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장 디자이너 정한. 그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미래상품디자인팀 / 책임연구원 / 기아 남양 디자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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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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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려요.
저는 미래상품디자인팀에서 익스테리어 디자인을 담당하는 책임연구원 정한입니다. 저희 팀은 디자인 개발 선행 단계에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자동차 디자인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구하고 있어요. 기아디자인센터는 제 첫 커리어를 시작한 곳이에요. 2009년 입사해 지금까지 인테리어와 익스테리어의 양산 업무를 맡아왔죠. 현재는 선행 업무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Q2.
지금의 커리어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어린 시절 그림 그리기와 이것저것 만들기를 좋아했어요. 디자이너라는 단어의 뜻도 몰랐는데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꾼 것 같아요. 자동차 디자이너가 된 건 자연스럽게 흘러오게 된 결과라고 생각해요. 대학교에 다닐 때 친구 따라 자동차 디자인 동아리에 가입한 게 시작이었어요. 작은 골방에 붙어 있던 자동차 스케치를 마주하고 매력에 빠져들었죠. 열정 넘치는 사람들과 함께 꿈을 키웠는데, 지금 그들과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점은 다시 생각해봐도 무척 신기해요.
Q3.
기아에서 일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무엇일지 궁금해요.
EV6 초기 디자인에 참여했을 때가 생각나네요. 저를 포함해 책임급 디자이너 두 명과 팀장급 한 명 그리고 헤드 디자이너까지 총 네 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TFT팀이 갑자기 만들어졌어요. 독일로 출장을 갔는데, 출발 3일 전에 통보를 받았답니다. 당시 헤드 디자이너였던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님이 저희를 데리고 독일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디자인을 진행했는데요. 마치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을 하듯 그 과정이 재미있고 신선했어요. 최종 결정권자와 실무자가 같은 공간에서 일하다 보니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졌어요. 보고가 아니라 디자인을 보여드리고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식이었죠. 피드백이 빠르다 보니 백지상태에서도 조금씩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어요. 일주일이란 짧은 기한에 스케치부터 3D 모델까지 완성했어요. 특히 작업 방식뿐 아니라 함께 했던 멤버들의 에너지가 대단했죠. 창조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었어요. 이런 상황을 즐기면서 외장 디자이너로서 지녀야 할 주요한 태도를 배웠고 크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4개월 간의 짧은 프로젝트였지만 제가 기아디자인센터에서 참여한 프로젝트 중 가장 기억에 남아요.
Q4.
개인적인 취미와 흥미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중에서도 지금 제일 관심을 갖는 것이 있다면요?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관심사는 계속 바뀌는 편인데, 예전에는 도시에서 하는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면 근래에는 자연에 흥미를 느껴요. 30대 초반까지는 트렌드에 관심이 있어서 옷이나 독특한 물건들을 구경하려고 시간 날 때마다 여기저기 자주 돌아다녔어요. 도시만의 색이 짙은 도쿄, 파리, 베를린, 런던 등을 여행하는 게 즐거웠죠. 그런데 요즘은 편안함을 느끼는 자연에 더 매료되곤 한답니다. 날 것의 자연이 기다리는 장소로 여행하고, 자연과 함께 하는 서핑이나 캠핑 같은 액티비티가 좋아졌어요. 결국 사람은 자연으로 마음이 가나 봐요.
Q5.
2021년 공표된 기아의 새로운 디자인 철학 Opposites United(OU)를 처음 접했을 때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처음엔 무척 어렵게 다가왔죠. ‘opposites’와 ‘united’라는 단어부터 서로 상반된다고 느꼈거든요. 한 번에 와닿지가 않아서 개념을 이해하는 데 애를 많이 먹었어요.
Q6.
'OU'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세요? 개인적으로 OU를 어떻게 해석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저는 OU가 단순히 조형적인 매칭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사람이 지닌 성격, 즉 예상치 못한 위트와 반전의 매력이라고 해석해보곤 해요. 예를 들어, 연예인을 보면 완벽한 외모에,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끼도 엄청나잖아요. 그래서 나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마저 들어서 일반인과 연예인으로 둘 사이를 갈라놓는데요. 하지만 사실 그들도 바보스러운 면, 엉뚱한 면을 가지고 있을 거에요. 연예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숨겨진 또 다른 모습을 마주할 때 실망보단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와요. 물건도 비슷해요. 모든 면에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면 시각적인 만족감과 편리함은 있겠지만, 과연 그게 정말 100% 매력적일까 반문하게 되죠. 완벽함 속에서 보이는 반전의 모습, 다시 말해 물건이 지닌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 바로 OU가 아닐까 싶어요.
Q7.
OU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해 늘 감각을 열어두실 것 같아요. 혹시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통해 OU가 떠오른 경험이 있으신가요?
10년 전에 산 책이 한 권 있어요. 이탈리아의 가구 디자이너인 마르티노 감페르가 진행한 단기 프로젝트를 책으로 엮은 건데요. 『100 Chairs in 100 Days and its 100 Ways』라는 책 이름처럼, 말 그대로 100일 동안 100가지 방식으로 의자 100개를 만드는 거예요. 저는 이 책을 볼 때 OU가 떠올라요. 부서진 의자를 랜덤하게 조합하다 보면 서로 이질적인 형태나 소재가 결합되죠. 마트에서 쓰는 플라스틱 의자의 부분과 가정에서 쓰는 나무 의자의 일부를 붙이면 기대하지 못하던 느낌의 전혀 다른 오브제가 만들어진답니다. 마르티노 감페르의 책을 OU와 연관해본다면 버려진 것에 새로운 매력을 불어넣어서 물건의 가치를 높여주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환경을 생각하는 지속가능성, 그 자체니까요. 직관적이면서 과감하게 이질적인 재료를 조합한다는 점 또한 OU가 추구하는 반전의 매력과 닮았어요.
Q8.
혹시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OU를 느낀 경험이 있으신가요?
을지로에 가면 OU가 떠올라요. 을지로는 태생적으로 서민의 삶과 역사가 쌓인 공간인데, 지금은 젊음의 열기와 오랜 세월 그곳을 지킨 상인의 역사가 공존하고 있어요. 어느 가게에서는 인쇄기가 돌아가고, 그 옆에서는 용접을 하고 있는데, 근처 골목에 가면 예술적이면서 힙한 펍과 레스토랑이 존재하죠. 재미있는 지역이에요. 가장 한국적인 OU를 보여주는 곳 아닐까 합니다.
Q9.
업무적으로 OU를 적용해야 할 때가 있으실 텐데요. 실무에 OU를 접목한 기억할 만한 케이스가 있으신가요?
인테리어 디자인은 다양한 소재를 매칭해 내장 공간을 구성해요. 제가 인테리어 팀에 있을 때에는 그런 특성을 극적으로 대비시켜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걸 좋아했죠. 하지만 익스테리어 디자인은 금속이 대부분을 감싸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야만 했어요. K8 외장 디자인에 참여했을 때, 금속 표면의 반사 효과를 최대한 이용해 OU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먼저 부드러운 실루엣과 보디의 흐름을 만들어 빛이 흐르는 듯한 이미지를 전체적으로 구성하고, 그 기본 덩어리 안에서 다이아몬드 같은 면을 플랫하게 커팅한 듯한 디테일에 신경 썼어요. 이렇게 빛의 흐름에 따라 따뜻함과 차가움을 동시에 표현하면서 OU와 연결했답니다.
Q10.
디자인에 대한 본인만의 관점이나 태도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디자인은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많은 대화와 소통을 통해 탄생합니다. 그런 디자인은 세상에 나왔을 때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죠. 긍정적인 메시지가 사람의 마음을 쉽게 움직이는 것처럼, 좋은 디자인 또한 감동을 줄 수 있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이야기가 담긴 디자인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디자인도 빼놓을 수 없죠.
Q11.
10년 후 본인은 어떤 모습일 것 같으신가요? 10년 후는 너무 먼 미래일까요?
어린 시절에는 늘 미래가 불확실하게 느꼈고 저에 대한 확신도 없었어요. 그래서인지 항상 불안하고 조급했던 것 같아요. 남들과 비교도 많이 하고, 늘 쫓기듯 살았죠. 당시 어떤 조언을 들었어요. 인생을 ‘사다리 오르기’에 비교한다면 그때의 제가 처한 상황은 불과 아래쪽 끝에서 한두 계단 오른 상태라는 것이었죠. 빨리 올라가는 것보다 천천히 꾸준히 계속 오르려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게 조언의 요지였어요. 지금의 저는 빠르지는 않아도 나름의 속도로 천천히 사다리를 오르고 있다고 생각해요. 10년 후 제 자신에게 바라는 모습은, 그리 빠르지 않아도 되니까 여전히 같은 속도로 천천히 한 계단 두 계단 밟아가는 거예요.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믿어요.
정한 책임연구원 이력
기아 디자인 센터 입사 | 2009.07
Interior design team 2 | 2009.9~2016.1
Third generation of CARNIVAL Interior design | 2010.06~2011.11
초기 디자인 참여
Second generation of K5 Interior design | 2012.05~2013.12
초기 디자인 및 양산 참여
Fourth generation of Sportage Interior design | 2013.10~2013.11
초기 디자인 참여
KX7 (CHINA) Interior design | 2014.01 ~2015.09
초기 디자인 및 양산 참여
Exterior design team 2 | 2016.2~2018.08
Seltos Exterior design | 2017.04~2017.09
초기 디자인 참여
K3 CHINA (글로벌 모델 부분변경) Exterior design | 2017.09~2018.07
초기 디자인 및 양산 참여
Exterior design TFT | 2018.09~2019.11
EV6 Exterior design | 2019.02~2019.05
초기 디자인 참여
K8 Exterior design | 2018.05~2020.01
초기 디자인 및 양산 참여
KIA Advanced design → Future Product design | 2019.12~현재
선행디자인 연구
Double-D
Double-D는 2012년 설립 이후 브랜딩, 패키지, 편집, 광고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다. 2021년 기아의 비주얼 아이덴티티 리뉴얼을 담당해 전용 서체 및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기아 디자인 매거진》의 태동부터 함께 고민하면서 현재 기획과 디자인을 맡고 있으며, 창작자를 위한 온라인 매거진 《비애티튜드》를 발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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