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Vol.7
한류 3.0 이후의 한류
《한류! 더 코리안 웨이브》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 2022년 9월 24일 - 2023년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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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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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
영국 런던에 위치한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이하 V&A)에서 의외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름부터 그 취지가 선명한 《한류 1)! 더 코리안 웨이브Hallyu! The Korean Wave》다. V&A는 1851년 만국박람회의 성과를 기념하며 설립한 뮤지엄이다. 그 역사가 증명하듯 장식미술, 디자인, 퍼포먼스 등에 집중해 인류학적 관점으로 유물을 수집, 보존, 전시하는 유구함을 자랑한다. 이런 역사적 배경과 명확한 지향점을 가진 뮤지엄에서 ‘한류’를 주제로 전시를 기획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물음표가 한 가득 떠올랐다. “현재 진행형의 흐름인 한류가 어떻게 V&A의 전시 주제가 될 수 있었을까? 한류가 전시할 만큼의 실체를 가진 것이었단 말인가?”
이런 질문의 바탕에는 어쩌면 한류에 관해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왔던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따금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한국영화, 감독, 배우의 해외 수상 소식, 국내에서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에 대한 국제적인 열광, K팝 아티스트의 폭발적인 인기까지, 소위 ‘국위선양’이라고 좋아할 만한 소식은 왠지 가깝고도 멀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지난 9월 ‘프리즈Frieze’ 아트 페어가 서울에 성공적으로 론칭하고, 해외 유명 갤러리가 줄지어 서울 지점을 내는 등 세계 미술계에서도 한국이 부쩍 주목받는 것을 체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류는 손에 잡히지 않는 단어였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한국인이 아닌 이들이 한국이 아닌 곳에서 열리는 전시를 통해 한류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시작하는 전시 설치 전경 ©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한류! 더 코리안 웨이브》의 설치 전경 ©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V&A가 《한류! 더 코리안 웨이브》를 통해 다룬 한류는 그 방향성이 선명했다. 이번 전시의 총괄 큐레이터이자 V&A 한국관 큐레이터이기도 한 로잘리 킴Rosalie Kim은 “한국은 전쟁의 상흔을 안고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문화를 선도했고, 사회의식을 갖춘 글로벌 팬에 의해 증폭돼 문화 강국으로 이미지를 바꿨다”라고 전시 기획 의도를 밝힌 바 있다. ‘한류란 무엇인가?(What is Hallyu?)’라는 소제목이 붙은 도입부는 2012년 국제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가수 싸이(PSY)의 〈강남스타일〉로 전시의 시작을 알린다. 한류 콘텐츠로 연일 각광받던 〈강남스타일〉이 어느덧 10년 전 이야기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전시는 누구나 한번쯤 접했을 대중적인 콘텐츠로 관객의 친밀감을 확 끌어당긴 뒤 곧이어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독재정권, 개발도상국으로서의 비약적인 산업 발전, 민주주의 쟁취라는 역동적인 근대사를 가진 한국의 역사적 배경을 살핀다. 첫 번째 섹션인 ‘기술 강국이 되기까지(From Rubble to Smartphones)’다. 1970년대 흑백 사진, 1988 서울올림픽의 호돌이 포스터, 삼성전자 공장 사진 등의 사료는 한국인이 보기엔 즉각적으로 시대와 맥락이 단번에 읽힌다. 그러나 외국 관객이 해당 사료를 감각적으로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타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문해력 격차(literacy gap)는 자연스러운 난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는 단청의 색 조합에서 도출한 컬러 배리에이션과 백남준, 함경아, 권오상 등 한국 현대미술 작가 작품의 유기적 배치, 공간의 적극적인 대비감을 통한 감각적인 전시 흐름이 관객을 매혹한다.
백남준의 〈미라지 스테이지〉(1986) 설치 이미지 © Nam June Paik Estate,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권오상 작가의 조각을 보여주는 설치 이미지 ©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이번 전시의 크리에이티브 리드를 맡은 김영나 디자이너는 한류를 ‘살아있는 생물’로 파악했다. “저는 한류가 하나의 분야나 국가에 귀속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없는 동시대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했어요. 전시 준비가 장기간 지속되다 보니 콘텐츠가 중간에 바뀌어야만 하는 상황들이 생기기도 했죠. 한류가 정말 변화무쌍한 콘텐츠라는 점을 다시 실감했던 것 같아요. 요즘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는 영역들이 한류와 관련된 게 워낙 많기도 하고요.” 이번 전시의 킥오프는 오래되었다. 전시 준비를 시작하던 3년 전만 하더라도 영화 〈기생충〉의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이나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국제적인 성공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역동적인 한류의 성격 때문에 두 번째 섹션 ‘K드라마와 영화, 새로운 세상을 펼치며(Spotlighting K-drama and Cinema)’의 전시 요소는 준비 기간 중 그 내용이 계속해서 바뀌었다.
이런 변화무쌍한 콘텐츠를 진열장(cabinet) 형태로 전시했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진열장은 개인의 취향을 보여준다는 역사적 맥락을 갖고 있기도 하거니와, 과거의 유물이나 시공간을 원래의 맥락에서 이탈시켜 현재의 주제로 붙여놓는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한류가 ‘공식적으로’ 인류사에 남을만한 세계적 경향성으로 동의되는 듯한 느낌을 안겨 준다. 실제 김영나 디자이너는 ‘혼종성(Hybridity)’에 주목해 아이디어를 넓혔다. 예컨대 한국 1세대 광고 사진가 김한용(1924-2016)의 광고 포스터와 K팝 아티스트 블랙핑크 멤버인 리사의 미국 《빌보드Billboard》 매거진 커버 이미지를 나란히 배치할 때 생기는 맥시멀한 혼종성이 바로 그것이다. “시대가 뒤죽박죽 섞인 콘텐츠를 하나로 엮는 방식으로 캐비닛이 굉장히 효과적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카이브화되어 절대성을 가진 콘텐츠처럼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개인의 주관성에 관한 유연함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장치가 아니었나 해요.” 요컨대 이는 국적을 초월한 동시대 사람이 ‘한류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에 관한 접근이었다.
《한류! 더 코리안 웨이브》의 설치 전경 ©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전시는 ‘K팝과 팬덤, 세계적인 박자(Sounding K-pop and Fandoms)’와 ‘K뷰티와 패션, 밝은 전망(Making K-beauty and Fashion)’으로 이어지며 마무리한다. 역시 한류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다. 이번 전시의 파격적인 수집품 중 하나는 K팝 팬들이 직접 제작한 응원 배너들이다. 뮤지엄의 주요한 역할이 미술품 및 사료의 수집·보존·연구라는 점에서 이제 한류는 일종의 전 세계적 문화 현상으로서 수집·보존·연구가능한 영역에 포함되었다고 독해해볼 수도 있겠다. ‘무엇을 어떻게 역사화 할 것인가’에 대한 동시대적 입장은 이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문화의 변형과 궤를 같이한다.
이번 전시는 비교적 긍정적이고, 명랑하고, 활기찬 뉘앙스가 가득하다. 학술적, 비평적 관점에서의 진지한 접근이라기보다, 대중문화 산업이 견인하는 흐름의 여파를 정리하는 정도로 보이기도 한다. 한류의 문화적 깊이와 지속성에 관해 당사자인 우리는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할까? 김영나 디자이너는 한 가지 흥미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저는 지금 활발히 활동하는 20대 창작자를 주목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어딘가에 확실한 소속감을 느끼지 않고, 딱히 안전하게 기댈 만한 곳이 없는 사람들 특유의 강력한 에너지가 느껴지거든요. 그들이 만드는 ‘오리지널리티’로부터 그다음의 한류를 예감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한류! 더 코리안 웨이브》의 설치 전경 ©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문화콘텐츠 연구자들은 한류의 변천을 ‘동아시아 한류’와 ‘한류 2.0’, ‘한류 3.0’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IMF 이후 <대장금>과 같은 한국 TV 드라마가 아시아권에서 주목받던 첫 번째 궤도를 지나, 2000년대 중반 이후로 가늠하는 한류 2.0에서는 온라인 게임과 아이돌 문화가 주류였다. 현재 진행형인 한류 3.0에서는 K팝 외에도 한글, 복식, 음식, 뷰티 전반을 꿰는 K콘텐츠에 관한 국경 없는 팬덤이 펼쳐지고 있다. 한류는 이제 종적(diachronic)인 분류에 그치지 않고 횡적(synchronic)인 접근으로서 개념화, 범주화되고 있다. 이번 전시 이후로 또 어떤 변화가 한류를 재구성할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1) 한국과 한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국제적 관심의 증가를 일컫는 고유명사. 한국의 음악, 영화, 텔레비전, 패션 및 음식의 세계적인 흥행 또는 한국의 대중문화와 엔터테인먼트 그 자체. 한류 열풍, 한류 팬, 한류 스타 등의 수식어로 자주 쓰임. - Oxford English Dictionary
박수지
박수지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 큐레이터다. 큐레토리얼 에이전시 뤄뤼(RARY)를 운영하며, 기획자 플랫폼 웨스(WESS)를 공동 운영한다. 최근에는 예술 외부의 질문에 기대지 않는, 예술의 속성 그 자체로서의 상태가 무엇인지 고민하며 전시를 기획하고 글을 쓴다. 《살 돌 기름》(2022), 《토마》(2021, 공동 기획), 《7인의 지식인》(2020), 《노려본들 어쩔 것이냐》(2020, 공동 기획), 《줌 백 카메라》(2019), 《유쾌한 뭉툭》(2018) 등을 기획했다. ‘Korea Research Fellow: 10x10’(2018, 2019), ‘두산 큐레이터 워크샵’(2019)에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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