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음악 지휘자 김선아
음악의 본질에 다가간다는 것
고음악 연주는 작곡가가 곡을 만들었던 시대의 악기를 사용하고 당시의 연주법을 따르는 역사주의 해석이다. 정통성을 찾아가는 작업이란 점에서 창조적인 작업이기도 하다. 얼마 전 부천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김선아 지휘자는 한국에서 고음악이 자리 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시대가 흐르면서 음악의 양식과 표현방식이 달라졌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음악이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라고 말한다.
Cred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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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영
촬영
Salt Studio
편집
Double-D
자료제공
김선아
장소
뮤직스튜디오 타수
About the Interviewee
한국의 대표적인 고음악 지휘자. 연세대학교에서 오르간을 전공하고 독일 뒤셀도르프 국립음악대학에서 교회음악과 합창지휘를 전공했다. 2005년 바흐솔리스텐서울, 2007년 콜레기움보칼레서울을 창단했다. 현재 콜레기움보칼레서울의 지휘자, 콜레기움무지쿰서울의 음악감독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2022년 1월 부천시립합창단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했다.
Q1.
클래식음악을 하면서 고음악으로 방향을 잡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대학 시절 은사님이 미국에서 바로크음악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쳄발로 1)도 전공한 분이었어요. 덕분에 자연스럽게 바로크 연주 양식과 더불어 바흐와 이전 시대의 음악을 배울 수 있었죠. 독일 유학 시절에도 바로크음악을 그 시대의 악기로 연주하는 대가의 마스터클래스에 찾아다니며 바로크음악에 빠져들었답니다.
Q2.
한국에 돌아온 뒤 바흐솔리스텐서울과 콜레기움보칼레서울을 창단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신 것이 2000년대 한국의 고음악 시장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지금은 한국에도 고음악 애호가들이 많이 늘어났는데, 귀국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어떤 변화가 느껴지나요?
2000년대 초반에 비하면 현재 시대악기 연주자와 애호가층이 두터워진 것이 사실이에요. 그동안 세계적인 고음악 단체들이 꾸준히 내한 공연을 하며 고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크고 작은 국내 고음악 단체들이 많은 노력을 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현재 제가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시대악기 단체인 콜레기움무지쿰서울은 시립합창단과 협연을 많이 하는데, 실제로 시대악기로 협연하길 원하는 지휘자들이 많아져서 보람을 느껴요.
Q3.
시대악기로 하는 고음악 연주는 음량이 작고 기교가 절제된 면이 있죠. 그래서 순수하고 소박한 매력이 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한국의 클래식 관객들 중에서도 제한된 애호가층이 주로 감상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맞습니다. 슴슴한 맛이랄까요. 변화가 빠르고 다이내믹한 우리나라에서 고음악이 뿌리내리기 쉽지 않는 이유 중 하나예요. 하지만 본질은 언제나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성 있는 연주와 뛰어난 실력, 새로운 레퍼토리로의 과감한 도전 등이 그 본질에 해당하겠죠.
Q4.
콜레기움보칼레서울과 콜레기움무지쿰서울의 레퍼토리는 바로크에만 한정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 레퍼토리를 확장하기 위해 바로크 음악을 넘어 어떤 작품들을 연주하시나요?
최근 2, 3년간 두 단체에서는 모차르트, 베토벤, 하이든 등 고전시대의 작품들로 정기연주회를 개최했어요. 오랫동안 꿈꾸던 일이기도 하죠. 사실 유럽처럼 시대악기로 고전시대의 작품을 연주하는 것이 꿈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고전시대 악기가 필요하고 해외에서 많은 연주자들을 섭외해와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모던악기로 고전 스타일을 살려 연주하는 데 만족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꼭 그 시대의 악기로 연주해 국내 음악팬들에게 고전시대 본연의 사운드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Q5.
작곡가가 곡을 만들었던 당시의 악기를 사용하고 그 시대의 연주 방식을 따른다는 점에서 고음악은 음악의 본질에 다가가는 연주인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이 창조적 작업이기도 하고요.
그렇습니다. 20세기 들어서 클래식 음악에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고 여겨질 무렵, 고음악 운동이 유럽 음악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고 생각해요. 고음악 연주자들이 레퍼토리를 확장해 시대악기로 19세기 작품까지 연주하면서 애호가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줬죠. 주류 오케스트라들도 고음악 연주자들을 멘토로 삼아 새로운 사운드와 해석에 눈을 떴고, 현재 유럽 클래식 시장에 새로운 길을 개척한 계기가 됐어요. 즉,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한 셈이죠. 이는 모든 작곡가들의 창작 원리이기도 합니다.
Q6.
음악 지휘자로서 가장 고전적인 것, 가장 현대적인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고전이란 어떤 기준과 표준을 의미하는 데 반해 현대적이라는 단어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의미로 다가옵니다. 연주자로서 고전은 고전시대 작품만이 아닌, 올바른 기준을 갖춘 연주력, 즉 탄탄한 기본기를 생각하게 하고, 현대적인 것은 현대음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연주 방법, 레퍼토리의 개발, 소통방식이 될 수 있겠죠. 대칭점에 있는 이 두 가지는 모두 음악가로서 지녀야 하는 덕목이면서 밸런스를 맞춰야 성공할 수 있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Q7.
다른 예술 장르도 마찬가지지만 비대면 시대에 고음악 연주자들의 소통방식도 더 다양해진 것 같습니다. 지난 2년간 팬데믹 상황에서의 음악활동은 어땠나요?
제게도 힘든 시간이었어요. 해외 연주자들과 함께 개최하기로 했던 공연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고 독일 순회 연주를 비롯해 많은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됐죠. 팬데믹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서 소수의 단원들과 무반주 합창곡을 녹화해 공개했고, 조심스럽게 정기연주회와 초청연주회도 진행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서울문화재단에서 기획한 ‘Art must go on’ 프로젝트에 선정돼 서울바흐축제(Bachfest 2021) 온라인 음악회를 개최했는데, 이를 계기로 매년 축제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팬데믹 상황이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Q8.
음악 공연을 한 번도 감상해보지 않았다면, 어떤 자세로 감상하면 좋을까요?
마음을 열고 듣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클래식 공연은 18, 19세기 작곡가들의 곡들을 위주로 연주해서 음악 시장이 좁아요. 그러나 음악의 역사는 너무나 길고 좋은 음악도 많죠.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아름다운 세계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습니다. 고음악은 주로 ‘말’과 연결되어 있어요. 성악 작품이든 기악 작품이든 수사학(Rhetoric)이 고음악 작곡에 가장 중요한 원리였고 작은 모티브들도 이름이 붙여질 만큼 관용적으로 사용됐죠. 음악이 내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어떤 감정을 전달하려 하는가에 집중해 감상한다면 작곡가들이 음악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쉽게 느낄 수 있을 겁니다.
Q9.
올해 부천시립합창단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해 더욱 바쁜 한 해가 되실 듯합니다. 부천시립합창단에서는 어떤 무대를 주로 선보이실지 궁금합니다.
시민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를 선정해 다양한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기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2022년에는 미술관 음악회, 음악으로 듣는 동화, 시 낭송이 있는 음악회 등을 선보입니다. 또한 풍부한 경험과 중후한 사운드, 훌륭한 가창력 등 부천시립합창단의 장점을 살려서 고전, 낭만 시대의 작품이나 한국 작품들을 중심으로 전문적인 레퍼토리를 구축해보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로 취임 음악회에서 하이든, 슈베르트의 작품으로 선보였고 올해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을 비롯한 독일 낭만음악을 많이 연주할 예정이에요.
1) 16~18세기에 주로 사용하던 피아노의 전신. ‘하프시코드’라고도 부른다.
안미영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쓴다. 《노블레스》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서 일했고 4권의 책을 출간했다. 현재 프리랜스 에디터이자 카피라이터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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