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Vol.6
새로운 인간이라는 꿈
제59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미술전

베네치아 아르세날레 및 자르디니 일대, 2022년 4월 23일 -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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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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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비엔날레
1895년 시작한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이 올해로 59번째를 맞았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때 중단과 재개의 우여곡절을 견디면서도 20세기를 관통해 꾸준히 이어오던 이 격년제 행사가 팬데믹으로 인해 3년 만에 열렸다. 매번 새롭게 선임하는 예술감독이 이끄는 본전시에는 평균 60여 개국, 20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다양한 나라에서 야심 차게 운영하는 국가관 전시가 함께 열리기 때문에 ‘미술계의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행사다. 이번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밀라노 태생의 큐레이터, 세실리아 알레마니Cecilia Alemani가 예술감독으로 지명되어 한껏 기대를 모았다. 공공미술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뉴욕 하이라인 아트High Line Art를 이끈 디렉터 겸 수석 큐레이터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본 비엔날레 최초로 이탈리아 출신의 여성 예술감독이기도 하다.
루스 아사와Ruth Asawa의 작품 © Photo by Roberto Marossi, Courtesy: La Biennale di Venezia
알레마니가 기획한 이번 비엔날레의 타이틀은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다. 소설가이자 초현실주의 화가였던 리어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1917-2011)이 쓴 그림책 제목에서 빌려왔다. 자기 아이를 위해 직접 쓰고 그린, 다소 그로테스크한 그림책에서 캐링턴이 상상의 생명체가 등장하는 마법 세계를 묘사했다면, 알레마니의 본전시는 ‘포스트 휴먼’의 조건을 탐구하는 작품을 적극적으로 선보였다. 다양한 존재가 거주하는 혼종의 세계, 생태계를 재구성하는 흥미로운 돌연변이에 관한 힌트는 약 80여 점의 커미션 신작과 근작을 통해 본전시 곳곳에 숨어들었다.
마리아 지뷜라 메리안Maria Sibylla Merian, 토시코 타카에즈Toshiko Takaezu, 알레타 야콥스Aletta Jacobs의 작품들 © Photo by Ela Bialkowska(OKNO studio), Courtesy: La Biennale di Venezia
“본전시는 신체의 변형, 사이보그, 몸을 일종의 ‘용기(container)’로 보는 개념에 관한 이번 주제와 공명하는 예술 작품에 초점을 맞췄어요. 신체의 변형에 관한 이야기는 초현실주의뿐만 아니라 미래주의, 일부 다다이즘 예술가와 바우하우스 예술가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죠.”
— 세실리아 알레마니Cecilia Alemani와 도디 카잔지안Dodie Kazanzian의 《보그Vogue》 2022년 4월 18일 인터뷰 중에서
이번 비엔날레는 유독 ‘최초’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었다. 본전시에 참가한 작가의 성비와 인종, 국적과 경력 등을 소수자에 집중한 알레마니의 선택은 다수의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참여 작가의 90%가 여성 작가였고, 작가와 국가관을 비롯해 평생공로상까지 비엔날레 최고의 영예인 황금사자상 세 개가 모두 여성에게 돌아가며 이례적인 성비는 더욱 주목받았다. 반면 ‘작품을 볼 뿐 성별을 본 것이 아니다’라는 알레마니의 말은 그동안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이례적이라고 분류하던 관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알렉산드라 엑스테르Alexandra Exter의 작품과 에디슨의 ‘말하는 인형’ 관련 자료 © Photo by Roberto Marossi, Courtesy: La Biennale di Venezia
캐링턴이 직접 쓰고 그린 『꿈의 우유』 속 글과 그림은 상반된 내러티브로 전개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서로 밀접하게 맞닿아있다. 이런 방법론을 좇은 알레마니는 본전시에서 ‘전시 속 전시’로 다섯 가지 ‘타임캡슐’을 설정해 관객의 관심을 높인다. 각 캡슐은 ‘마녀의 요람’, ‘군단 궤도’, ‘마법화의 기술’, ‘잎사귀, 박, 조개, 그물, 가방, 보자기, 자루, 병, 냄비, 상자, 용기’, ‘사이보그의 유혹’으로 구성된다. 전시 전반에는 미술사에서 제대로 언급되지 않았던 신비롭고 강렬한 예술가가 다수 등장하는데, 과거의 오래된 이미지가 여성주의와 포스트 휴먼을 현대적으로 아우르는 상황은 놀랍다. 타임캡슐에 담긴 19~20세기 작품은 캡슐을 둘러싼 동시대 작품과 조화를 맺고 서로 충돌하며 ‘인간 존재의 변화와 새로운 정의’라는 메시지를 관통한다.
본전시의 ‘캡슐 5’ 설치 전경 © Photo by Roberto Marossi, Courtesy: La Biennale di Venezia
초현실주의 작가의 창작 방법론을 긴밀하게 따라가며 알레마니가 그리고자 했던 ‘꿈의 우유’는 무엇일까? 꿈은 자유롭고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지만 동시에 현실의 두려움, 이루지 못한 욕망과 긴밀하게 이어진 인간적인 요소다. 알레마니는 우리 시대의 과학, 예술, 신화에 만연한 가능성과 두려움을 길어 올리며 초현실주의를 발판 삼아 질문을 던진다. “생명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이며, 식물과 동물, 인간과 비인간을 구별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행성, 다른 존재, 다른 생명체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우리는 초현실주의가 활발히 전개했던 시기와 아주 비슷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몰라요. 초현실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의 잔해에서 생겨났어요.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일, 세계 곳곳에서 등장하는 극우 정부를 생각하면 더욱 비슷하죠. 이런 상황에서 전 세계의 예술가 역시 초현실주의 태동의 시기와 유사한 방법론으로 상상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 세실리아 알레마니와 도디 카잔지안의 《보그》 2022년 4월 18일 인터뷰 중에서
키키 코겔니크Kiki Kogelnik의 작품 © Photo by Roberto Marossi, Courtesy: La Biennale di Venezia
휴머니즘의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지구상 모두가 당면한 철학적 과제다. 캐링턴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이 동물로 변하고, 또 기계가 되는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는 급진적인 상상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체를 기계로 무한하게 보완할 수 있다고 약속하는 기술 낙관론과 자동화 그리고 인공지능의 시대에서 어떻게 인간의 상호작용을 유지하고 다각화할 수 있을까? 개인과 기술의 관계, 신체와 지구 사이의 연결, 신체의 변형에 초점을 맞춘 이번 비엔날레는 ‘인간은 공생의 거미줄에 속한 일부’라는 깨달음을 관객과 공유한다. 본전시의 굵직한 흐름과 곳곳에 배치한 타임캡슐의 존재는 결국 ‘공생, 연대, 자매애’를 중심에 둔 지속가능성에 대한 제안과 조화롭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본전시의 ‘캡슐 1’ 설치 전경 , 59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 La Biennale di Venezia, The Milk of Dreams, © Photo by Roberto Marossi, Courtesy: La Biennale di Venezia
한편, 전시 전반에 걸쳐 눈에 띄는 방법론으로 진열장(cabinet)을 꼽아본다. 그동안 박물관의 진열장은 취향의 위계에서 비롯한 미술관 전시의 성격과 권위를 상징하는 물품이었다. 16세기 탐험가로 활동하던 유럽의 귀족 계층이 제 취향대로 골라 모은 희귀한 기념품을 진열장에 보관한 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으로부터 전시라는 개념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비엔날레는 이런 진열장의 역사적 맥락을 역으로 차용한다. 진열장은 미술사에서 제대로 언급하지 않은 신비로운 여성 예술가들, 현대적인 개념과 시각을 탑재한 초현실주의 미술가의 급진적인 작품, 파격적인 미래주의 양식이 담긴 글과 이미지를 품는다. 그러면서 제국주의, 이성과 논리, 남성, 이성애 등 과거 주류 세력이 역사를 구성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반성했다. 즉 이번 진열장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소중히 꿈꿀 만한 약속을 담은 상자였다. 전시라는 ‘그릇(container)’에 작품을 그러모은 이번 본전시는 갈피를 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관객, 예술의 존재와 형식을 고민하는 예술가 모두 한 번쯤 들이켜 볼 법한 ‘꿈의 우유’다.
박수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 큐레이터. 큐레토리얼 에이전시 뤄뤼AGENCY RARY를 운영하며, 기획자 플랫폼 ‘웨스WESS’를 공동 운영한다. 최근에는 예술 외부의 질문에 기대지 않는, 예술의 속성 그 자체로서의 상태가 무엇인지 고민하며 전시를 기획하고 글을 쓴다. 《토마》(2021, 공동기획), 《7인의 지식인》(2020), 《노려본들 어쩔 것이냐》(2020, 공동기획), 《줌 백 카메라》(2019), 《유쾌한 뭉툭》(2018) 등을 기획했다. ‘Korea Research Fellow: 10x10’(2018, 2019), ‘두산 큐레이터 워크샵’(2019)에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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