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Vol.8
쿠사마 야요이라는 이름의 무한 세계
《야요이 쿠사마: 1945년부터 현재》

M+, 2022년 11월 12일 - 2023년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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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지
자료제공
M+
2023년 새해부터 루이 비통과의 협업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아티스트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 올해 93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아직도 매일 그림을 그리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의 회고전 《야요이 쿠사마: 1945년부터 현재》가 지금 홍콩의 M+에서 열리고 있다. ‘미술관 이상의 미술관(More than Museum)’이라는 의미의 M+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시각문화 뮤지엄으로 근·현대미술, 건축, 디자인, 영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컬렉션을 소장 중이다. 무려 15년 동안 준비해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11월 개관하며 화제를 모았다. 총면적 6만 5000㎡(전시 공간 1만 7000㎡)의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M+에서 열린 이번 전시의 출품작은 200여 점. 쿠사마의 초기작부터 전시 시작 직전에 완성한 신작 12점까지 아우르는 규모는 일본을 제외하고 아시아에서 열린 그의 전시 중 가장 장대하다. ‘쿠사마 야요이’ 하면 자연스럽게 폴카 도트Polka Dot 형태의 물방울무늬 호박 조형물과 무한 거울 방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전시를 기획한 M+의 정도련 부관장은 “대중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물방울무늬 호박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한다. 전시팀은 “쿠사마는 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새롭게 품었다. 이번 회고전에 협력 큐레이터이자 독립 기획자로 참여한 미카 요시타케(Yoshitake Mika)는 그 답변을 이렇게 정의했다. “그의 존재는 모든 것을 대변한다.”
〈자화상〉, 2015. Acrylic on canvas. 145.5 x 112cm, Collection of Amoli Foundation Ltd © YAYOI KUSAMA
“저는 때때로 이상하리만치 기계화되고 표준화된 획일적인 환경에 놓인 스스로를 발견합니다. 문명사회라는 낯선 정글과 사람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정신적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저는 항상 사람과 사회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배경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저의 예술적 표현은 언제나 이런 바탕에서 성장했습니다.”
— 쿠사마 야요이
쿠사마의 자화상으로 시작하는 전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10대 시절 그린 초기 드로잉부터 가장 최근에 작업한 몰입형 작품까지 생애 전반의 커리어를 연대기별, 주제별로 다룬다. 특히 그가 평생을 쏟은 창작물을 무한(Infinity), 축적(Accumulation), 급진적 연결성(Radical Connectivity), 바이오코스믹(Biocosmic), 죽음(Death), 생명의 힘(Force of Life)이란 테마로 묶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가정사, 전쟁 속에서 보낸 절망적인 청소년기, 쿠사마의 예술성을 인정하지 않는 가족, 미국의 선구적인 여성 작가 조지아 오키프에게 무작정 편지를 보내고 미국으로 건너가는 무모함과 절박함, 급진적이고 과감했던 만큼 논란을 부른 뉴욕과 유럽에서의 작업과 퍼포먼스, 1973년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2023년 현재까지 정신병원에 자발적으로 자신을 가두고 있는 선택에 이르기까지, 쿠사마의 삶은 매 순간 치열했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예술로 만든 그의 역사는 삶과 죽음이라는 상반된 가치를 한꺼번에 그러안는 작업적 생명력을 지닌다.
“저의 예술, 즉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싸우며 우리가 무엇인지, 삶과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하는 예술에 있어 일본은 너무 작고, 너무 노예적이고, 너무 봉건적이며, 여성을 경멸했습니다. 제 예술에는 더 무한한 자유와 더 넓은 세상이 필요했습니다.”
— 쿠사마 야요이
오늘날 쿠사마의 삶과 예술은 우리에게 어떤 감흥을 남길까. 《기아 디자인 매거진》은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세계에 근간이 되는 모티프를 탐색하며 기아의 디자인 철학인 ‘상반된 개념의 창의적 융합(Opposites United)’이 지향하는 관점을 새롭게 독해하고자 한다. 쿠사마는 단순하지만 심오한 반복, 표면적이지만 두꺼운 깊이감을 갖는 모티프를 통해 작가 자신은 물론 개개인의 세계를 투영하고, 작품을 마주한 관람객 또한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기아 디자인 매거진》은 이번 기회를 빌려 지난 80여 년의 방대한 작업 세계 중 지속적인 창작의 모티프였던 〈무한 그물망(Infinity Net)〉, 가장 실험적인 작품 중 하나인 〈무한 거울 방(Infinity Mirror Room)〉, 물방울무늬 작업의 확장판 〈자기 소멸 (Self-Obliteration)〉 연작 등을 살펴본다. 일련의 시리즈는 쿠사마의 모든 작품에 내재한 삶과 죽음의 동일성에 관한 근본적인 철학 및 인간으로서의 작가 개인과 우주를 직결하는 세계관을 대변한다.
반복의 마법
“더 이상 어린 소녀로 살아갈 수 없다고 느꼈던 암울한 전쟁의 시기, 제가 살던 집 뒤에는 수백만 개의 흰 돌이 놓인 강이 있었습니다. 반짝이는 태양 아래 ‘존재’ 하나하나를 각인시키던 돌의 모습은 제가 빠져버린 환상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자연으로부터의 직접적인 계시 외에도, 저는 마음속 욕망의 이미지와 함께 정신의 신비한 세계에 사로잡혔습니다.”
— 쿠사마 야요이
〈태평양〉, 1960. Oil on canvas, Museum of Contemporary Art Tokyo © YAYOI KUSAMA
일본에서 활동하던 신예 시절, 쿠사마는 전시를 방문한 어느 정신과 의사를 통해 자신의 정신적 상태를 인지하게 되었다. 의사는 그에게 일본을 떠나 미국으로 활동 장소를 옮기라고 조언했다. 일면식 없이 그저 흠모했던 조지아 오키프에게 편지를 보냈던 쿠사마는 몇 안 되는 인맥과 노력을 총동원해 1958년 마침내 미국 뉴욕에 발을 디뎠다. 비행기로 태평양을 횡단하며 보았던 바다의 무늬에서 영감을 받아 그는 멀리서 보면 온통 흰색으로만 이루어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훗날 〈무한 그물망〉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시리즈의 출발 지점이다.
검은색 바탕 위에 흰색으로 그린 미세한 고리는 그물 패턴처럼 캔버스를 균일하게 덮고 있다. 그 위에 흰색으로 얇게 칠한 터라 멀리서 보면 빈 캔버스 같기도 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제법 두껍고 유기적으로 쌓인 물감이 드러나며 미묘한 인상을 준다. ‘그물망’ 사이사이 빈 곳으로 시선을 이동하면 검은색 배경이 점처럼 눈에 띄기 시작한다. 엎치락뒤치락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물망과 점의 관계는 쿠사마가 생각하는 무한한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인간의 위치를 상징했다. 이 작품은 곧장 뉴욕 예술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자신이 무한대로 확장된 모습을 볼 때 사람들은 무한한 공간에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한계가 없음을 느낍니다.”
— 쿠사마 야요이
〈무제(의자)〉, 1963, Sewn stuffed fabric, wood, and paint. Collection of the artist. © YAYOI KUSAMA. Photo courtesy: YAYOI KUSAMA FOUNDATION
‘반복’과 ‘번식’의 개념은 마치 마법처럼 쿠사마를 고양시켰다. 그를 상징하는 작업 모티프인 물방울무늬를 보라. 이러한 반복의 방법론은 회화를 넘어 조각에서도 이어졌다. 소파와 안락의자처럼 일상적인 가구에 반복적이고 강박적으로 솟아오른 패브릭 돌기가 돋아나는 소프트 조각 〈축적(Accumulation)〉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쿠사마는 도전적인 작업을 맹렬하게 선보이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극심한 불안과 피로에 시달리게 되었다.
무한대로 확장하는 자아
정신적인 고통에도 불구하고 쿠사마는 예술 없이 삶을 지속할 수 없었다. 1965년에는 가장 실험적인 작품 중 하나인 〈무한 거울 방〉 시리즈를 전개한다. 요즘에야 무한히 서로를 비추는 거울의 방은 결코 낯선 공간이 아니지만, 무려 60년 전에 ‘무한 거울 방’의 철학을 상상했던 쿠사마의 선택은 가히 과감했다. 무한히 서로를 비추는 거울은 쿠사마의 예술 철학을 극대화했다. 설치 작품 속 쿠사마의 극적인 초상에서 볼 수 있듯, <무한 거울 방> 이후 쿠사마의 작업에서 퍼포먼스와 자아 이미지의 분열은 더욱 강화됐다.
〈무한 거울 방〉 속 쿠사마의 모습, 1965, Floor Show at Richard Castellane Gallery, New York © YAYOI KUSAMA
“저는 한 번에 50~60시간씩 작업합니다. 캔버스라는 한정된 공간을 넘고, 바닥이나 책상을 넘어, 우주 전체로 확장하는 ‘그물망’ 속에서 축적과 반복의 마법에 걸린 저 자신을 서서히 느낍니다.”
— 쿠사마 야요이
1966년부터 일본에 돌아간 직후인 1974년까지 작업한 〈자기 소멸〉은 자아의 증폭과 소멸 사이에서 요동치는 시리즈다. 쿠사마는 뉴욕에 거주하며 반(反) 문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시기에 〈자기 소멸〉을 제작했다. 물방울무늬로 뒤덮인 마네킹은 공연자의 나체에 점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수십 번 이어가던 행위의 연장선에 있다. 강렬하면서도 어딘가 불길한 느낌을 주는 ‘자기 소멸’이란 제목은 눈앞에 펼쳐진 다채로운 장면과 유쾌하게 대비된다. 쿠사마는 자신의 예술 세계 전반에 걸쳐 ‘지우기’라는 개념을 탐구했는데, 이는 부정과 긍정이 하나가 된다는 믿음에 뿌리를 둔다. 마네킹으로 제시한 인간의 존재에 물방울무늬를 가득 채울수록 자연스럽게 더 큰 전체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물방울무늬로 공간과 우리 몸을 지울 때 비로소 우리는 환경의 일부가 됩니다.”
— 쿠사마 야요이
〈자기 소멸〉, 1966~1974, Paint on mannequins, table, chairs, wigs, handbag, mugs, plates, pitcher, ashtray, plastic plants, plastic flowers, and plastic fruit. M+, Hong Kong. © YAYOI KUSAMA. Photo: M+, Hong Kong
개인이면서 우주
1987년 작 〈인간의 이미지(Imagery of Human Beings)〉(1987)에는 물방울무늬 철학의 연장선으로 서로 연결된 존재에 대한 쿠사마의 관점이 녹아있다. 다양한 크기의 동그란 흰색 점이 보라색 면을 뒤덮었다. 대부분의 점에는 작은 꼬리가 달려 있고, 때로는 다른 점과 연결된다. 올챙이를 닮은 점은 마치 남성의 정자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은하계의 장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보는 거리와 방법에 따라 작품 속 점의 밀도와 간격을 다채롭게 느낄 수 있고, 눈을 좌우로 움직이면서 살펴보면 점들이 흩어지며 움직이는 듯하다. 이는 에너지의 변화, 끊임없는 움직임을 통한 재생의 정신을 상징한다.
〈인간의 이미지〉, 1987, Acrylic on canvas, triptych, Lito and Kim Camacho Collection © YAYOI KUSAMA
“저는 제 위치로부터 무한한 우주를 가늠해보고 싶었습니다. 입자들의 축적을 그리며 저의 삶이 무엇인지 스스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인생은 곧 이런 수백 만개의 입자 가운데 하나입니다.”
— 쿠사마 야요이
점 하나가 하나의 생명을 상징할 때 이 작품은 서로 연결된 우리가 모두 우주적 하나라는 더 큰 차원으로 이해의 폭을 넓힌다. 태초부터 우리가 무수히 많은 삶을 살아왔다고 말하는 불교의 눈으로 보면 우리 모두는 수많은 생애 동안 다른 모든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 윤회 개념은 쿠사마의 세계관에서 큰 축을 차지하며, 우주의 먼지이면서도 저마다 고유한 존재인 인간을 바라보는 그의 예술 철학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모든 생명체가 세포로 구성된 것처럼 인류 전체가 하나의 존재이며, 하나의 세포 안에 우주 전체가 들어 있는 것이다.
“달도 물방울무늬고, 태양도 물방울무늬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 역시 물방울무늬죠.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우주에서도 무수한 물방울무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물방울무늬를 통해서 저는 삶의 철학을 발견하고 싶었습니다. 물방울무늬는 결코 혼자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서로 소통하는 삶처럼 두 개, 세 개, 그 이상의 물방울무늬가 모여 움직임이 됩니다. 지구는 우주의 수많은 별 중 하나의 물방울무늬에 불과합니다. 물방울무늬는 무한으로 가는 길입니다.”
— 쿠사마 야요이
〈호박〉, 1994 © YAYOI KUSAMA. Image courtesy of Benesse Art Site Naoshima (사진: Shigeo Anzai)
쿠사마 야요이는 평생에 걸쳐 자기 작품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길 염원했다. 더 나아가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세계에 관한 안목을 기를 수 있기를 바랐다. 100년 후에도 감동할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 계속 작업해야 한다고 말했던 쿠사마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라도 하듯 지금도 그의 병실이자 작업실에서 자기 자신과 예술을 일치시키는 삶을 지속 중이다. 작품을 만들 때마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란 생각에 잠긴다는 쿠사마 야요이. 삶과 예술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매번 처음인 것처럼 자문하는 그의 작품 세계에는 언제나 시작만 있다. 왜냐하면, 무한히 펼쳐지는 시작 그 자체가 의미의 종결점이기 때문이다.
박수지
박수지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 큐레이터다. 큐레토리얼 에이전시 뤄뤼(RARY)를 운영하며, 기획자 플랫폼 웨스(WESS)를 공동 운영한다. 최근에는 예술 외부의 질문에 기대지 않는, 예술의 속성 그 자체로서의 상태가 무엇인지 고민하며 전시를 기획하고 글을 쓴다. 《살 돌 기름》(2022), 《토마》(2021, 공동 기획), 《7인의 지식인》(2020), 《노려본들 어쩔 것이냐》(2020, 공동 기획), 《줌 백 카메라》(2019), 《유쾌한 뭉툭》(2018) 등을 기획했다. ‘Korea Research Fellow: 10x10’(2018, 2019), ‘두산 큐레이터 워크샵’(2019)에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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