 세우는 것이다. 그는 한식의 맛을 내는 데 꼭 필요한 장(醬)과 김치를 직접 담그는 레스토랑이 거의 없는 현실에 경각심을 느낀다. 현재 권숙수는 된장, 간장, 어육 된장, 어육 간장, 두부장, 고추장 등 그 요리에 필요한 장을 직접 담그고 있다. 그 본질에 집중하기에, 권숙수가 시도하는 한식의 다양한 변주는 더욱더 깊어질 수 있다. 권숙수의 차림표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한식 요리가 거의 없지만, 그것이 여전히 ‘한식’일 수 있는 이유, 한식의 원형과 맞닿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한다. 더불어 그의 예술적 고집과 사명감을 집중한 음식이 있으니, 바로 김치다.
“김치를 ‘메뉴’로 내놓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에서 김치가 가장 맛있는 식당이 어디인지 물어봤을 때 과연 단번에 말할 수 있을까요? 특별하고 수준 높은 김치를 먹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 게 지금의 현실이고 문제에요.”
— 셰프 권우중
김치는 우리 한식 문화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지만 너무도 익숙하다는 이유로 언제나 공짜로 치부되며 요리로서의 대우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김치의 메뉴화를 시도한 권숙수는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여섯 종류의 김치를 선보인다. 꿩김치, 갈치김치, 해물 보쌈김치, 순무 동치미, 바나나 백김치, 무말랭이 고들빼기김치 등 이 특별한 ‘요리’는 카트에 담겨 손님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김치를 담근 사람이 직접 설명하며 원하는 김치를 접시에 담아주는 ‘퍼포먼스’도 이어진다. 지금까지 아주 당연한 마음으로 김치를 먹어온 사람들도 새로운 김치의 모습에 호기심을 보이며 매 설명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여실한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의 순간이다. 결국 권우중 셰프가 추구하는 한식의 고급화는 전통문화를 향한 깊이 있는 접근에서 비롯한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기’ 전략의 산물이다.
꿩김치
권숙수의 한식을 마주할 때, 우리는 지금까지 한식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를 통해 비로소 우리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한식의 개념과 정의가 더욱 깊고 넓어지는 기회가 찾아온다. 유구한 한식 문화에서 활용하지 못한 것은 아직 너무나 많다. 그중 무엇을 어떻게 동시대로 길어 올릴지에 따라 한식의 지속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해질 것이다. 사회적 신분을 따지지 않고 어린아이에게까지 독상을 내주었던 우리 전통문화를 레스토랑에 가져온 권숙수의 시도를 보라. 이제 K푸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며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그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겸허한 마음으로 우리 문화의 깊은 저변을 바라보는 노력이라고 믿는다.
미닝오브
미닝오브는 인터뷰를 기반으로 영상과 출판, 전시를 기획·제작하는 스튜디오다. 한 사람의 생애를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생애기록집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종로의 풍경들』(2021), 『이름 없는 갈비탕집』(2021), 『아카이브가 답한다』(2020)를 출간했다. 각 지역의 문화재단과 협업해 역사적 공간, 지역 예술가, 청년 창업가를 기록하는 일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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