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Vol.4
‘너 없는 나’도 없고, ‘나 없는 너’도 없는
— 아티스트 최정화
이번 이슈에서는 기아의 디자인 철학인 ‘오퍼짓 유나이티드Opposites United’와 놀랄 만큼 유사한 결로 자신의 예술 작업을 오랫동안 진행하며 대중의 마음을 끌어들인 아티스트를 만나보았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숱한 러브콜을 받는 최정화 작가가 그 주인공입니다. 극과 극이 통하고 대립이 일치하는 조화가 곧 예술이며, 이는 일상과 삶에서 시작한다는 그의 생각을 필름에 담아보았습니다.
Cred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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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현
촬영
이다인
편집
DQM
컨트리뷰터
최인선
장소
가슴시각개발연구소
About the Artist
한국을 대표하는 설치미술가. 1961년생으로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1987년 28살 학생 신분으로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나 당시 유행하는 기법을 변형해 손쉽게 상을 받았다고 생각해 전통적인 미술에 대한 회의가 들어 졸업 후 돌연 인테리어 회사에 취직했다. 1989년 가슴시각개발연구소를 설립해 그래픽, 영화, 무대, 인테리어 등 다양한 디자인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동시에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이는 물건들을 수집하고 서로 결합해 예술품으로 승화시키는 일에 몰두해왔다. 청담동의 상업 공간 인테리어, 영화 〈복수는 나의 것〉 미술 감독, 무용가 안은미의 무대 디자인, 각종 글로벌 갈라 파티 연출까지 전방위적인 활동을 보였고 지난 2018년에는 평창동계패럴림픽 개·폐막식 미술 감독을 맡았다. 2005년 세계 최고의 미술 행사인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 한국관 작가로 참여했고, 같은 해 일민예술상을 받았다. 2006년 일민미술관에서 치른 개인전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수여하는 ‘올해의 예술상’의 주인공이 됐다. 한국의 대표 중진 작가를 뽑아 신작을 의뢰하는 ‘MMCA 현대차 시리즈’에 선정되어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다. 해외 유수의 뮤지엄 전시와 국제 비엔날레에 가장 자주 호출되는 한국 작가 중 한 명이다.
최정화의 사부는 시장이다. 그리고 진짜 사부는 아줌마다. 1964년 지은 오래된 양옥에 자리 잡은 작업실 문을 열고 나가면 거대한 시장이 펼쳐진다. 길가에는 조명, 전선, 케이블 가게가 빽빽이 들어찼고, 길 하나만 건너면 광장시장, 방산시장, 동대문시장이 손짓한다. 좁고 좁은 시장 바닥에서 아줌마가 공간을 운용하는 방법을 통해 설치를 배운 그는 아이디어가 떨어지면 시장을 돌아다니며 사부님의 찐한 노하우를 습득한다. 눈보다 가슴으로 볼 때 더 깊이 볼 수 있고, 귀보다 가슴으로 들을 때 더 넓게 들을 수 있다고 믿으며 30년 전 가슴시각개발연구소를 설립했고, 이젠 넓은 서울 바닥에서 사부님들을 지척에서 모시고 사는 작은 신전으로 만들었다. 사부님이 일상의 미학을 발휘하던 소쿠리, 밥그릇, 냄비 등의 주방용품은 쌓이고 또 쌓이며 거대한 설치물로 바뀌었다. 사부의 삶이 예술이고, 사부의 예술이 삶이었기 때문이다.
최정화는 대립의 일치를 추구한다. 세계 곳곳에서 시대를 알 수 없는 일상용품을 쟁여뒀다가 서로가 만나는 기운이 발휘될 때 결합해버린다. 중국 노상에서 쓰던 의자, 아프리카에서 구입한 조각품, 유럽의 야시장에서 데려온 인형 등 동양과 서양, 옛것과 새것은 다름의 경계를 넘어 결국 하나가 된다. 동서고금이 함께 공생하는 것이다. 그가 섞어야 아름답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런 대립의 일치가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 영역은 자연과 인공이다. 흔히 자연과 인공을 분리하지만, 그는 인간이 만든 것은 제2의 자연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문명은 자연에서 떨어질 수 없고, 자연과 문명이 함께 녹아 흐르는 하루하루가 황홀경이다. 특히 최정화는 하찮은 것에 매료된다. 반짝이는 비닐, 플라스틱, 금속처럼 남들이 보면 쓰레기 혹은 가치 없는 것으로 내버리는 물건이 보석처럼 눈이 부시게 아름다울 때가 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서로 얽히고설키게 놔두니, 결국 예술이 되었다. 그가 연금술사라고 불리는 까닭이다.
Golden Lotus, ARSENALE 2012, Kyiv, 2012
최정화는 다시 보고, 새롭게 보고, 또다시 본다. 똑같은 물건이라도 뜯어 보고, 훑어보며 다르게 보는 훈련을 평생 해왔다. 도교에서 말하는 발뒤꿈치로 보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눈이 밝아지니 시공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에게 어제란 곧 지금이다. 그리고 이것이 쌓여 내일이 된다. 최정화에 따르면 현재는 찰나의 순간이다. 불교에서 비롯된 찰나는 시간의 최소 단위를 뜻한다. 이 아주 잠깐의 순간을 어떻게 잡아놓을 수 있을까? 그는 예술과 디자인이 영원한 현재를 가능케 한다고 믿는다. 즉 창작자가 이 마법을 펼치는 주체인 셈이다. 창작자의 삶, 느낌, 경험, 소지품, 취향, 삶이 모여 자기표현의 근원이 되고 다른 사람과의 공명을 통해 시간을 멈추어버린다. 나를 확인하고, 너를 주장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찾는 게 바로 최정화가 생각하는 예술이자 디자인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우리라는 말은 ‘나’와 ‘너’가 없으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거다. 결국 나의 목소리가 명확해야 나를 찾을 수 있고, 여기서 너를 주장하며 서로 합쳐져서 우리가 된다. 그가 언제나 ‘너 없는 나’도 없고, ‘나 없는 너’도 없다는 말을 내뱉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월간 디자인》《SPACE 空間》《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프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비애티튜드》 편집장이며, 《조선일보》《디에디트》《럭셔리》에 여러 글을 기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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