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음악 작곡가 겸 지휘자 최재혁
경계를 넘어 소통하는 예술을 위해
클래식 음악회에서 현대음악 초연곡 1)들이 무대에 오를 때가 있다. 현존하는 작곡가의 음악이 관객에게 첫 선을 보이는 그 무대에서 관객들은 새로운 세계와 만나고, 작곡가는 새로운 소통을 시도한다. 현대음악 작곡가 겸 지휘자 최재혁은 음악의 경계를 넘어서고 특정한 범주에 갇히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이끄는 현대음악 단체 앙상블블랭크 역시 음악단체를 넘어 하나의 예술단체로 나아가길 꿈꾼다.  
Cred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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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영
촬영
Salt Studio
편집
Double-D
자료제공
최재혁
촬영협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가의집
About the Interviewee
작곡가 겸 지휘자. 2017년 제네바 국제 콩쿠르 작곡 부문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했고, 2018년 루체른 페스티벌을 계기로 국제 무대에서 지휘자로도 데뷔했다. 뉴욕 줄리어드 음악원 작곡과에서 학사와 석사 졸업 후 현재 베를린의 바렌보임-사이드 아카데미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2022년 더하우스콘서트 2) 상주음악가 3) 로 선정된 현대음악단체 앙상블블랭크의 예술감독이다.
Q1.
앙상블블랭크는 2015년에 창단한 현대음악 단체죠. 어떻게 출발했는지 궁금합니다.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만난 음악 친구들 4명이 실내악 단체를 만들기 위해 모인 것이 시작이었어요. 우리만의 차별성을 갖추기 위해 고전음악보다는 주로 현대음악을 연주했는데 점차 현대음악의 매력에 깊이 빠졌어요. 지금은 17명의 멤버들이 함께하는 현대음악 전문 단체로 성장했습니다.
Q2.
올해 20주년을 맞은 더하우스콘서트의 상주음악가 프로젝트 ‘아티스트 시리즈’에 앙상블블랭크가 선정됐죠. 총 4회의 공연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예술감독으로서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구성했는지 듣고 싶습니다.
현대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우리가 가진 음악에 대한 애정을 공유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스토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공연마다 주제가 있습니다. 첫 무대는 중세시대부터 현존하는 작곡가들의 곡까지 아우르는 프로그램으로, 음악의 아름다움에 대한 변천사를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에요. 고전음악 뿐만 아니라 지금의 현대음악 또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관객들과 공유하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Q3.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현대음악 단체지만 통합적인 면이 많이 엿보입니다. 음악을 넘어 예술이라는 보다 큰 범주를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앙상블블랭크의 지향점이 궁금해집니다. 장기적으로 다른 예술 분야와 협업을 하실 계획도 있나요?
앞으로 ‘음악단체’가 아닌 ‘예술단체’로 성장하고 싶어요. 2023-24년에는 소리예술 창작자와 시각예술 창작자들이 협업하는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소리예술 창작가는 작곡가를 의미하고, 시각예술 창작자는 무용, 회화, 조각, 비디오아트, 그래픽, 패션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죠. 각 분야의 젊은 예술가들을 공모해 통합된 예술을 선보이거나 서로 실시간 영향을 주고받으며 창작하는 프로젝트입니다.
Q4.
현대음악을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초연곡을 연주하는 무대에서 그 시간을 낯설게 느끼는 관객들과 교감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새로운 것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어렵다고 느낄 수 있어요. 그렇다면 어떤 예술 경험이 쉬운 것일까 반문하게 됩니다. 쉽다는 건 익숙함에서 비롯된 착각일 수도 있죠. 저는 모든 예술 경험이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가 권위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사람들과 감정을 공유하며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하죠. 그 과정에서 소통이 중요합니다. 작품의 예술성을 강조하기보단 경험이 곧 추억이 될 수 있도록 개인적인 연결점을 만들어 소통해야 합니다. 그런 소통을 통해 사람들이 상상하도록 이끌고 자유롭게 예술을 나눌 수 있죠. 이 모든 과정은 전체적으로 스펙터클하게, 몰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5.
작곡을 할 때는 다른 문화예술 분야, 특히 그림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다고 들었어요. 영감을 숙성시키고 구체화해가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나요?
어느 도시를 가도 미술관이 있죠. 그림 앞에 서서 이 작품이 어떤 소리를 담고 있을지 상상해요. 그러면 제 안에 있는 소리들이 재구성되고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작품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 다른 경험들이 쌓이는 거예요. 제가 해석한 그림의 소리죠. 그 소리를 담고 집으로 돌아와 이 각도, 저 각도로 다듬고 오선지에 적은 뒤 다시 고민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컴퓨터를 활용하지 않고 오선지에 펜으로 쓰는 이유는 자율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에요. 컴퓨터가 허용하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을 따르다 보면 기계가 저를 지배하게 됩니다. 또 제가 뭘 썼는지 쉽게 돌려볼 수 있으면 내면의 귀를 발달시킬 수 없게 되죠. 상상했던 소리를 만들어갈 때 컴퓨터의 소리에서 이어가면 작품의 방향성도 달라질 수 있어요.
Q6.
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 작곡 부문에서 우승했을 당시, <클라리넷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녹턴 4)III(Clarinet Concerto “Nocturne III”)>을 통해 녹턴을 새로운 방식으로 선보였어요. 창작자들이 이러한 발상의 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창작은 불만에서 시작된다는 말도 있죠. 당시에 저는 ‘아니, 왜 쇼팽이 ‘녹턴’이란 단어를 독점하고 있는 거지?’ 이런 질투와 반항심을 가지고 작품을 썼습니다(웃음). 창작자들은 끊임없이 반항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발전이 가능한 게 아닐까요.
Q7.
위촉을 받은 곡을 작업할 때도 마찬가지인가요?
작품 의뢰를 받는다는 건 행복한 일이에요. 제 예술에 대한 관심이 있고 저를 더 알고 싶어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분명 어느 정도의 기대감을 가지고 위촉을 하실 텐데, 그 기대를 벗어나는 일탈이 작곡을 재미있게 만들어줍니다. 스스로 답습하는 것도 피할 수 있죠. 물론 답습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미학을 완벽하게 추구하는 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니 위촉곡을 만들 때는 잠시 일탈합니다. 그런 일탈을 통해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하기도 하죠.
Q8.
음악가로서 가장 좋은 태도와 가장 나쁜 태도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가장 좋은 태도는 호기심을 잃지 않고 무리한 상상을 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가장 나쁜 태도는 어떠한 틀에 제 생각을 맞추는 것이죠. 모든 것은 열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Q9.
앙상블블랭크의 장기적인 목표, 그리고 작곡가이자 지휘자 최재혁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시작했지만 세계 곳곳에 저희를 기다리는 멋진 공간들이 많아요. 앙상블블랭크는 예술가들이 실험할 수 있는 단체, 그리고 여러 예술을 통합하고 융합하는 예술단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치, 철학, 경제의 토대가 되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것이 순수예술이고, 이러한 예술이 지원을 받아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이 더 풍요로워질 거예요. 작곡가와 지휘자로서 제 궁극적인 목표는 함께 예술을 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 작곡 이후 무대에서 처음으로 연주하는 곡. 국내 초연, 세계 초연 등으로 구분한다.
2) 2002년 연희동의 '집'에서 출발한 음악회로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현재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진행되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 없이 연주자와 관객이 하나되는 공연이다.
3) 공연장이 연주자에게 레퍼토리를 개발하고 실험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고 음악적 세계를 조명한다. 보통 1년 단위로 진행된다.
4) 고요한 밤에 어울리는 낭만적이고 달콤한 선율의 소품곡으로 야상곡이라고도 한다. 폴란드의 작곡가 쇼팽의 피아노 곡들이 대단히 유명하다.
안미영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쓴다. 《노블레스》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서 일했고 4권의 책을 출간했다. 현재 프리랜스 에디터이자 카피라이터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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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아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