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디자이너 김민주
변하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변하지 않는 것
환상적이고 동화적이면서 우아한 분위기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패션 브랜드 민주킴의 김민주 디자이너를 만났다. 컬렉션마다 특별한 세계관을 구축하는 그는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꾸준한 행보로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켜오고 있다. 최근 가회동에 오픈한 플래스십 스토어에 관한 이야기부터 글로벌 패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넥스트 인 패션〉 우승 이후의 고민, 디자이너로서 지키고 싶은 것까지 다양한 면모를 살펴보았다.
Cred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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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영
촬영
Salt Studio
편집
Double-D
자료제공
민주킴
About the Interviewee
김민주는 2015년 론칭한 컨템포러리 여성복 브랜드 ‘민주킴MINJUKIM’의 창립자다.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를 졸업한 후 2013년 ‘H&M 디자인 어워드’에서 대상을 받고, 2014년 ‘LVMH 영 패션 디자이너 프라이즈’ 준결승에 진출했다. 2020년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글로벌 패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넥스트 인 패션Next in Fashion〉에서 우승하며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떠올랐다. 2021년 대한민국패션대상 산업통상자원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Q1.
최근 가회동에 민주킴의 첫 번째 오프라인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어요. 한옥 양식의 하얀 건물이 참 예쁩니다. 어떻게 기획하고 준비한 공간인가요?
패션 디자인을 시작한 지 연차가 꽤 되니까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어요. 민주킴의 옷을 실제로 살펴보길 원하는 고객도 많아졌고요. 한국에 돌아와 삼청동에 처음 자리를 잡은 이후 쭉 안국 주변에 머물렀는데요. 옛것이 남아있어 영감을 많이 주는 지역이라고 생각해왔어요. 제가 사랑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이 동네에서 마음에 꼭 드는 곳을 찾았습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백인제가옥이 나오는데 그 길에 민주킴이 함께 자리하는 것도 참 의미 있다고 생각했어요. 오프닝 행사 때 방문하신 분들이 새롭고 기대 이상의 공간이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민주킴의 첫 번째 오프라인 플래그십 스토어 내부 모습
Q2.
오프닝을 기념해 지하 작업실에 전시 공간도 선보이셨어요. 〈넥스트 인 패션〉의 피날레를 장식한 드레스를 직접 볼 수 있더군요. 총 10회에 걸친 까다로운 미션을 해내고 마침내 우승한 게 벌써 3년 전이에요. 그때의 경험은 어떤 의미로 남아있나요?
그전에도 여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갔지만 〈넥스트 인 패션〉은 한계를 뛰어넘는 경험이었어요. 앞으로 못할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촬영 일정이 매우 빠듯했는데도 그 모든 것을 주어진 시간 안에 정말 해냈어요. 마지막에는 모두 지쳐서 체력 싸움도 정말 힘들 정도였는데…지금 생각해도 제 인생을 통틀어 엄청난 경험이었어요. 제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고, 이만큼이나 에너지를 지닌 사람이구나, 저조차도 놀라운 감정을 느꼈습니다.
〈넥스트 인 패션〉 우승 후 출연자와의 기념 촬영
Q3.
김민주라는 디자이너를 ‘넥스트 패션’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꾸준함인 것 같아요. 제가 〈넥스트 인 패션〉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도 꾸준히 제 목소리를 내는 컬렉션을 선보이며 매 시즌 최선을 다해 옷을 만든 시간이 쌓인 덕분이에요.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다음으로 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패션 디자인을 하려는 이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계속 노력하는 것, 그 자체가 재능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성실함이 곧 재능인 것이지요. 지금까지 16번의 컬렉션을 진행하면서 매번 똑같은 프로세스로 작업했는데요. 지난 시간 동안 제가 변함없이 이어왔던 것들이 결국 현재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Q4.
민주킴의 컬렉션은 독특한 세계관으로도 유명한데요. 영화, 시, 신화, 꿈, 개인적인 경험까지 다양한 요소에서 영감을 받으시는 것 같아요.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체화하고 발전해 세계관을 구축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민주킴을 통해 저만의 기록을 차곡차곡 남기는 것 같아서 참 행복해요. 그래서 예쁘고 아름다운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콘셉트가 디자인에 오롯이 담기는 것을 가장 중시합니다. 컬렉션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고민하고, 먼저 간단한 문장으로 키워드나 주제를 정리해요. 그 이상의 것은 이제 그림으로 그려내죠. 옷 한 벌을 만들기까지 무척 많은 요소를 염두에 둬야 하는데요. 드로잉하는 시간만큼은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풀어가는 데 집중합니다. 그 수준이 부족하거나 부끄럽더라도 최대한 편안하고 막힘없이 표현해요. 그래야 나중에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며 일부를 걷어내더라도 제 생각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어요. 이런 프로세스가 계속 영감을 주고 저를 성장시키는 것 같아요.
다양한 아이디어를 집약한 자유로운 드로잉들
다양한 아이디어를 집약한 자유로운 드로잉들
Q5.
민주킴의 옷은 여성적이면서 대담한 실루엣이 돋보입니다. 본래 남성복을 전공하셨다고 들었는데요. SADI와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에서의 배움은 민주킴의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SADI에서 남성복을 전공하고 이후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에서는 교수님의 권유로 여성복을 시작했어요. 확실히 남성복은 디테일보다 전체적인 선을 중시해요. 실제 다루는 사이즈도 큼직하죠. 남성복을 디자인한 경험이 여성복으로 이어지면서 저만의 새로운 실루엣이 탄생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SADI에서는 디자인을 책임감 있게 구현하는 일을 중시했고, 앤트워프에서는 자기만의 크리에이티브를 강조했는데요. 사실 패션 쪽은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물리적으로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해요. 저는 SADI에서의 배움 덕분에 앤트워프에서 독창적인 영감을 실제 구현할 수 있었고 덕분에 메이킹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어요. 공부한 게 아깝지 않을 만큼 좋은 교육이었죠.
Q6.
새롭고 독창적이면서 동시에 실용적인 창작물은 패션 디자이너의 영원한 숙제 같아요.
패션은 사람이 입는 디자인이에요. 실용적이고 편안하면서, 착용자가 어디서든 스스로 멋있고 당당하다고 느껴야 하죠. 거기에 디자이너의 정체성이 묻어난다면 더욱더 특별해지고요. 미디어에서 제 작업을 접하고 ‘너무 예쁘지만 나는 못 입을 것 같다’고 말하는 분들도 실제로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면 행복하다고 말씀하세요.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던 새로운 이미지를 찾을 수 있거든요. 해외에서 활동하는 패션 디자이너 중 아주 과감한 디자인을 선보이지만 자국민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나라도 요즘 디자이너의 창의성이 묻어나는 옷을 입기 시작했는데요. 더 특별하게 입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사람들이 패션을 통해 자신만의 모습을 찾는 여정에 함께하고 싶습니다.
민주킴의 개성이 탄생하는 작업실의 일부
Q7.
트렌드와 소비자가 원하는 것, 민주킴의 아이덴티티와 새로운 지향점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시나요?
패션 트렌드는 정말 빠르게 변해요. 어떤 게 유행하다가 한 달 뒤에는 다른 것이 유행하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변치 않는 것의 가치도 존중해야 해요. 저는 민주킴 안에 트렌드가 없다는 말을 자주 해요. 대신 시즌마다 표현하려는 우리만의 콘셉트와 스토리가 있다고 강조하죠.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특히 여성이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충분히 리서치하면서 민주킴의 변치 않는 정체성에 이를 자연스레 녹이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그 안에서 균형감을 지키려고 노력하고요.
Q8.
보통 시즌마다 컬렉션 주제를 바꾸는데 2022 S/S, 2022 F/W 컬렉션은 1년간 ‘바리Bari’라는 주제를 이어왔어요. 빠른 패션 트렌드 안에서 민주킴만의 방식으로 일관된 주제를 선보이신 거군요.
맞아요. 예전에는 시즌마다 새로운 주제를 선보였지만, 이번에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 보다 더 깊게 다가가고 싶었어요. 한 가지 콘셉트를 개발할 때 100가지가 넘는 스케치 디자인이 나와요. 패턴과 컬러웨이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방대하죠. 그런 결과물을 한 시즌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버전으로 다음 시즌까지 이어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와 마찬가지로 2023 S/S 컬렉션 ‘Fairy’s Wish’도 2023 F/W 컬렉션까지 이어서 선보일 예정이에요.
바리공주 설화에서 영감받아 바리를 주제로 1년 동안 지속한 2022 컬렉션의 일부
바리공주 설화에서 영감받아 바리를 주제로 1년 동안 지속한 2022 컬렉션의 일부
Q9.
2023년 한 해 동안 이어지는 ‘Fairy’s wish’는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까요?
2023 S/S 컬렉션에서는 사람들이 팬데믹을 거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점에 우리가 중요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조금 더 소중히 생각하고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점을 표현했어요. 봄에 오는 요정이 그에 대한 경고와 당부의 메시지를 전하는 거죠. 2023 F/W 컬렉션은 좀 더 다크한 느낌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무너진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을 생각이에요.
2023 S/S 컬렉션 ‘Fairy’s wish’의 일부
2023 S/S 컬렉션 ‘Fairy’s wish’의 일부
Q10.
민주킴의 옷이 착용자에게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시나요?
저는 패션이 엄청난 힘을 가졌다고 믿어요. 많은 사람이 민주킴의 옷을 통해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것에 맞추어 살아가는 세상이라 패션을 대할 때도 망설임과 두려움이 있는데 이를 넘어설 수 있기를요.
안미영
기자, 작가, 인터뷰어로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쓴다. 《노블레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일했고 에세이와 여행서 등 4권의 책을 출간했다. 현재 프리랜스 에디터이자 카피라이터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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