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 아티스트 가베
익숙함에서 발견한 영감
헤어 스타일링을 예술 영역으로 확장 중인 헤어 아티스트 가베는 신선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하는 작업으로 국내외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모티브로 삼는 그는 ‘아티스트가 찾는 답은 다름 아닌 그의 내면에 존재한다’라는 말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헤어에 의외의 재료를 사용하며 놀라울 정도로 창의적인 형태를 표현하지만, 이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친숙함을 느끼는 대상과 일상적인 경험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가베는 얼마 전 영국 패션 협회에서 발표한 ‘2023 NEW WAVE: Creatives’에 선정됐다. 헤어 분야에서 한국인이 뽑힌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헤어 아티스트의 길로 본격적으로 접어든 지 5년 만에 패션 분야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아티스트와 나란히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익숙함에서 출발한 그의 아트워크가 앞으로 어떻게 구현되고,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 기대된다.
Cred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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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영
촬영
Salt Studio
편집
Double D
About the Interviewee
가베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헤어 아티스트다. 20세에 본격적으로 미용을 시작해 헤어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우연한 기회에 진행한 개인 작업을 계기로 매거진 화보에 발을 내디뎠다. 현재 매거진 화보, 엔터테인먼트, 광고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가발과 헤드피스를 사용한 창의적인 작업을 선보이며 정력적으로 활동 중이다. 영국 패션 협회에서 발표한 ‘2023 NEW WAVE: Creatives’에 한국인 헤어 아티스트로는 사상 처음으로 선정됐다.
Q1.
최근 들려온 좋은 소식으로 인터뷰를 시작할까요? 영국 패션 협회(BFC)에서 발표한 ‘2023 NEW WAVE: Creatives’ 리스트에 한국인 헤어 아티스트로는 사상 처음으로 오르셨어요. 전 세계에서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와 함께 이름을 올린 소감이 궁금합니다.
BFC에서 발표하는 ‘NEW WAVE: Creatives’는 포토그래퍼, 캐스팅 디렉터, 메이크업 아티스트, 헤어 아티스트 등 패션 분야에서 작업하는 사람 모두를 대상으로 삼아요. 그래서 이번 선정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지금까지 끈기 있게 작업한 것에 대해 인정받는 기분이라 새로운 동기부여가 되는 느낌이고요. 무엇보다 지금까지 저를 도와주고 함께한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커요. 헤어는 패션에서 가장 마지막 부분에 속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과 작업이 없다면, 제 작업 또한 돋보이기 쉽지 않거든요.
Q2.
원래 헤어숍을 운영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헤어 스타일링, 더 나아가 본격적인 헤어 아트를 시작한 계기가 있을까요?
헤어숍을 운영하면서 제 업을 즐긴다는 생각이 점점 줄어들고 경제적인 부분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7~8년 정도 지속해 보니 초심을 잃는 것 같아서 계속 운영하는 게 맞는 걸까, 의문이 드는 시점이 찾아왔습니다. 그즈음 포토그래퍼와 협업하는 기회가 우연히 찾아왔는데요. 작업을 하면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역시 헤어라는 사실을 강하게 느꼈어요. 당시 인스타그램이 활성화되던 시절이라, 제가 작업한 헤어 사진을 업로드하며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노출하고,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도 생겼죠. 그러다 보니 운이 좋게도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지금 함께 작업하는 분들도 대부분 그때 시작한 인연들이에요. 본격적으로 헤어 작업을 시작한 건 5년 정도 됐고, 요즘은 주로 매거진 화보 촬영과 개인 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Q3.
작가님의 작업은 우리 신체의 일부이자 일상적인 소재인 헤어로 새롭고 비일상적인 세계를 선보입니다. 어디에서 주로 영감을 받으시나요?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경험한 대상에서 영감을 얻어요. 익숙한 것에서 모티브를 얻는 거랄까요. 헤어에 자개 장식을 붙이기 시작한 계기도 할머니 댁과 저희 집에 있던 자개장에 대한 추억이었어요.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헤어니까 여기에 자개를 접목하면 좀 더 멋진 스타일이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작업을 지속하면서 점차 한국성, 전통에 대해 알아보고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지인과 나눈 대화에서 상대의 감정을 느끼면서 영감을 얻기도 해요. 제 주변 누군가의 내면에 가라앉은 여러 감정과 마음을 시각적인 실루엣으로 형상화하고, 그 위에 자개를 얹어 헤어 스타일링을 완성한 경험이 기억에 남네요.
《Vogue》 글로벌 에디션을 위한 화보. 자개를 헤어피스로 활용했다. Photography: Peter Ash Lee, Photo Assistants: HyeonWoo Lee, Doheun Park, Visual Editor: Landon Phillips, Stylist: Jang Heejun, Stylist Assistant: Choi Yena, Production: A PRJECT, Executive Producer: Bo Kelly Suh, Production Assistant: Indigo Choi, Hair: Gabe Sin, Hair 1st Assistant: JiEun Kim, Hair 2nd Assistant: Semin Park, Assistant: Lee seung taek, Yun Ye Rim, Jeong Min A, lmyujin, Makeup: Oh Seongseok, Makeup 1st Assistant: Choi Yuri, Makeup 2nd, Assistant: Lee Byunghyun, Model: Um Seo Yoon, Set Design: Jeon Minkyu, Florist: Chungrokhwa Studio © Vogue
Q4.
작가님의 대표작으로 자개를 헤어피스로 활용한 작업이 빠지지 않는데요. 헤어 스타일링에 사용하기에 까다로운 부분은 없는지요?
사실 제가 사용하는 재료 중 가장 다루기 까다로운 품목이 자개입니다. 자개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 재료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서울에는 두 군데 정도였어요. 보통 저희는 자개를 주로 가구에 붙이잖아요. 이럴 때는 판박이처럼 뒤집어서 한 번에 붙이면 일이 편한데요. 헤어에는 풀이 아니라 젤이나 전분을 활용해 세부적으로 따로 작업해야만 해서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려요. 한 작품에 1~2주는 기본이죠. 그만큼 공들인 탓에 더 인정받는지도 모르겠습니다.
Q5.
자개 외에도 민화처럼 우리 전통문화를 느낄 수 있는 요소가 작업에 등장해요. 이런 한국적인 요소는 작가님께 어떤 의미가 있나요?
그동안 제가 아름답다고 느껴온 것이 녹아들어서 제 작업을 형성한다고 생각해요. 민화에 빠져 몰두하던 시기가 있었는데요. 민화의 색감을 볼 때도 헤어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골똘히 고민해 보곤 했어요. 제 작업에는 전통적인 요소가 많이 등장하지만, 제게 익숙한 것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적용한 산물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만약 한국 문화를 보여주는 작업을 하겠다는 의도로 접근했다면 부담감 때문에 지금 같은 작업이 나오지 못했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제 작업을 보고 동양적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제가 본디 그런 사람이라, 그런 방향으로 작업이 표출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Q6.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구현할 때 의도적으로 재료를 제한하는 성향은 아니신 것 같아요.
맞아요. 재료 선택에 있어서는 최대한 자유롭게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일반적으로 헤어에 사용하지 않는 재료를 찾아가는 재미도 있고요. 그래서 주변에서 제안하는 아이디어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헤드피스에 관심이 생기면서 제가 원하는 헤어 스타일링에 어울리는 액세서리가 떠오르면 레진으로 직접 만들어 보았죠. 결국 재료 덕분에 작업 세계가 더욱 확장하는 순기능도 생겼어요.
다양한 헤어피스가 놓인 작가의 작업실 풍경.
Q7.
나무를 형상화한 헤어 스타일링 작업에서는 조각이나 건축에서의 조형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유사한 설계 과정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계획한 바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시나요?
전체적인 형태를 구상하며 간단히 스케치를 남기지만, 실제 작업 중에 만들어 나가는 부분이 훨씬 더 큽니다. 대신 자료를 많이 찾아보면서 깊이 생각해야만 해요. 나무 작업의 경우, 함께 작업하는 여러 동료들과 로케이션을 계속 다녔어요. 나무를 정말 많이 살펴보면서 영감을 얻고, 헤어를 어떻게 꼬아 올릴지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는데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나무도 제겐 익숙한 것 중 하나인데요. 평소에 조금씩 스타일링에 적용하다가 해당 작업을 진행할 때 웅장하고 거대하게 펼쳐 보였죠.
《Vogue》 글로벌 에디션을 위한 화보. 헤어를 거대한 나무로 형상화했다. Photography: Peter Ash Lee, Photo Assistants: HyeonWoo Lee, Doheun Park, Visual Editor: Landon Phillips, Stylist: Jang Heejun, Stylist Assistant: Choi Yena, Production: A PRJECT, Executive Producer: Bo Kelly Suh, Production Assistant: Indigo Choi, Hair: Gabe Sin, Hair 1st Assistant: JiEun Kim, Hair 2nd Assistant: Semin Park, Assistant: Lee seung taek, Yun Ye Rim, Jeong Min A, lmyujin, Makeup: Oh Seongseok, Makeup 1st Assistant: Choi Yuri, Makeup 2nd, Assistant: Lee Byunghyun, Model: Um Seo Yoon, Set Design: Jeon Minkyu, Florist: Chungrokhwa Studio © Vogue
Q8.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프로젝트가 많은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협업자가 있다면요?
K팝 아티스트 뉴진스NewJeans와의 작업이 특히 신선했어요.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대중에게 보이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늘 고민해야 하는데요. 의외로 그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제 헤어 스타일링 작업은 예쁘게 보이는 부분에 신경 쓰기보다, 조형적인 형태를 표현하거나 기이하고 색다른 느낌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편인데요. 아이돌과 협업하면서 제가 모르던 부분을 많이 배웠어요. 대중에게 사랑받는 K팝 아티스트의 매력을 끌어내면서도 제 고유의 작업 스타일을 접목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탐구할 수 있었죠. 커머셜 프로젝트에서 확장가능한 제 작업의 최대치를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힘들었지만 즐거웠고, 개인적으로 아주 큰 배움이 되었던 프로젝트였어요.
Q9.
경계를 넘어 새로움을 탐색하고 싶지만, 아직 그러지 못하는 창작자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본인이 즐겁다면 꺾이지 않고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창작의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해결이 되더군요. 그래서 핵심은 지속하는 자세라고 생각해요. 손 놓고 고민하기보다 행동으로 이어 나가야 해요. 계속하다 보면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내기도 하고, 그로부터 결과물이 나오는 순간을 맞닥뜨리기도 해요. 저도 예전에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빨리 보여주고 싶던 시기가 있었어요. 근데 이제는 그런 조급함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지금 하는 것을 계속하다 보면 그 과정이 모여서 어느 순간 명확히 제 것으로 체화된다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이죠.
작가가 작업 중인 헤어피스의 일부.
Q10.
요즘은 어떤 작업에 집중하고 계시나요? 앞으로 작가님의 작업 세계가 어떻게 진화할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는 작업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면, 앞으로는 의미 부여에 갇히기보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작업으로 여러 가지 스타일링을 시도하고 그 다양성을 모아 보고 싶어요. 최근 제 개인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촬영을 진행 중인데요. 다른 오브제 없이 오직 헤어만 이용하는 작업이에요. 다양한 컬러를 쓸 수도 있고, 볼륨감과 조형미를 살릴 수도 있겠죠. 완전히 내추럴한 스타일이 탄생할 수도 있고요. 그런 스타일링을 수십, 수백 가지로 모았을 때 생기는 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 구체적으로 가늠이 가진 않지만, 일단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작업실을 옮겨서 함께 일하는 분들과 함께 공간을 사용하고 싶어요. 각자 작업하면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안미영
기자, 작가, 인터뷰어로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쓴다. 《노블레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일했고 에세이와 여행서 등 네 권의 책을 출간했다. 현재 프리랜스 에디터이자 카피라이터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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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이화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