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Vol.7
군더더기 없이 단순한 웃음
— 웹툰 작가 나승훈
《기아 디자인 매거진》은 ‘웹툰계의 초통령’으로 불리는 나승훈 작가를 만났습니다. 스토리 작가 신태훈과 함께 13년째 연재 중인 〈놓지마 정신줄〉은 병맛, 일상, 판타지, 블랙 코미디, 옴니버스 장르를 아우르는 독특한 웹툰입니다. 그가 구사하는 단순하고도 선명한 유머는 기아 디자인 철학 ‘오퍼짓 유나이티드Opposites United’를 지탱하는 다섯 개의 기둥 중 하나인 ‘이유 있는 즐거운 경험(Joy for Reason)’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가 펼치는 유머의 미니멀리즘과 K콘텐츠로 각광받는 웹툰의 세계를 나란히 살펴봅니다.
Credits
Close
박수지
촬영
김본희, 서시온, 안정연
편집
김본희, 정경희
자료제공
네이버웹툰, 스튜디오 애니멀
About the Artist
나승훈은 웹툰 작가다.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에 재학 중이던 2009년부터 네이버웹툰에 연재를 시작한 웹툰 〈놓지마 정신줄〉은 지난 2019년 시즌 2를 마무리하며 지금까지 29억 뷰에 달하는 누적 조회수를 달성했고, 2022년 11월부터 시즌 3 연재를 재개했다. 동명의 애니메이션과 웹드라마로 만들어졌고, 학습 만화 시리즈 『놓지 마 과학!』은 현재 17권까지 발행돼 판매 부수 100만부를 돌파했으며 『놓지 마 초등 영단어』, 『놓지 마 어휘』 등으로 영역을 확장 중이다. 나승훈 작가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artist.naseunghoon)을 통해 짧고 굵은 재미를 선사하는 인스타툰도 부지런히 선보이고 있다.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과 ‘카툰Cartoon’, 즉 웹과 만화를 결합한 ‘웹툰Webtoon’은 한국어 고유명사다. 인터넷 보급이 활발하던 2000년에 들어 천리안에서 만든 조어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밀레니엄을 기점으로 출판 만화 시장은 빠른 속도로 웹툰 플랫폼으로 전환했다.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이 거의 유일한 데뷔 루트였던 시대에 마땅한 플랫폼 없이 홀로 만화를 그리던 작가들은 자신의 블로그를 신규 플랫폼 삼아 만화를 올리며 온라인 계정의 닉네임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때가 불과 20여 년 전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지금 한국의 웹툰 시장은 눈부시게 성장을 거듭 중이다. 잠깐의 여유 시간과 인터넷에 접속할 기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웹툰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게임으로 각색되어 세대와 국가를 가리지 않고 인기를 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콘텐츠 접근성과 다른 장르와의 연계 및 확장가능성이 유연한 웹툰은 이제 명실공히 한류의 최전방에 선 영역 중 하나가 되었다.
《기아 디자인 매거진》에서는 13년 동안 웹툰 〈놓지마 정신줄〉(이하 〈놓정〉)을 발표 중인 나승훈 작가를 만났다. 최근 시즌3 연재를 시작한 〈놓정〉은 ‘웹툰계의 초통령’으로 불리는 전체 연령가 개그툰이다. 스토리 작가 신태훈과 함께 2009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그는 네이버웹툰을 통해 무려 1000화가 훌쩍 넘는 에피소드를 이어온 근면성실한 작가이기도 하다. 〈놓정〉의 주요 등장인물은 천재적인 지능을 가졌지만 언제나 정신줄 놓을 준비가 된 이공계 대학생 정신, 생리 현상과 힘에 관한 한 왕성한 능력을 선보이는 고등학교 3학년 정주리, 불량 회사원이자 훌륭한 아버지인 만년 과장 정과장, 그리고 엄청난 능력을 가족 보살피기에 모조리 쓰고 있는 어머니다. (어머니의 이름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저마다 굉장히 비범한 능력을 지닌 이 가족은 매일 정신줄 놓을 위기에 처하고 유머러스하게 상황을 해결하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놓정〉은 어떻게 13년 동안 부침 하나 없이 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개그툰인 〈놓정〉이 제안하는 웃음의 뼈대는 과연 무엇일까?
〈놓지마 정신줄〉 시즌 2. 에피소드 1의 일부 © NAVER WEBTOON
〈놓지마 정신줄〉 시즌 2. 에피소드 15의 일부 © NAVER WEBTOON
〈놓지마 정신줄〉 시즌 2. 에피소드 27의 일부 © NAVER WEBTOON
웹툰은 모든 것이 가능한 백지 같은 매체다. 판타지, 로맨스, 사극, 무협, 드라마 등 선택가능한 장르는 광활하고, 생활툰, 일기툰, 요리툰, 동물툰 등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모든 연령층을 아우르며 불편함 없는 웃음을 이끌어내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다. 일반적으로 유머는 어느 정도의 폭력성과 비하, 위계 등을 전제로 발휘되기 때문이다. 반면 〈놓정〉이 추구하는 유머는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또 덜어낸 정수에 가깝다. 그야말로 ‘정신줄을 놓고 그린다’는 나승훈 작가는 등장인물이 지닌 독특한 성격을 통해 캐릭터를 ‘잘’ 망가뜨릴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한다. 그리고 가장 원초적이면서 순수한 웃음을 정제해 웹툰의 컷과 컷 사이를 잇는다. 작가가 ‘유머의 미니멀리즘’이라 일컫는 이런 과정은 〈놓정〉이 지닌 가장 커다란 미덕이자, 타 웹툰에서 보기 힘든 차별적인 요인이다. 더불어 〈놓정〉은 에피소드 중심의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지만, 등장인물이 정신줄을 놓는 사건 사고가 느슨하게 이어지며 하나의 세계관을 형성한다. 그만큼 열혈 독자와 맺는 호흡은 긴밀해진다. 플랫폼을 매개로 ‘댓글’이라는 행위를 통해 즉각적인 피드백과 응원이 가능한 독자는 작가와 함께 숨을 쉬고 고르며 연재를 지속시키는 핵심 역할을 맡는다.
〈놓지마 정신줄〉 시즌 2. 에피소드 33의 일부 © NAVER WEBTOON
〈놓지마 정신줄〉 시즌 2. 에피소드 34의 일부 © NAVER WEBTOON
〈놓지마 정신줄〉 시즌 2. 에피소드 37의 일부 © NAVER WEBTOON
〈놓정〉은 스핀오프도 다채롭다. 웹툰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국가 주도 캠페인, 학습 만화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웹드라마에서도 볼 수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협업한 국제 의료사업 활성화를 위한 웹툰 〈K-의료, 세계를 놓지마〉, 보건복지부가 함께 하는 브랜드 웹툰 〈우리가족 응급주치의〉, 여성가족부의 브랜드 웹툰 〈달라 보여도 모두 같은 가족〉을 비롯해 현재 17권까지 발간한 학습 만화 『놓지 마 과학!』은 누적 판매 100만부를 돌파했다. 이에 힘입어 『놓지 마 초등 영단어』, 『놓지 마 어휘』로 영역을 확장 중이다. 시즌 2까지 방영한 애니메이션은 투니버스에서 케이블 동시대 시청률 1위를 찍었고, 원작의 틀을 활용한 웹드라마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만큼 〈놓정〉에 내재한 익살과 반전이 세대와 매체 간 차이를 극복하는 보편성을 획득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승훈 작가는 앞으로 문화적인 배경 차이가 부르는 이해의 온도 차 없이 해외 독자가 공감하는 더 단출한 유머를 구사할 계획이다. 영어로 번역하기조차 곤란하다는 ‘정신줄’이라는 단어가 어쩌면 고유명사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단순한 웃음이 품은 잠재력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더욱더 강력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수지
박수지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 큐레이터다. 큐레토리얼 에이전시 뤄뤼(RARY)를 운영하며, 기획자 플랫폼 웨스(WESS)를 공동 운영한다. 최근에는 예술 외부의 질문에 기대지 않는, 예술의 속성 그 자체로서의 상태가 무엇인지 고민하며 전시를 기획하고 글을 쓴다. 《살 돌 기름》(2022), 《토마》(2021, 공동 기획), 《7인의 지식인》(2020), 《노려본들 어쩔 것이냐》(2020, 공동 기획), 《줌 백 카메라》(2019), 《유쾌한 뭉툭》(2018) 등을 기획했다. ‘Korea Research Fellow: 10x10’(2018, 2019), ‘두산 큐레이터 워크샵’(2019)에 선정된 바 있다.
다른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