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Vol.4
뒤집힌, 거스르는, 끝나지 않는
《바젤리츠 — 회고전》

파리 퐁피두센터, 2021년 10월 20일 – 2022년 3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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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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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센터
“거꾸로 된 이미지는 더 잘 보인다. 곧바로 보는 이의 눈을 향한다.”
— 게오르그 바젤리츠
© Georg Baselitz 2021. Photo: BPK, Berlin, Dist. RMN-GP/ [image BPK] Georg Baselitz, Fingermalerei – Adler [Finger Painting – Eagle], 1972, Oil on canvas, 250 x 180cm. Bayerische Staatsgem–ldesammlungen, Pinakothek der Moderne, Munich. Loan from the Wittelsbacher Ausgleichsfonds

이 그림은 바젤리츠가 새로운 기법을 실험한 손가락 그림(Fingermalerei) 중 하나다. 여기서 작가는 뒤집힌 그림이 만드는 모호함을 즐긴다. 그림 속 독수리는 날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일까? 독일을 상징하는 독수리를 모티브로 한 것일까, 아니면 바젤리츠가 연못가에서 새를 관찰하던 어린 시절의 추억에서 비롯된 걸까? 초기작에 등장하는 이런 상징적 모티브는 이후 작가의 작업에서 자주 반복된다. (출처: ⟪바젤리츠 - 회고전⟫ 카탈로그)
캔버스 속에 사람이 거꾸로 서 있다. 제 얼굴을 옆으로 기울여 작품을 보려는 관람객이 더러 눈에 띈다. 평소에 알던 중력을 벗어난 그림을 제대로 보기 위해 뒤집힌 그림 앞을 오랜 시간 떠나지 못한다. 그림의 크기 또한 보는 이를 압도한다. 표면에는 두껍고 거친 물감의 질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역동적이고 묘한 감정이 일렁인다. ‘거꾸로 걸린 그림’의 작가는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1938년생으로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 ‘현대 회화의 살아있는 신화’로 불리는 페인터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바젤리츠 - 회고전》은 지난 60여 년 간의 필력을 쏟아부은 걸작을 총망라하며 작가에게도 큰 분기점이 될 중요한 전시였다. 퐁피두센터의 관장을 역임한 베르나르 블리스텐Bernard Blistène이 바젤리츠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몸소 큐레이팅을 맡아 화제가 됐다. 1960년대 초반의 〈대혼란 선언(Pandemonium Manifesto)〉 연작부터 거꾸로 된 모티프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1969년 이후의 〈영웅들(Heroes)〉과 〈분열들(Fractures)〉 연작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시도했던 회화적 실험이 풍성한 향연을 펼친다. 더불어 그의 〈러시안 페인팅Russian Paingting〉 연작과 자기반성적 작업인 〈리믹스 앤 타임Remix and Time〉도 빼놓을 수 없다.
Georg Baselitz, B f–r Larry [B for Larry], 1967, Oil on canvas, 250 × 190 cm Private collection © Georg Baselitz 2021. Photo: Jon Etter
이번 전시는 퐁피두센터의 갤러리1 공간 전체를 사용하며 총 11개의 섹션을 가질 만큼 웅장하게 구성됐다. 《아방가르드의 발견»으로 시작해 《경험의 자화상》, 《추락하는 영웅들》, 《분열된 이미지》, 《뒤집힌 이미지》, 《추상과 구상 사이》, 《추상 너머》, 《시대정신》, 《기억의 공간》, 《‘러시안 페인팅’부터 ‘리믹스’까지》, 《무엇이 남았나》로 긴 여정은 끝을 맺는다. 바젤리츠의 초기부터 현재까지 연대순으로 구성해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매 시기 강렬한 작품을 선보인 바젤리츠의 회고전이라면 가히 해봄직한 구성이다. 페인팅뿐 아니라 인물 조각, 드로잉에 이르는 주요 작품을 선별해 60년에 이르는 작업 과정을 빠짐없이 공개했다. “기억을 회화로 다시 그려내는 일은 과연 가능할까?” “회화의 기법과 모티프는 어떻게 변해왔을까?” “미술사에서 미학적인 형식은 어떻게 발전해왔을까?” “20세기와 21세기의 정치미학적 체제는 예술의 형식주의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등 일련의 전시 흐름은 전후 독일에서 예술가로서 고민했던 화두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 작가의 작품을 이렇게 다양한 카테고리로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바젤리츠라는 인물이 겪은 예술의 여정이 얼마나 다채롭고, 또한 헌신적이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 거대한 전시를 한 편의 글로 다루기엔 불가능하기에, 바젤리츠의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모티프가 나타나는 《뒤집힌 이미지》를 통해 작가가 제안하는 매력적인 철학에 집중하는 기회를 가질까 한다.
바젤리츠에게 쏟아지는 존경과 찬탄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의 인생을 알아야 한다. 사실 바젤리츠는 그의 본명이 아니다. 한스 게오르그 케른Hans-Georg Kern이 본명이다. 그는 사회주의 국가인 동독에서 예술대학을 다니다가 피카소의 작품을 오마주한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 때문에 ‘사회문화적으로 미성숙한 학생’으로 찍혀 퇴학을 당했다. 이후 서독으로 넘어간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작센주의 ‘도이치바젤리츠Deutschbaselitz’에서 새로운 이름을 따온 후 1957년부터 1963년까지 서베를린에 있는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미술 공부를 이어갔다.
Georg Baselitz in his workshop château de Derneburg, 1984 Photographed by Benjamin Katz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독일, 즉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된 정치사회적 지형은 예술에도 영향을 끼쳤다. 당시 동독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서독은 ‘서정적 추상주의’로 서로 상반된 노선을 노골적으로 강조했다. 나치즘의 패망과 함께 자기 부정에 시달리던 서독의 예술계는 전후 7년간 ‘앵포르멜Informel’에 빠져있었다. 앵포르멜은 ‘형(form)’을 ‘부정한다(in)’는 뜻으로, 커다란 상실과 혼란을 남긴 세계 대전 이후 등장한 서정적 추상 회화의 경향을 가리킨다. 문명에 대한 반성, 정치사회적 요소가 예술을 훼방하는 것에 대한 환멸, 전쟁 후 미국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예술계의 판도에 영향을 받은 복합적인 결과물이었다. 이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추구하는 동독의 예술대학에서 제명당하고, 서독으로 건너간 바젤리츠가 맞닥뜨린 현실이기도 했다.
Georg Baselitz, Die große Nacht im Eimer [The Big Night Down the Drain], 1962-1963, Oil on canvas, 250 x 180cm. Museum Ludwig, K–ln. Gift of Sammlung Ludwig, 1976 © Georg Baselitz, 2021. Photo: Jochen Littkemann, Berlin
‘이것 아니면 저것’을 선택하고 수긍해야만 하는 상황은 바젤리츠의 반항심을 불렀다. 그의 작업은 주류를 역행하며 싹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4년 서독의 베르너&카츠 갤러리에서 열렸던 첫 개인전에서 그의 몇몇 그림은 ‘풍기문란죄’로 정부에 압수당한다. 어린 소년의 성기를 과장되게 표현한 까닭이었다. 서정적인 추상회화와 팝아트가 주류였던 서독의 미술계와 대중은 바젤리츠의 돌출 행동을 당황스러워했고, 불편해했다. 어쩌면 용납할 수 없는 분위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바젤리츠에게는 오직 예술, 그 자체가 중요했다. 예술은 철저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회화를 도구화하거나 포장하는 그 어떠한 행위와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그의 그림은 동독과 서독 그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저는 예술가라기보다 화가입니다. 예술가는 그들 스스로를 드러내는 사람이고, 화가는 그림이 스스로 드러나도록 그리는 사람이죠.”  
— 게오르그 바젤리츠, 바이엘러 미술관과의 인터뷰 중에서
이후 그의 철학을 마치 선언처럼 명확하게 제스처로 취한 작품이 바로 1969년부터 시작한 ‘뒤집힌 그림’이다. 바젤리츠는 당시 개념예술을 옹호하던 사람들이 “회화는 죽었다”고 선언할 때, 오히려 회화를 갱신할 것을 완고하게 주장했다. 그의 나이 30세에 바젤리츠는 그림 안에 들어 있는 형상을 거꾸로 뒤집었다. 이 단순하면서도 파격적인 시도는 미술계를 전복시키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그의 뒤집힌 그림을 접하면서 회화가 던지는 근본적인 의문과 직면했다. “내가 세상을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본 것이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Georg Baselitz, Die Mädchen von Olmo II [The Girls of Olmo II], 1981, Huile sur toile, 250x249cm –Georg Baselitz (Photo credits: © Audrey Laurans - Centre Pompidou, MNAM-CCI /Dist. RMN-GP/Image references: 4Y02940)
기존의 회화가 작품의 메시지에 집중하게끔 유도하며 감상자의 존재를 지우는 경향을 보였다면, 거꾸로 뒤집힌 바젤리츠의 그림은 관람자가 자신의 감상 행위에 더욱더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창작과 감상의 방향성을 바꿔버린 이러한 시도는 곧 회화를 그리는 작가에게 일종의 자유를 선사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바젤리츠는 이후에도 자신의 그림이 한 가지 스타일로 규정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 조각과 드로잉 등 다른 매체를 사용하며 창작을 이어갔다. 이때마다 ‘뒤집힌 이미지’의 원리 또한 다채롭게 변주되었다. 결국 그의 ‘뒤집힌 이미지’는 그림을 그리고, 보여주고, 감상하고, 생각하는 모든 과정을 총체적으로 새롭게 바꿔버린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언제나 상당한 저항에 부딪히곤 합니다. 그만큼 의식적으로 아웃사이더의 길을 가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바젤리츠가 할 법한 선택이었다.
Georg Baselitz, In der Tasse gelesen, das heitere Gelb, [Read in the cup, the playful yellow], 2010, Huile sur toile, 270x207cm –Georg Baselitz (Photo credit: © Jochen Littkemann, Berlin)
생존하는 예술가에게 ‘회고전’은 양가적인 전시다. 소중하고 영광스러운 마음과 두렵고 부담스러운 마음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아직 왕성하게 작업하며 활동하는 입장에서 살아있는 동안 해왔던 작업을 동시대 사람에게 인정받는 즐거움만큼이나 도리어 일종의 ‘무덤’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번 퐁피두센터의 《바젤리츠 - 회고전》은 바젤리츠라는 위대한 예술가의 끊임 없는 갱신과 도전의 과정에 주목했다. 11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진 여정을 모두 끝내도, “바젤리츠는 앞으로 어떤 새로운 작업을 할까?” 기대감을 갖게 된다.
바젤리츠는 상반된 주장 사이에서 과감하게 회화의 본질을 주장했고, 그 결과로 나온 ‘뒤집힌 이미지’는 단순하고도 강렬한, 거장의 위대한 혁신으로 남았다. 자신만의 길을 찾고 또 찾으며 기나긴 여정을 보낸 바젤리츠는 지금도 회화를 탐구하는 지침 없는 도전에 거리낌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비범한 예술가의 태도에서 발상과 관점의 역동적인 전환을 발견하는 기쁨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대형 회고전을 마친 바젤리츠의 실험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는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해야 했고, 다시 ‘순진’하게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했습니다.
— 게오르그 바젤리츠, D. 커스팁과의 인터뷰 중에서, 〈고스 투 댄스: 도널드 커스팁과 바젤리츠의 대화
(Goth to Dance: Donald Kuspit Talks with Georg Baselitz)〉, 《아트포럼》 33, No.10(1995년 여름호), p.76.
Georg Baselitz, Weg vom Fenster [Away from the Window], 1982, Oil and tempera on canvas, 250x250cm -Georg Baselitz (Photo credit: © Robert Bayer)
Georg Baselitz, Bildneunundzwanzig [Picture-Twenty-Nine], 1994, Oil on canvas, 290x450cm –Georg Baselitz (Photo credit: © Jochen Littkemann, Berlin)
Georg Baselitz, Modell für eine Skulptur [Model for a Sculpture], 1979-1980, Linden wood and tempera,178x147x244cm –Georg Baselitz (Photo credit: © Rheinisches Bildarchiv Köln, Walz, Sabrina,2001, rba_c015132)
박수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 큐레이터. 큐레토리얼 에이전시 뤄뤼AGENCY RARY를 운영하며, 기획자 플랫폼 ‘웨스WESS’를 공동 운영한다. 최근에는 예술 외부의 질문에 기대지 않는, 예술의 속성 그 자체로서의 상태가 무엇인지 고민하며 전시를 기획하고 글을 쓴다. 《토마》(2021, 공동기획), 《7인의 지식인》(2020), 《노려본들 어쩔 것이냐》(2020, 공동기획), 《줌 백 카메라》(2019), 《유쾌한 뭉툭》(2018) 등을 기획했다. ‘Korea Research Fellow: 10x10’(2018, 2019), ‘두산 큐레이터 워크샵’(2019)에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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