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장 디자이너 버크 어너. 그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수석 외장 디자이너 / 기아 미국 디자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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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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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o Loz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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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e-D
Q1.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버크 어너Berk Erner입니다. 캘리포니아 어바인에 있는 기아 미국 디자인센터에서 수석 외장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어요. 2018년 기아에 합류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즐겁게 진행했는데요. 가장 최근에 참여한 프로젝트는 작년 LA 오토쇼에서 선보인 EV9 콘셉트카입니다.
Q2.
지금의 커리어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기억나는 인생의 첫 순간부터 지금까지 저는 항상 자동차광이었어요. 저희 집 방바닥에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자동차 디자이너로서의 도전을 시작했죠. 외동아들이었던 저는 초등학교에서 돌아와 심심할 때면 혼자 바닥에 앉아서 몇 시간이고 그림을 그렸답니다. 그리기라는 순수하고 단순한 행위는 완전한 기쁨 그 자체였어요. 펜이나 종이가 떨어지지 않는 한, 백지는 무한한 즐거움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죠. 바닥에 앉아 좋아하는 TV 만화영화를 틀어놓고 몇 시간씩 차를 그리는 걸 좋아했답니다. 8살인가 9살 때로 기억하는데요. 어느 날 아버지가 방에 들어와 말씀하셨어요. “항상 볼 때마다 차를 그리는구나. 나중에 커서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는 건 어떠니?” 그리고 자동차 디자이너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설명해주셨어요. 그 말씀에 저는 딱 꽂히고 말았죠! ‘그런 직업이 있다면 꼭 해봐야지!’ 그날 이후로 사람들이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저는 자동차 디자이너가 될 거라고 말했어요.
때마침 그때 할머니께서 제 인생 최초의 교통 설계 과제를 내주셨죠. 다리가 부러진 친척을 위해 비행 신발을 디자인해달라는 부탁이었어요. 할머니와 함께 친척을 방문할 때마다 저는 디자인 스케치를 들고 가서 다양한 작동 원리를 장황하게 설명하곤 했답니다. 그 과정이 정말 즐거워서 친척의 다리가 다 나은 후에도 여러 아이디어를 계속 발전시킬 정도였죠. 여러 해가 지나도 자동차와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기는커녕 더 커지기만 했어요. 하지만 앞날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죠. 제가 살던 나라에는 자동차 회사도 없고, 교육받을 만한 변변한 기관도 없었거든요. 제가 아트센터디자인대학(Art Center College of Design)에서 제대로 운송 디자인을 공부할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었어요. 2014년에 졸업하면서 바로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어 일을 시작했죠.
Q3.
기아에서 일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말씀해 주신다면요?
기아에서 몇 년을 보내면서 즐거운 추억이 많았어요. 운이 좋았죠. 그래도 한 가지를 고르라면 EV9 콘셉트카 작업을 위해 3개월 동안 한국에 갔던 일이에요. 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지만 전 세계가 팬데믹에 휩싸이면서 생각도 못 했었거든요. 보잉777 비행기를 통째로 독차지하며 한국에 입국해 2주간 정부 검역소에서 머물고, 그 과정에서 극도의 예방 조치를 접했던 건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남양에 있는 연구개발본부를 방문했을 때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랐죠. 이름만 듣던 많은 분을 마침내 직접 만나게 되어서 기뻤고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일한 것은 지루했던 코로나 락다운 기간에 신선한 휴식이 됐어요. 물론 콘셉트카를 공개한 날은 정말 특별한 순간이었죠. 한없이 고조되는 흥분 속에서 바싹바싹 시간만 다가오던 LA오토쇼에서 우리 차를 선보이는 무대는 강도 높은 마라톤의 절정이었어요. 그날 아침 오토쇼 장소에 들어서자 제 안에서 정반대되는 감정이 결합하는(Opposites United) 느낌이 그대로 느껴졌답니다. 행복, 안도, 불안, 호기심, 그 밖의 모든 감정이 약간씩 모두 존재했죠. 차가 무대에 오를 때 그곳에 서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서 흥분이 공유되는 것을 보는 일은 더없이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Q4.
2021년 기아의 새로운 디자인 철학 ‘Opposites United’(OU)를 처음 접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처음 OU라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무언가 제 머리에서 찰칵하는 것이 느껴졌어요.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도록 제약을 두지 않으면서 적절한 정도의 지침을 제공하는, 매우 단순하지만 우아하게 고안한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사는 우주에는 반대되는 개념이 수없이 많은데요. 두 가지 반대 개념 사이에는 또 스펙트럼이 있잖아요. 디자이너로서 우리의 임무는 이런 상반된 개념의 균형을 맞추면서 독창적인 디자인을 만드는 거예요. 요리를 예로 들어 볼까요? 단맛과 신맛은 미각의 스펙트럼에서 양극단처럼 보이지만, 뛰어난 요리사는 이런 재료로 훌륭한 요리를 만들겠죠. 바로 이러한 균형이 우리가 디자인에서 정교하고 다양한 오브제를 만들기 위해 추구하는 균형이라고 봐요.
Q5.
혹시 당신의 성장 환경과 문화가 OU 및 5 Pillars와 연결점을 가지고 있을까요?
저는 튀르키예의 수도 이스탄불에서 태어났어요.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이스탄불에서 보냈죠. 이 도시야말로 OU의 완벽한 구현이라고 늘 생각해요. 이스탄불은 땅 한가운데를 바다가 가로지르는 도시에요. 그래서 절반은 유럽 대륙에, 나머지 절반은 아시아에 있죠. 독특한 지질학적 위치 때문에 오랫동안 동서양을 잇는 다리 역할을 했어요. 때로는 서로 다른 문화가 상반되는 가치를 지니기도 했지만, 이스탄불은 두 가지를 통합해 진정한 정체성을 형성했답니다. 이스탄불은 위대한 여러 문명의 오랜 정착지이자 수도였어요. 수천 년 동안 이전 시대의 폐허를 딛고 여러 문명이 건설되었죠. 유리와 콘크리트로 지은 고층 건물 아래에 오리엔탈 풍의 오스만 제국의 궁정과 동로마 제국의 성이 나란히 서 있는 점이 저는 늘 재미있답니다. 하지만 도시를 이루는 것은 건축물이 전부가 아니에요.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이죠. 이스탄불은 다양한 배경, 교육, 사회경제적 수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의 용광로입니다. 제게는 바로 그게 OU입니다.
Q6.
영감을 찾기 위한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이 있나요?
영감은 디자인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여러 해 동안 같은 주제로 작업하다 보면 매일매일 참신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기가 어려워요. 창의성이 막히는 걸 피하려면 대체할 방법이 필요하죠. 영감은 삶의 어느 곳에나 있어요. 그래서 디자이너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영감을 추출하는 법을 배운다고 생각해요. 친구와 나누는 대화, 꿈에서 본 이미지, 쓰레기통에 든 알루미늄 호일 조각, 그 무엇이든 적절한 방식으로 바라본다면 영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감에 관해서는 모든 계란을 한 바구니 안에 담지 않는 편이 나은 것 같아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할 때면 이전에 탐색하지 않았던 새로운 아이디어와 정신 상태가 가능해지는데요. 여기에서 저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Q7.
당신만의 디자인 철학이 궁금해요. 기아의 디자인 철학과는 어떻게 연관될 수 있을까요?
좋은 디자인은 포용적이며 보편적인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디자인은 문화와 언어를 초월해 우리의 삶을 향상시키고 동시에 감성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켜야 하죠. OU가 지닌 아름다움 중 하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굉장히 넓은 스펙트럼을 다루기 때문에 누구나 그 안에서 자신의 일부를 발견할 수 있어요.
Q8.
당신의 취미가 궁금합니다. 어떤 걸 좋아하나요?
저는 기술적인 지식과 창의성이 교차하는 분야에 관심이 많아요. 디자이너는 모델을 스케치하고 작업을 진행할 때 손을 자주 사용하죠. 저는 개인적인 시간에도 아트나 집 개조 등 여러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하며 손기술을 사용하려고 노력해요. 제가 가장 진지하게 접근하는 취미 중 하나는 음악 만들기입니다. 어릴 때부터 기타 연주를 시작했고 신시사이저로 옮겨 여러 해 동안 연주를 계속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Armut & Muz’라는 이름으로 음악을 만들었고요. 신시사이저, 사운드 디자인, 작곡을 연구하고 수집하는 일은 제가 푹 빠져드는 또 하나의 경계 없는 우주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작업은 많은 부분에서 디자인과 유사해요. 철학으로나 작업의 흐름으로나 말이죠.
Q9.
아이디어를 전개하며 프로젝트에 접근하는 디자인 과정에서 OU와 5 Pillars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주시겠어요?
OU는 디자인 과정 전반에 걸쳐 매우 중요해요. OU는 기아 디자인의 기원이자 전개하는 과정 내내 방향을 알려주는 북극성 같은 존재죠. 영감을 모으는 초기 단계부터 스케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이게 어떻게 OU와 연관될까? 내러티브는 무엇일까? 조화와 대조가 있을까?’ 그리고 이런 프레임을 중심에 두고 프로젝트를 일관적으로 구축하려고 노력해요. OU는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기 때문에 프로젝트의 요구 사항에 맞춰 초점을 좁히기 위해서는 5 Pillars를 기반으로 삼는 게 필요해요. 기아에서는 3열 SUV부터 도시용 소형차, 상용차까지 다양한 차량을 작업할 수 있어요. 디자이너로서는 정말 운이 좋죠. 이런 차량은 본질적으로 무척 다른 점이 많아서 완전히 다른 접근 방식과 추론을 요구해요. 5 Pillars는 우리가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주요 가치에 진정으로 공감하려고 노력할 때 가이드가 되어준답니다.
Q10.
OU를 떠올리는 물건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는데요. 그에 대한 이야기를 청해도 될까요?
영혼에 감동을 주는 음악을 만드는 모듈러 신시사이저가 주인공입니다. 모듈러 신시사이저는 음악을 합성하는 가장 초기의 형태인데요. 최근 들어 풍부한 아날로그 사운드와 그 유연함 때문에 다시 각광받고 있어요. 처음에는 빈 상자였던 신시사이저는 각각 고유한 기능을 갖춘 18개의 모듈 구성으로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듈이 내부적으로 서로 연결이 돼 있지는 않아요. 케이블을 사용해 패치를 서로 연결해야만 하죠. 회로를 완성하고 소리를 내려면 양극 단자와 음극 단자의 연결이 필요합니다. 몇몇 모듈은 소리를 내는 기능을 맡고, 다른 몇몇 모듈은 소리를 빼거나 억누르는 기능을 해요. 반대의 기능을 생성하는 것들로 이루어진 생태계나 마찬가지죠. 신호 경로를 결정해서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어요. 저는 이런 모습이 OU를 위한 디자인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아름답고 화음이 풍부한 소리를 얻기 위해 정확하게 연결하고, 섬세하게 조정하는 행위는 서로 반대되는 양쪽을 정확하게 연결하고 중간에서 균형을 맞추는 OU와 같습니다.
Q11.
디자인에 대한 당신의 관점과 태도가 궁금합니다.
디자인은 인간 본성의 핵심이자 문명의 초석입니다. 인류는 구석기 시대 도구를 만들 때부터 디자인을 했어요. 이런 점을 감안하면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죠. 무언가를 만들고 개선하려는 우리 내부의 동력 덕분에 지금 살고 있는 현재의 세계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우리는 작은 개선을 거듭하며 오늘날 매우 복잡하고 효율적인 제품과 시스템을 만들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인간에게 디자인은 필수라고 생각해요. 도구를 디자인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사피엔스 종으로서 우리가 갖는 이점입니다.
Q12.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나요?
저는 어린 시절의 꿈대로 살고 있어요. 앞으로도 좋아하는 자동차 디자인을 계속하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식과 경험을 좀 더 많이 쌓아서 더 높은 수준으로 이 일을 잘 해내고 싶어요.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10년 후에는 자동차 디자인 영역도 몹시 달라질 거란 사실은 잘 알고 있어요. 전기화, 자율주행 등 비약적인 기술 도약은 눈앞까지 도래했고, 아직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더 많은 일이 앞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확인해요. 기술의 발전은 자동차를 만들고, 운행하는 근본적인 방식을 바꿀 거예요. 미래에도 자동차가 계속 운행된다면 말이죠. (웃음) 일정 영역에서는 새로운 관점과 자유가 찾아올 테고, 우리가 아직 직면하지 못한 새로운 도전도 일어날 테죠. 저는 우리를 위해 미래가 준비해둔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고대하는 중입니다.
Double-D
Double-D는 2012년 설립 이후 브랜딩, 패키지, 편집, 광고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다. 2021년 기아의 비주얼 아이덴티티 리뉴얼을 담당해 전용 서체 및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기아 디자인 매거진》의 태동부터 함께 고민하면서 현재 기획과 디자인을 맡고 있으며, 창작자를 위한 온라인 매거진 《비애티튜드》를 발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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