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과 보는 것 사이에서 생각하는 법
How to Discern between What You Know and What You See
감동은 마음을 움직일 때도 찾아오지만, 생각하는 법을 뒤흔들 때도 찾아온다. 우리가 쉽게 쓰는 ‘고정관념’이라는 표현처럼, 누군가의 마음에 깃든 생각이란 좀처럼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항상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고, 누구보다 앞서 아이디어의 첨단을 달려야 하는 이에게 생각하는 법을 바꾸는 시도는 얼마나 중요할까? 아트북 서점에서 수차례 재입고와 품절을 반복한 전설의 책 『변신술』(1997)의 저자이자, 붓질 한 번에 비명 한 번 내지르는 영상 작품 〈“노란 비명” 그리기〉(2012)로 모두의 뇌리에 강렬한 존재감을 심은 작가 김범은 그야말로 남다른 ‘생각법’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A deep impression forms when something moves our hearts. However, it can also start when something shakes our thinking. That is because, as we often say, stereotypical thinking is hard to change. How important is it to try to change the way you think when you need new ideas and need to be on the cutting edge of ideas before everyone else? Kim Beom—author of the legendary book The Art of Transforming (1997), which has constantly been selling out at bookstores since its publication, and the same artist who left a strong impression on people with his video work Painting “Yellow Scream” (2012), in which he emitted a scream with every single brushstroke—is a perfect example of how to think differently.
1963년 태생의 김범은 언제나 의문의 작가였다. 작품보다 작가가 많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 인터뷰를 최소화하는 이는 더러 있지만 김범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은 남달랐다. 그의 작품을 마주할 기회는 더러 있었던 반면 그가 참여한 인터뷰 기사는 찾기조차 힘든 실정이다. 한국 개념미술 신에서 매우 중요한 축을 차지하는 위상에 비해 간헐적인 전시만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작가 김범. 그래서 2010년 아트선재센터 이후 무려 13년 만에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개인전은 존재감부터 남다르다. 1990년부터 2010년 중반까지 전개한 김범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대규모 서베이 전시를 위해 리움미술관은 그라운드갤러리와 블랙박스 등 주요 공간을 할애하며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총 70여 점의 작품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Born in 1963, Kim Beom has always been a mysterious artist. Although some artists do not give a lot of interviews simply because they do not want to reveal more about themselves than their work, Kim’s reasoning is different. Interestingly, while we have had many opportunities to see his work over the years, it is hard to find any interviews with him. Despite his status as an essential part of the Korean conceptual art scene, Kim’s presence is limited to intermittent exhibitions. That is why the solo exhibition at Leeum Museum of Art, 13 years after his 2010 exhibition at Art Sonje Center, is unique. For this large-scale survey exhibition of Kim’s oeuvre from 1990 to mid-2010, Leeum Museum of Art dedicates most of its significant spaces, such as the Ground Gallery and the Black Box, to welcome visitors with a total of 70 works, including paintings, sculptures, installations, and videos.
전시장에 들어서면 누구나 한번쯤은 봤을 법한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 속 치타와 영양의 쫓고 쫓기는 장면이 펼쳐진다. 제목이 ‘볼거리’인 이 작품은 너무나 익숙한 풍경 때문에 무엇이 ‘진짜’ 볼거리인지 알아채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원경에서 대단한 속도로 움직이는 동물들을 따라가는 카메라의 순발력에 주목해야 할까? 익숙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전시장에서 상영한다는 점에 초점을 두어야 할까? 그러나 영상을 계속 보다 보면 뭔가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다. 도망쳐야만 하는 초식 동물과 매서운 속도로 사냥하는 육식 동물의 관계가 뒤바뀐 것이다. 사회적인 통념 아래 약자로 인식하던 피식자가 마치 맹수라도 된 양 포식자를 뒤쫓는다는 점만 빼면 모든 풍경이 매우 익숙하다. 우리가 충분히 합의한 전제를 가볍게 뒤집는 이 작품은 이번 전시에 펼쳐진 ‘생각 연습’의 예고편과도 같다.
Upon entering the exhibition venue, you are greeted by a cheetah and an antelope—chasing and being chased—from the TV show Animal Kingdom. Titled “Spectacle,” the work is so familiar that it takes a while to realize the “real” spectacle. Should we consider the camera’s ability to follow animals moving at breakneck speeds in the distance? Should we focus on the fact that a familiar television program is being shown in an exhibition hall? But you might notice something strange as you continue to watch the video. The relationship between a herbivore that is forced to flee and a carnivore that hunts at breakneck speed is reversed. The scene is very familiar, except that the prey—what society perceives as the underdog—is chasing after the predator like a wild beast. This lighthearted subversion of a premise we have all come to expect is like a trailer of the thought exercises in the exhibition.
보는 법
김범은 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 사이의 거리를 넓힌다. 하나의 이미지만으로 예술의 깊이와 무한한 감흥을 가늠하게 하는 종류의 작업과는 다르다. 특히 그의 작업이 제목과 긴밀하게 이어지는 방식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작품의 제목을 보고 그림을 접하는 관객과 보지 않고 접하는 관객은 서로 다른 것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땅거미가 진 산 능선을 군더더기 없이 표현한 듯한 그림의 제목이 〈현관 열쇠〉 또는 〈자동차 열쇠〉였다면? 이처럼 김범의 작품명은 관객이 스스로 의심하며 ‘내가 무엇을 본 거지?’하고 자문하게 만든다.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자연스레 넘어가는 인식의 자동성, 일반적인 합의, 관습적인 통념은 김범의 작품 앞에서 무너진다.
How to See Kim
Beom widens the distance between what you see and what you think. It differs from the work where you can gauge art’s depth and infinite inspiration from a single image. It is particularly noteworthy that his works are closely linked to their titles. That is because the viewer who encounters one of his paintings with the title of the piece and who experiences the job without the tag will inevitably see different things. For example, what if a painting that looks like an uncluttered representation of a mountain ridge with twilight in the background was titled “Entrance Key” or “Car Key”? In this way, Kim’s work titles make the viewers question what they see and ask themselves, What am I looking at? The automaticity of perception, the consensus, and the conventional wisdom that we naturally take for granted collapse in front of Kim’s works.
물론 작품의 제목이 작품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김범이 구사하는 유희는 작품에 내재됐다기보다 언제나 감상자의 인식이 작동하는 과정 속에 머문다. 우리가 무심코 무언가를 볼 때,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형태를 보고 내용을 짐작하는 걸까? 눈에 보이는 형태와 짐작한 내용이 일치한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김범의 작품은 이런 인식의 ‘자연스러운’ 단계에 제동을 건다. 보이는 것 모두를 하나하나 생각하기 시작하면 아마도 인간의 뇌는 그 모든 정보를 감당하기 어려울 테다. 그래서 우리의 인지 능력은 어느 정도 필요한 만큼 ‘외면하기’를 실행한다. 그러나 김범은 우리가 경험하고, 배우며 쌓아온 인식의 습관을 그저 자연스레 흘려보내지 않도록 만든다.
Of course, the title of a work does not determine its content. However, Kim’s playfulness is always present in the viewer, forming their perception instead of being inherent in the work. When we casually look at something, what are we seeing? Are we guessing the content based on the form? How can we be sure that the form we see matches the content we have supposed? Kim’s work brakes down this “natural” stage of perception. If we started thinking about everything we see, one by one, our brains would probably become overwhelmed with all that information. Therefore, our cognitive faculties do something I call turning away as much—and as often—as necessary. Still, Kim makes sure that the habits of perception we have experienced, learned, and developed do not just slip away.
OO이 되는 법
김범의 작품은 종종 ‘물활론(物活論)적 사고’로 설명되곤 한다. 물활론적 사고는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여기지 않는 모든 존재, 즉 사물을 포함한 모든 것에 생명이 있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아직 충분히 사회화되지 않은 아이들이 해와 구름을 그릴 때 사람의 표정으로 표현한다거나, 사물들의 ‘인간적인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놀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물활론적 사고는 언어라는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하지 않은 상상력을 가진 아이들만의 특권은 아니다. 자신이 아는 것과 이미 배운 것을 일부러 잊고 새로운 ‘생각법’을 만드는 김범의 작품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How to Become OO Kim Beom’s work is often described with hylozoistic thinking. This belief says that everything has life, even things that are not considered to be living organisms. An example of this is children who are not yet fully socialized and draw the sun and clouds with human facial expressions, or make up stories about “human relationships” between objects. This kind of thinking is not just the domain of children whose imaginations are not controlled by the ideology of language—it is also evident in the works of Kim Beom, who deliberately forgets what he knows and what he has already learned to create a new way of thinking.
예컨대, 망치가 임신했다거나(〈임신한 망치〉), 여러 가지 사물들이 마치 학생처럼 교실에 모여 앉아 자신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에 불과하다는 강의를 듣는다거나(〈자신이 도구에 불과하다고 배우는 사물들〉), 헤어드라이어, 시계, 다리미 같은 가전제품이 죽음을 맞이해 흙으로 돌아가는 식이다. 감상자는 기쁨을 느끼거나, 때로는 피로감을 호소하고, 더러는 낙담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물의 심정에 은연중 공감한다. 〈바다가 없다고 배운 배〉(2010)에서 강사는 책상 위에 범선 모형을 앉혀 두고, 지구의 지질학적, 기상학적, 천문학적 특징을 나열하며 지구에는 바다가 없고 오직 육지로만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91분여간 바다가 없다고 학습하는 배는 본래의 목적과 본질을 허용하지 않는 진실을 수동적으로 마주한다. 이제 배는 아크릴 박스에 갇혀 있어도 아쉽지 않다. 더 이상 바다를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Other examples include a hammer that becomes pregnant (Pregnant Hammer), various objects sitting in a classroom like students and being taught that they are nothing but tools made for humans (Objects Being Taught They Are Nothing but Tools), and household appliances such as a hair dryer, clock, and irons dying and returning to the earth. The viewer secretly sympathizes with the objects as they go about their “lives,” sometimes with joy, fatigue, and despondency. In A Ship That Was Taught There is No Sea (2010), a lecturer places a model sailboat on a desk, lists the geological, meteorological, and astronomical features of the Earth, and explains that there is no sea on Earth, only land. For 91 minutes, the ship is taught that there is no sea, passively facing a truth that does not allow for its original purpose and essence. As a result, the vessel is no longer sorry to be trapped in an acrylic box, as it can no longer imagine the ocean.
이미지에 속지 않는 법
김범이 2002년부터 발표한 청사진 및 조감도 연작은 이미지-기호-글 사이의 간격을 벌린다. 그가 구현한 청사진과 조감도는 일종의 상상화다. 위아래가 뒤집힌 학교, 폭군을 위한 안전가옥, 환각성 흉악범과 공격성 맹수의 합치 건물, 출입국관리소 건물 등 인간 사회의 억압, 폭력, 규율, 감시, 분리 등을 상징하는 공간을 다룬다. 그런데 이런 공간을 보여주는 조감도의 이미지는 결코 정확하거나, 세밀하거나, 딱딱하지 않다. 예컨대, 〈폭군을 위한 안전가옥 설계안〉(2009)에서 폭군을 위한 조감도는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으로 가득하다. 무차별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폭군이 사는 공간이라고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종이에 그려놓은 건물의 진짜 이미지는 각 공간의 범례와 함께 읽을 때 비로소 ‘보인다’. 철옹성 같은 성벽을 지나면 개, 늑대, 개와 늑대의 혼종 또는 늑대인간이 건물 안팎을 층층이 지킨다. 폭군을 없애기 위해서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수직 상승한 계단을 지나야 한다. 그에 비해 폭군은 그저 하늘을 날아다니며 자신의 펜트하우스에 느긋하게 머문다. 비상탈출 캡슐, 편안한 침구, 따뜻한 조명, 텔레비전에 그림까지 구비한 완벽한 공간이다. 따뜻하고 부드럽게만 보이던 조감도는 결국 공간의 실체에 관한 거짓말을 하고 있던 셈이다.
How to Not Be Deceived by Images Kim Beom’s series of blueprints and bird’s-eye views, published since 2002, widen the gap between images-symbols-words. His blueprints and bird’s-eye views form a sort of collection of imaginary pictures. They deal with spaces that symbolize oppression, violence, discipline, surveillance, and separation in human society, such as an upside-down school, a safe house for a tyrant, a building where hallucinogenic criminals and aggressive wild beats merge, and an immigration building. However, the bird’s-eye views of these spaces are never precise, detailed, or rigid. For example, in A Draft of a Safe House for a Tyrant (2009), the bird’s-eye view of a safe house is filled with a sense of softness and warmth. Indeed, it is hard to imagine it as a space for a tyrant who wields power indiscriminately. And yet, the actual image of the building drawn on paper is only seen when read in conjunction with the legends of each space. Once you get past the impregnable walls, dogs, wolves, dog-wolf hybrids, or werewolves guard the building in layers, inside and out. To eliminate a tyrant, you must climb a staircase that rises vertically in a terrifying style. The tyrant, on the other hand, flies through the air and lazes around his penthouse. It is a perfect space with an escape capsule, comfortable bedding, warm lighting, and even a television and a painting. The bird’s-eye view, which makes it look warm and soft, ends up deceiving us, the viewers, about the reality of the space.
이미지의 거짓말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노력이었을까? 김범의 초기 작품에는 텍스트가 많다. 텍스트는 생각의 경계를 넓히는 도구이자, 동시에 경계를 만드는 도구로써 언제나 양가적인 성질을 지닌다. 〈도주 열차〉(1994), 〈무제〉(1994), 〈파란 그림〉(1995)은 캔버스에 지시문을 넣은 그의 초기작이다. “이 캔버스의 부분 부분을 파란 페인트로 칠하라”는 문구가 적힌 〈파란 그림〉을 보자. 이 작품이 지시하는 이미지는 오직 캔버스에 쓰인 글귀를 읽은 사람만 ‘볼’ 수 있다. 이때의 파란색은 ‘그림’의 감상자이자 ‘지시문’의 독자인 관객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한다. 각자 살아온 삶의 경험, 배움,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른 파란색 이미지를 떠올린다는 점에서 캔버스 위 텍스트는 이미지를 강요하지 않는다.
Did he make a real effort to move away from the lies of images? The truth is that Kim Beom’s early works are heavily textual, and text is both a tool for expanding the boundaries of thought and creating boundaries simultaneously—and it always has an ambivalent nature. Runaway Train (1994), Untitled (1994), and Blue Painting (1995) are some of his earliest works that include instructions on the canvas. Consider Blue Painting, which reads, “PAINT THIS CANVAS PART BY PART WITH BLUE PAINT.” The image it dictates can only be “seen” by those who read the words on the canvas. The color blue exists only in the mind of the viewer, who is both the viewer of the painting and the reader of the instructions. The text on the canvas does not impose an image on the viewer, as each person conjures up a different image of blue based on their life experiences, learning, and perspective.
웃는 법
무엇보다 김범의 작품은 웃음을 준다. 진지하고 세심하게 전시한 작품을 보며 깔깔거리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조차 김범식 웃음을 피해 갈 수 없다. 작가가 선사한 재치에 화답하는 웃음일 수도, 묘하게 서글픈 감정이 샘솟는 웃음일 수도 있다. 김범식 웃음이 작동할 때까지 감상자에게 익숙한 통념이 흔들려야 한다는 면에서, 약간의 노력이 필요한 웃음일 수도 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예술의 감각 언어나 진실을 느끼기 위한 노력, 감식안과 심미안을 갖춰 예술 작품의 본질을 꿰뚫으려는 소위 ‘진지한’ 노력과는 다르다.
How to Laugh
Above all, Kim Beom’s artworks make you laugh. Even those not accustomed to giggling at seriously and meticulously displayed works cannot escape a Kim Beom-style laugh. It may be a laugh in response to the artist’s wit or a strangely sad laughter. It can also be a laugh that requires a bit of effort, in the sense that the viewer’s familiar conventions have to be shaken up for a Kim Beom-style laugh to work. It differs from the effort needed to sense the elusive sensory language or the truth of art or what could also be called a “serious” effort to penetrate the essence of an artwork with a sense of taste and aesthetics.
김범의 대표작 중 하나인 〈“노란 비명” 그리기〉(2012)에는 모든 그림을 쉽게 쉽게 그려내며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을 몸소 보여준 ‘밥 아저씨’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노란 물감이 겹겹이 쌓인 추상 회화를 그리는 방법을 소개하는데, 자신만의 그리기 비법으로 붓 자국에 ‘비명’를 담는다. 각각의 노란색이 어떤 감정과 분위기를 나타내는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설명하며 물감을 섞는다. 노란색이 정말 그 감정과 분위기를 갖고 있는 것만 같다. 강사는 이어지는 붓질마다 제각각 다른 비명을 내지른다. 웃음기 하나 없이 차분하게 말하는 그의 입을 빌리자면, ‘붓과 화면 사이에서 소리를 내며 비명을 붙잡아 두기’가 포인트다. 감상자는 진지한 추상 회화, 진지한 튜토리얼, 이와 상반된 우스꽝스러운 비명 사이를 옅은 웃음으로 채운다.
In one of Kim’s major works, Painting “Yellow Scream” (2012), there is a Bob Ross-like character, someone who demonstrates the joy of painting by making the creation of every picture look effortless. He demonstrates how to create an abstract painting with layers of yellow paint, using his own painting technique to capture the “scream” in the brushstrokes. As he mixes the paints, he explains with conviction what emotion and mood each different shade of yellow represents, so all the yellows really seem to have their own emotions and moods. With each successive brushstroke, the instructor emits a different scream. The point, he says calmly, without a hint of laugh, is to “incorporate the sound of screams into the brushstrokes.” The viewer fills in the gaps between the serious abstract painting, the serious tutorial, and the ridiculous screams with a light-hearted laugh.
요컨대, 김범은 우리가 그동안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한 상식이 정말 ‘자연스러운지’ 의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의심은 감상자 모두에게 자신만의 서늘한 웃음으로 남는다. 내가 아는 것과 내가 보는 것 사이에서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가? 시각과 경험의 새로움으로 둘러싸여 이제 새로움이란 단어조차 진부해진 시대에 김범이 제안하는 새로움은 ‘인식’이라는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 있다. 인식과 생각의 메커니즘을 다룬다는 점에서 김범의 생각법은 시대 변화와 관계없이 보편적인 웃음을 선사한다. 이런 종류의 웃음이야말로 서로 다른 입장의 상식이 대립하는 지금, 끊임없는 새로움을 요구받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웃음이 아닐까.
In short, Kim Beom makes us question whether the common sense we have “naturally” acquired in society is really “natural.” He then leaves the viewer with a chilling snicker as he asks us, How difficult is it to create a new idea between what you know and what you see? In an age where we are constantly surrounded by the newness of sight and experience, where even the word “newness” has become a cliché, the novelty that Kim proposes resides in a more fundamental dimension—perception. His way of thinking offers a timeless universal laugh by addressing the mechanisms of perception and thought. That is probably the kind of laugh we need most these days when common sense from different perspectives is at odds with one another and we are constantly being told to provide new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