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재는 원앤제이 갤러리 대표다. 2005년 갤러리를 설립한 이래 가능성 있는 한국 작가를 세계 미술계에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2018년 스위스 ‘아트 바젤’에서 원앤제이 갤러리의 강서경 작가가 아시아 갤러리 소속으로는 처음으로 발루아즈 예술상을 받으며 큰 화제를 모았다.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2020년 디지털 아트 플랫폼 ‘아티팩츠Artifacts’를 설립하고 2022년 위치 기반 전시 앱 ‘아트가이드Artguide’를 론칭하며 미술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현재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자문위원이자 한국화랑협회 국제이사를 맡고 있다.

저는 해외에서 공부하면서 해외 미술에 익숙했는데요. 한국에 들어와 보니 재능 있는 작가들이 정말 많더군요. 그런데 활동하는 무대가 국내에 한정되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지 못하는 점이 안타까웠어요. 가능성 있는 작가를 해외에 제대로 소개하면 더 좋은 기회가 온다고 확신했기에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갤러리라는 공간에 국한되지 않고 작가가 작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모든 부분을 지원하고 해외에도 알리고 싶었어요. 처음부터 방향성이 뚜렷했기에 오픈 후 6개월 만에 바로 해외 아트페어에 참가하며 국제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초반부터 반응이 좋았어요.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국제 아트페어 ‘아르코ARCO’에서 2007년 한국을 주빈국으로 선정하고 한국 갤러리 열네 곳을 초청했어요. 오픈한 지 2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저희도 참가하게 됐습니다. 이수경 작가의 도자기 작품을 처음으로 소개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고, 저희 갤러리에서 선보인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많은 주목을 받았죠. 외국 분들은 한국 작가의 크래프트맨십craftsmanship과 작품의 퀄리티를 보고 놀라워하는 경우가 많아요. 다들 완성도를 높게 평가하는데요. 시각적으로 아주 잘 다듬은 표현력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좀 더 들여다보면서 이면의 스토리를 알면 알수록 흥미로움을 느끼지요. 그래서 “숨은 보석은 다 한국에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요즘 다들 세계화를 말하는데요. 그만큼 로컬에 대한 관심도 높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독창성은 남과 다른 게 아니라 ‘진정 나다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이야기를 하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겹치지도 않고, 재미가 없을 수가 없어요. 그 점이 특히 중요합니다. 강서경 작가의 경우가 딱 그랬습니다. 할머니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해서 한국 전통문화를 서양의 미학적 맥락으로 풀어냈죠. 서양인이 읽어낼 수 있는 언어로 그들이 모르는 이야기를 전한 점이 주효했던 것 같아요.

‘작가가 그 이야기를 꼭 해야만 하는가’에 집중합니다.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지속가능한 작업이 나올 수 있어요. 작가의 작품은 한 번의 전시로 끝나지 않습니다. 가치가 오르기까지 적어도 5년에서 10년, 길게는 수십 년을 바라봐야 해요. 그런 긴 시간 동안 갤러리와 작가가 신뢰를 잘 쌓아야 하는데요. 저에게는 작가가 하는 이야기가 그의 삶에서 나오는지 확인하는 게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일단 저희와 함께 일하면, 저는 작가의 작업과 방향성에 대해서 관여하지 않아요. 현대미술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새로움’인데요. 제가 개입하는 순간 그게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요. 대신 작업실을 자주 방문해 작가에게 질문을 많이 던지는 편입니다. 작년 오종 작가의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다른 곳에서 한번도 보지 못한 작업이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그런 말은 생전 처음 들어본다고 하더군요. 시장에서 인기 있는 시리즈를 요청한 게 아니니까요. 이런 면이 원앤제이 갤러리의 차별점이 아닐지 싶네요.

개관 이후 지금까지 18년간 가회동에서 프로그램을 쭉 선보였기 때문에 많은 분이 저희 갤러리의 뚜렷한 색깔을 알고 계실 것 같은데요. 앞으로 더 많은 분과 공유하는 방법을 모색하려고 새로운 공간을 찾다가, 현재 강남이 재조명받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송은문화재단의 멋진 신사옥이 근처에 마련됐고, 얼마 전 국내에 진출한 화이트 큐브 갤러리도 도산공원 인근에 둥지를 틀었죠. 여러 로컬 갤러리도 자리 잡고 있어서 도보로 여러 전시를 보기 좋은 위치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제 더 많은 분과 소통하길 고대합니다.

박미나 작가는 제가 갤러리를 시작할 때 큰 영향을 끼친 작가예요. 2005년 원앤제이 갤러리의 첫 전시가 박미나 작가의 전시였죠. 갤러리 이전 후 첫 전시가 박미나 작가와 함께라서 특히 의미가 깊네요. 저희는 아트페어에 참가할 때 3~4일의 짧은 기간 동안 최대한 인상적으로 소개하기 위해서 저희만의 색깔을 보이는 데 주력해 왔는데요. 그래서 부스의 전체적인 큐레이션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는 갤러리 재개관에 맞춰 박미나 작가를 소개하며 오승열 작가의 새로운 시리즈를 접목했습니다. 여기에 따뜻한 느낌을 더하고 싶어서 내년 봄 전시 예정인 서용선 선생님의 나무 조각품을 함께 놓아 균형을 맞췄습니다.

아티팩츠가 선보이는 여러 서비스 중 위치 기반 전시 가이드 앱 ‘아트가이드’가 큰 호응을 얻고 있어요. 예전에는 전시를 찾아보려면 최소한 관련 단어 하나라도 알아야 했어요. 검색 키워드를 넣어야 작동했거든요. 저는 사람들이 아무런 정보 없이 주변을 둘러보며 전시를 접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어요. 전시 관람을 위해 꼭 필요한 정보를 한 번에 파악하게끔 지금도 계속 수정하고 있습니다. 플랫폼에 머무느라 작품을 보지 못하는 상황은 피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 작품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현재 네이버랩스와 MOU를 체결해 관람 경험을 개선하는 방법을 모색 중인데요. 관람객이 접하는 데이터가 많아지면 미술 시장이 더 투명해지고, 작품 가격 산정 방식도 공론화할 수 있을 거예요. 좋은 작업을 하는 사람이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 더 많은 데이터가 공유되어야 합니다.

올해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이 열리는 기간에 서울아트위크와 협업해 여러 활동을 했는데요. 특히 세계 미술 인사들과 진행한 아트 토크가 기억에 남습니다. 프리즈의 한국 상륙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세계적인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가 이런 말을 했어요. “지금의 뜨거운 관심은 쉽게 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를 계기로 무엇을 가져가야 하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저도 무척 동의합니다. 사실 2008년 아시아 미술이 주목받을 때 세계 경매에서 한국 작가의 작품이 엄청난 가격에 낙찰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열기가 식으면서 당시 높은 평가를 받은 작가 중 대다수가 더 이상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일이 생겼지요. 반면 그때의 열기와 무관하게 꾸준히 내실을 다져온 작가는 지금도 주목받으며 활동하고 있어요. 한국 미술계가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글로벌 메가 갤러리가 한국에 진출해도 로컬 갤러리는 흔들리거나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아야 해요. ‘무엇이 잘 팔리는지’에 집중하며 휩쓸리기보다는, 지금까지 하던 대로 꾸준히 활동하는 게 중요하죠. 다만 해외에서 오는 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글로벌 갤러리와의 접점을 찾는 일도 병행해야 합니다.

객관적인 지표로 따지면 서양 미술이 더 대단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요. 저는 미술이란 우위를 가리는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목소리를 담은 작품을 컬렉팅할 때 훨씬 의미 있고, 컬렉터 스스로 느끼는 가치도 더욱더 오래간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어요. 모두가 유명하다고 인정하는 작품을 높은 가격에 구입해 소장할 때와 자발적으로 끌려서 구입한 작품을 오래 소장할 때 느끼는 기쁨은 확실히 다르거든요. 우리는 2023년 동시대 한국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작업에 더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어요. 컬렉터분들이 공감과 발견의 기쁨을 더 많이 경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들이 훌륭한 작품을 내놓길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보다 우리가 작업의 의미를 찾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게 필요해요. 태생적으로 위대한 작품은 없습니다. 작품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그 가치를 함께 만들어 가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