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트 아티스트 하이이화
내면에서 시작한 미지의 생태계
플랜트 아티스트이자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는 하이이화(河二二火, HA I I HWA)는 자연의 축소판인 식물의 다양한 형태와 선에서 영감받아 새로운 외계 식물을 선보이는 작가다. SF 영화에 등장할 법한 낯선 형태의 외계 식물은 작가가 내면의 감정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그는 겉으로 보이는 것 너머를 인식하고 내면의 가치를 찾는 동양적 관점으로 접근해 새로운 형태의 작품을 창조한다. 최근 하이이화 작가는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열리는 국제꽃페스티벌 ‘플로라 축제’에 초청돼 ‘식물 지능’을 주제로 자신의 외계 식물을 선보였다. 작가의 내면에서 출발한 외계 식물은 생경한 아름다움을 보여줄 뿐 아니라 미래의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확장 중이다. 외계 식물의 출발부터 그 미래까지, 하이이화 작가가 창조하는 새로운 생태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Cred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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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영
촬영
Salt Studio
편집
Double D
About the Interviewee
하이이화는 대학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후 방송국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근무했고, 현재 플랜트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외계 식물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다양한 기업 광고의 비주얼을 기획하고 여러 브랜드와 협업하며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2023년 10월,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열린 국제꽃페스티벌 ‘플로라 축제’에 한국인 최초로 초청돼 현지에서 거문고 음악과 결합한 장소 특정적 작품을 발표했다.
Q1.
하이이화(河二二火)라는 이름이 매우 독특합니다. 이름에 담긴 물과 불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저는 작업을 할 때 대조적이고 대립하는 관계를 선호하는 면이 있어요. 자연의 대립 관계 중에서 가장 크게 와닿는 게 물과 불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모두 제가 끌리면서도 상반된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라 둘을 조합하면서 좀 더 강조하는 의미로 이(二)를 두 번 넣었어요. 결국 자연의 상반된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어서 지은 이름입니다.
Q2.
과거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했고, 아트 디렉터로서 비주얼을 기획하기도 했는데요. 외계 식물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디자이너로 일할 때는 제 것이 아닌 대상을 표현하면서 압박감을 느꼈어요. 오래 하다 보니 그런 감정이 거세게 몰아쳐서 번아웃이 닥쳤죠. 그때 제 머릿속에 있는 세계를 작업으로 풀어내면서 힘든 감정을 해소했는데요. 외계 식물도 그렇게 탄생하게 됐습니다. 마음 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작업한 결과물을 살펴보니, 마치 외계에서 온 느낌이 들어서 이름을 그렇게 붙였죠. 첫 작품에 애정이 많이 가는 터라 지금도 인스타그램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Q3.
식물을 작업에 사용할 때 여러모로 특수한 면이 있을 것 같아요. 재료로서 식물이 가지는 흥미로운 부분은 무엇인가요?
식물은 모두 고유한 면모와 선을 지니고 있습니다. 같은 품종이라도 자란 지역에 따라 모습이 다르죠. 게다가 크기나 각도를 조절해 이미지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로워요. 저는 외계 식물을 만들 때 먼저 그 식물의 성격이 어떨지 상상하면서 작업을 시작해요. 제 감정에서 출발해 성격이 형성되고 그에 따라 컬러나 재료를 선택합니다. 최대한 중복되지 않게 다양한 식물을 쓰려고 노력하는데요. 단일 개체로서 개성을 보여주거나 흐르는 듯한 유연한 느낌과 곡선미를 표현할 때는 꼭 생화를 사용해요. 반대로 오래 유지해야 하는 작품이나 대칭성과 연속성, 규칙성을 보여주는 설치 작업에는 조화를 주로 사용합니다.
〈외유내유 곰팡이〉
〈그래스 트리〉
Q4.
낯설고 신비로운 느낌이 외계 식물이라는 표현에 딱 들어맞습니다. 새로운 생명체인 외계 식물의 근간에 동양 예술과 불교가 존재한다는 말을 듣고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원래 동양적인 것과 불교에 관심이 많았어요. 무언가를 깨닫고 내적으로 크게 밀려드는 경외감 같은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거든요. 인간을 존중하고 내면을 중시하며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움을 추구한다는 점, 그리고 여백의 미를 살린다는 점에서 특히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Q5.
지난 10월,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열린 국제꽃페스티벌 ‘플로라 축제’에 한국인 최초로 초청받아 큰 화제가 되었는데요. 그곳에서는 어떤 작품을 선보이셨나요?
플로라 축제는 매년 주제를 선정하고 글로벌 아티스트를 초대해 주제를 풀어낸 작품을 특정 공간에 설치하도록 독려하는데요. 올해 주제는 ‘식물 지능’이었어요.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에 어디까지 접근할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이런 시점에 식물의 본질을 살펴보며 식물 지능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할지 다루는 것이었죠. 저는 초청을 받아 코르도바에 가서 인공적인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을 전시했어요. 코르도바는 이슬람 문화가 많이 남아있는 곳인데요. 제가 전시한 비아나 궁전에서 그런 면모가 특히 잘 드러났습니다. 궁전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여성스러운 안뜰에 작품을 설치하면서 현장에 거문고 음악을 틀었어요. 동양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외계 식물을 함께 설치하면서 이질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애환이 깃든 거문고 소리를 통해 식물의 애환을 함께 전달하고 싶었죠. 공간에 들어서는 사람들에게 인공지능이 식물에까지 개입하는 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Q6.
작가님의 외계 식물에는 자연에서 유래한 식물 외에도 금속이나 전자부품이 함께 등장하곤 합니다. 완전히 상반된 성격을 가진 재료를 활용할 때 어떤 시너지를 기대하시나요?
평소에 경험하지 못할 자연의 모습을 통해 시각적인 자극을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 작품은 미래에 실제로 펼쳐질 자연의 모습이거나, 상상 속에 존재하는 판타지일 수 있어요. 작업을 계속하면서 제가 만드는 디스토피아적 작품이 궁극적으로 자연에 좋은 영향을 미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을 접하는 사람들이 이런 인공적인 자연의 모습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만들고 싶었어요. 새로움을 표현하는 데 식물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금속이나 전자부품 등을 활용해 이질적인 조합을 구성하게 됐어요.
〈YU55 오렌지〉
〈오르키스 지옥〉
Q7.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은 외계 식물이 또 다른 접점을 만들어 가는 과정일 텐데요. 특히 기억에 남는 컬래버레이션을 꼽아 주시겠어요?
패션 디자이너 민주킴과의 협업이 정말 좋았습니다. 바리공주 설화에서 영감을 받은 민주킴 컬렉션을 보면서 한국의 설화를 재해석하는데 매료됐고 그 스토리에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아들을 원하던 왕과 왕비는 일곱 번째 자식도 딸을 낳자, 아이를 버리는데요. 나중에 그들이 죽을병에 걸리면서 과거 버림받았던 바리공주가 부모를 살리기 위해 약을 찾으러 떠납니다. 바리공주가 구해야 하는 약은 환생화인데요. 민주킴과의 협업에서 환생화를 모티브로 패션쇼와 화보의 액세서리를 작업했어요. 그리고 이에 영감받아 개인 작업으로 ‘족두리 외계 식물’을 만들었습니다. 바리공주 설화에는 부모를 살리기 위해 길을 떠나는 용기, 그 과정에서 겪는 두려움과 심리적 압박, 그리고 마침내 원하는 바를 얻는 환희와 기쁨 등 바리공주가 겪는 다양한 감정이 존재해요. ‘족두리 외계 식물’은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교차하는 바리공주의 내면을 족두리의 변화로 표현한 작업입니다.
〈족두리 외계식물〉
Q8.
포자체, 외계 트리, 외계 곰팡이, 외계 빙산 등 각기 다른 전시, 다른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외계 식물 작업은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생태계를 형성하나요?
각각의 외계 식물을 모으면 결국 하나의 생태계에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어떨 때는 마치 냉장고 안에 있는 자연이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어요. 태양 같은 자연의 빛이 아니라 조명 아래에서 여러 가지 외계 식물들이 살아가는 거죠. 그래서 처음 접할 때는 신선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기술의 발전과 기후 변화를 실감하면 ‘과연 이렇게 바뀌어도 되는 걸까?’ 의문을 품게 만드는 세계입니다.
작업에 열중하는 하이이화 작가
Q9.
외계 식물의 미래가 궁금합니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알려주세요.
지금까지 개별적인 작품을 주로 해왔다면, 이제 공간에 설치하는 작업으로 확장하려고 합니다. 하나의 전시 공간을 기획하고, 그 안에 제가 작업한 외계 식물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안미영
기자, 작가, 인터뷰어로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쓴다. 《노블레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일했고 에세이와 여행서 등 네 권의 책을 출간했다. 현재 프리랜스 에디터이자 카피라이터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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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베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