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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티스트의 물리적 화합
니콜라스 베커 X 안나 칼로사
Intersections Beyond Boundaries - Anna Galtarossa x Nicolas Becker
혼합물과 화합물은 다릅니다. 혼합물은 두 가지 이상의 물질이 섞이지만 각각의 성질은 그대로 가지고 있는 반면 화합물은 서로 단단하게 결합하여 새로운 물질이 되어 물질의 성분 자체가 다른 성질을 가지게 되지요. 이 화합물은 물질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약하는 아티스트들의 만남에서도 화학적 시너지는 발휘됩니다. 기아는 서로 다른 영역의 아티스트들이 ‘페어링’하여 새롭게 창조한 이야기를 지난 4월 ‘밀라노 디자인워크’에서 선보였습니다. 바로 전시 였습니다. 두 작가가 경계 너머의 창의적 작품을 선보였는데요. 이 전시에 참여한 아티스트 안나 칼타로사Anna Galtarossa와 니콜라스 베커Nicolas Becker가 협업한 ‘The Spirit of Disco’를 소개합니다. 전방위적으로 활약하는 안나 칼타로사(이하 안나)는 움직이는 키넥틱 아트를 바탕으로 작품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니콜라스 베커(이하 니콜라스)와 사운드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The Spirit of Disco’만의 예술적 가치를 보여주죠. 《기아 디자인 매거진》에서는 두 아티스트가 함께 작품을 만들어 내기까지의 과정과 그 안에 담긴 스토리, ‘페어링’의 의미를 어떻게 견지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니콜라스 베커는 영화 사운드의 세계에서 다방면에 걸친 거장으로, 사운드 디자이너, 폴리 아티스트,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중 사운드 디자인에 있어 각 프로젝트에 맞는 맞춤형 마이크 만드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데, 이 방법은 그의 작업과 현대 미술의 영역을 엮어낸다. 특히 니콜라스는 2021년 4월 다리우스 마더Darius Marder 감독의 걸작인 로 아카데미 음향상을 수상했다. Mixtures and compounds are different. In a mixture, the original substances retain their individual properties, whereas a compound is a new substance that binds tightly together and becomes a new substance with a new property. Chemical synergy is not limited to substances; it also happens when artists from different fields collaborate. Kia presented a story of artists from different fields “pairing up” to create something new at the Milan design week last April. The title of the exhibition was Opposites United: Intersections Beyond Boundaries and it featured 'The Spirit of Disco', a collaboration work between two artists active in different fields, Anna Galtarossa and Nicolas Becker, to showcase their creative work across boundaries. Anna created a kinetic artwork and worked with Nicolas to find the right sound for her work, which culminated in The Spirit of Disco. Kia Design Magazine delved into the processes invovled in this collaboration, the story behind the process, and their perspectives on the meaning of 'pairing up'. My name is Nicolas Becker, I was born in France in 1970. I’m a foley artist, sound designer and composer. I have been working with sounds for 35 years. I live in Paris but work with people all over the world. I am Anna Galtarossa, I was born in Italy in 1975. I’m an artist and I’ve been working most of my life on sculptures and installations, mostly things that move. My art is generally very colorful, and my pieces prefer to be outside the protection of museums and galleries. I had my first exhibition as an artist in 2004, at the Spencer Brownstone Gallery, and they still represent me to this day.
나무는 숲의 에너지로
아뜰리에형준, 이형준
Pipe fittings grow into trees,
creating an energetic forest
익숙한 소재가 조금도 익숙하지 않은 오브제로 탄생한다. 가열이나 냉각 같은 물성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는데 번쩍거리던 금속은 나이테를 두른 나무가 되고 차가움은 따스함이 된다. 이 변화는 파이프 피팅이라는 산업 부품을 찾아낸 덕이다. 스테인리스를 소재로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는 많지만 산업 부품 파이프 피팅을 통해 대조적인 자연을 그려내고 있다는 건, 작가의 놀라운 발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작가는 인공을 자연에 한 발 더 가까이 가기 위한 지속적인 여정을 멈추지 않는다. 인공으로 자연을 만드는 아티스트의 다음 발상과 상상이 궁금하다면? 은근한 금속 냄새와 고요한 용접이 기다리는 금속조각가 이형준의 신세계로 입장할 시간이다. 2호선 문래역에서 내려 우체국이 있는 방향으로 걷다 보면 일렬로 정렬한 철공소들이 나타난다. 오래전 문래동은 끊임없이 귀가 먹먹해지는 쇳소리와 시야를 가리는 먼지바람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철공 단지였다. 집이 있던 보라매공원부터 4~5킬로미터를 하릴없이 걷곤 했던 소년에게 쇳가루와 분진이 날리는 문래동 철공 단지는 반짝반짝 빛나는 신기하고도 신비로운 보물섬이었다. 예술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 탄생한다고 했던가. 유일하게 활기찬 것이라고는 기계들뿐이었을 그곳에서 소년은 이미 무한한 가능성을 목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가능성의 무한한 자유로 자라났다. 철공과 예술.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조합으로 이루어진 미로를 사뿐한 발걸음으로 작가 이형준은 부유한다. 평범한 산업용 파이프 피팅Pipe Fiffing을 구부리고 잇고 두드리고 줄을 그어 완성한 선반은 우리가 ‘선반’으로만 알고 있던 것의 범주를 과감히 초월한다.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의 입체주의 그림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설계 도안에서 본 것 같기도 한 익숙하면서도 낯선 형태가 자꾸만 시선을 붙든다. ‘파이프 피팅’은 피상적 포맷에 불과할 뿐, 어쩌면 아티스트는 아트와 퍼니처, 예술과 실용, 냉기와 온기, 인공과 자연 등 하나가 될 수 없는 둘을 ‘피팅’하려는 시도와 실험을 거듭하고 있는 게 아닐까. 《기아 디자인 매거진》은 실험적 예술가이자 예리한 관찰자, 진지한 실험가인 이형준, 그에게 묻기 시작했다. Familiar materials are transformed into unfamiliar objects. Shiny metal pieces become wood complete with tree rings, without undergoing any heating or cooling processes, creating cold objects that radiate with warmth. Such transformation is made possible thanks to pipe fittings also known as pipe connectors. There are many artists who work with stainless steel, but an artist using pipe fittings to depict objects from nature is unprecedented. Hyungjun is on a continuous journey to bring artificial objects a step closer to the nature. We invite you to the world of metal sculptor Hyungjun Lee and explore the artist's next ideas. In Seoul, there is a street full of ironworks located near Mullae subway station. Decades ago, Mullae-dong was an ironworks complex full of sound and dust. During his childhood, Hyungjun used to walk several kilometers from his home near Boramae Park to the ironwork complex and was fascinated by it. It is said that art is born in unlikely places. Indeed, Hyungjun saw infinite possibility in the noisy and dusty complex full of industrial machinery. Somehow, Hyungjoon Lee floats through a maze of seemingly disparate combinations of industrial ironworks and crafting arts effortlessly. For example, his shelves which are made by bending, connecting, hammering, and lining ordinary industrial pipe fittings, boldly transcends the traditional boundary of shelves. The familiar yet unfamiliar shapes that seem to have come from a cubist painting by Fernand Léger or a design drawing by Leonardo da Vinci, draw our attention. The artist is using 'pipe fittings' as a medium, experimenting to blend two unlikely ideas and objects, such as art and furniture, art and practicality, coldness and warmth, man-made and natural. Kia Design Magazine interviewed Hyungjun Lee, a daring artist, keen observer, and serious experimenter, on what he is trying to achieve.
이방인이 담은 한국의 집
잉고 바움가르텐
Familiarity transformed into the unfamiliar The ordinary perceived through the exotic eyes, A foreigner’s portrait of a Korean house Ingo Baumgarten
풍경이 익숙해지면 우리는 그것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한 채 스쳐 지나친다. 하지만 익숙한 듯한 풍경 속에서도 섬세한 관찰을 통해 익숙한 것을 낯설게, 평범한 것을 아름답게 화폭에 풀어내는 이가 있다. 바로 독일 화가 잉고 바움가르텐(이하 잉고). 일상에서 건축의 구조, 소재 등을 탐구하며, 자신만의 상상을 스토리텔링 하여 잉고만의 시선을 만들어 낸다. 잉고의 그림을 마주하면 마치 ‘이상한 나라 앨리스’로 빨려가듯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래서 우리는 무심코 스쳐 지나갔던 풍경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16년째 한국에 살면서 서울을 관찰하며, 한국의 주택과 건물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그리며 한국인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잉고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독일의 서부 하노버 교외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 학생은 풍부한 문화가 있는 대도시를 동경했고, 미술학도이자 젊은 예술가가 되고자 파리로 떠났다. 독일에서 학업을 마친 후 ‘파리 시각예술고등예술원 Institute of Higher Studies in Visual Arts Paris’에 합격하여 초대받은 것. 그곳에서만 머물지 않고, 대만, 일본, 한국으로 유랑해왔다. 다문화적 관점을 견지한 잉고는 2008년 홍익대학교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1970년에서 1990년 사이에 지어진 콘크리트 주택에 매료되어 한국의 집과 건물을 화폭에 담고 있다. 잉고 바움가르텐이 한국의 주택에 매료된 데에는 유럽에서 나고 자란 환경이 한몫했다. 대부분의 유럽은 일률적으로 집을 짓는다. 지붕의 규격, 방의 구조 등 하나하나 정해진 법규가 있고, 집을 보수하기 위해서는 20년 정도가 흘러야 한다. 반면, 한국의 주택은 전통과 현대의 대비가 뚜렷하면서도 주택의 구조나 형식이 저마다 다르다. 이 대비 속에서 한국인들의 개성이 묻어 있는 저마다의 스토리가 잉고의 시선을 끌었다. 그런 잉고는 한국인이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지붕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마치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처럼 느껴졌어요.” 이방인 시선에서 한국 주택은 영감의 원천이었고, 한국 주택이나 건물의 한 단면을 극대화하여, 자신만의 상상을 더해갔다. 《기아 디자인 매거진》은 한국적이면서도 한국적이지 않은 잉고 바움가르텐만의 세계가 궁금했다. 한국에서 어떤 매력을 느끼는지, 그 매력을 어떻게 그려내는지 등 한국을 바라보는 잉고의 관점이. When we become familiar with a landscape, we often pass by it without much thought or feeling. Yet, there are those who, through careful observation, manage to transform the familiar into the unfamiliar and the ordinary into the beautiful, expressing it through drawing. One such individual is the German painter Ingo Baumgarten. He explores the structures and materials of architecture in everyday life, weaving his unique imagination into a distinct storytelling style. Encountering Ingo's artwork feels like being drawn into a new world, much like being pulled into "Alice in Wonderland." This prompts us to revisit the landscapes we once overlooked. And this is the beginning of the story of Ingo, who has been observing Seoul after living in Korea for 16 years and interpreting its houses and buildings in his own way, and engaging with the local people. Born in Hanover, West Germany, later raised up in a small town close to Düsseldorf, Ingo spent his school days there. He always longed for the rich culture of the big cities and set off for Paris to pursue his dream of becoming an art student and a young artist. After ending his studies in Germany, Ingo was accepted and invited to the Institute of Higher Studies in Visual Arts Paris to study. Not limiting himself to Paris, he also traveled to Taiwan, Japan, and Korea. Embracing a multicultural perspective, Ingo settled in Korea in 2008, becoming a professor at Hongik University to teach fine art. Captivated by the concrete houses built between the 1970s and 1990s, he brings Korean homes and architecture to life on canvas. Ingo Baumgarten’s fascination with Korean houses can be traced back to his upbringing in Europe. In most parts of Europe, houses are built uniformly, with specific regulations governing aspects like roof dimensions and room layouts. There are strict laws in place, and houses typically require about 20 years to undergo renovations. In contrast, Korea displays a stark contrast between tradition and modernity, with each home having a unique structure and design. This contrast and unique features of each house caught Ingo’s eyes. And he was inspired by the roof, something many Koreans might pass by without a second thought. “It felt like hands clasped together in prayer,” he remarked. From the foreigner’s point of view, Korean homes were a source of inspiration. By magnifying particular elements of Korean houses and buildings, and blending them with his own imagination, he portrayed the landscapes of Korea in his art. was curious about Ingo Baumgarten's unique world, one that feels both distinctly Korean and yet not, through the eyes of a foreigner. What was it about Korea that attracted him? How did he translate that allure into his work? And how does Ingo perceive the country?
자연과 사람 예술의 어울림
스페이스미조
Creating intricate synergy with nature, people, and art
Space Mijo
보통 건축 설계에 반영해야 하는 주변 상황이나 맥락을 ‘콘텍스트(Context)’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이 때문에 건축가에게 있어 콘텍스트는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하는데요. 도시재생이라면 더욱더 이 콘텍스트는 건축가에겐 중심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실험과 도전으로 기존 건축물과 차별화하면서도, 기존 건축물이 가진 주변의 맥락과 어울림은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 명제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낯설면서도 익숙한 공간이 탄생했습니다. 바로 스페이스미조입니다. 남해안의 드넓은 바다, 어선이 그득한 미조항, 그 뒤로 펼치는 산과 여러 섬이 중첩되어 만들어낸 한국화에서 볼 법한 풍경. 이 중심에 스페이스미조를 설계한 박석희, 이선희 건축가가 있습니다. 두 건축가는 미조항의 콘텍스트를 한국의 미감으로 풀어내기 위해 기존 건물의 골자는 그대로 두고, 미조항의 풍경과 어울리도록 스케일은 줄여갔습니다. 《기아 디자인 매거진》이 ‘스페이스미조’를 선택한 이유입니다. 건축가로서 도전과 시도를 통해 복합문화공간이라는 현대적 이름을 달았지만 한국적 미감으로 풀어내 미조항의 풍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어울림. 《기아 디자인 매거진》에서 두 건축가가 써 내려간 스페이스미조의 이야기를 따라가 봅니다. 필자는 몇 해 전부터 ‘천년의 탐사대’를 꾸려, 한국 건축의 흔적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최근에 알게 된 것은 부여에서 시작해, 고(句)려, 백제, 신라, 다시 고려, 그리고 조선.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움에 대한 한국인의 미감이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으며, 전 국토에 걸쳐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발견의 한복판에 서면 필자는 한국의 건축가로서 이것을 현대 건축에 스며들도록 하고자 하는 시대정신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고유섭 선생이 우리나라의 미감을 정의한 ‘구수한 큰 맛’을 교본 삼아, 건축을 해나가면서, 필자의 설계는 도면에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각의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스페이스미조는 이러한 감각의 복합적인 상승 관계를 이끌어내는 작업이었다. In architecture, the word 'context' usually refers to the surroundings or factors that must be reflected in a design. For this reason, context is often a source of inspiration for architects, especially when it comes to urban regeneration. Context is even more central for architects when designing new buildings, as they need to experiment and differentiate themselves from the existing architecture, while still blending in with the surroundings and existing buildings. Space Mijo is a fine example of the successful fusion of unfamiliar and familiar elements. Mijo Port boasts a picturesque view with the vast blue ocean dotted with fishing boats, and layers of small islands and mountains. Two architects, Park Seokhee and Lee Sunhee created Space Mijo by redesigning an old warehouse to enable it to blend in at the Mijo Port whilst having a distinctive touch of Korean aesthetics and retaining its basic structure. Space Mijo is designed as a cultural complex yet has elements of traditional Korean aesthetics, thanks to the designers’ successful take on incorporating distinctive Korean aesthetics into its design. This makes Space Mijo a perfect item to be in the spotlight in the Kia Design Magazine. Read on to learn all about the story of Space Mijo written by the two architects. For many years, we have traveled around the country, exploring, and discovering different Korean architecture. Over time we learned that the Korean sense of beauty has changed over time, as different dynasties have risen and fallen, from Buyeo to Joseon. We also learned that elements of Korean aesthetics have been dispersed over time, and regions are intricately connected across the entire country. Upon discovering all this, we became eager to translate it into contemporary Korean architecture. Late art historian, Ko Yoosup, summarized traditional Korean beauty as ‘profound savory taste’. We used this as a guideline in the Space Mijo project, which led to some wonderfully complex sensory beauty that could not be expressed in a drawing. The project was all about achieving a complex synergy of sensory beauty.
새로움을
향한 무한한 자유
Unlimited Freedom Toward Newness
자개, 레진, 나무 등을 재료로 활용해 독특한 스타일링을 선보이는 헤어 아티스트 가베와 식물에 인공적 재료를 더해 외계 식물이라는 이색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플랜트 아티스트 하이이화. 익숙한 소재로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두 아티스트의 작업은 ‘상반된 개념의 창의적 융합(Opposites United)’에 대한 신선한 영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더 이상 새로운 게 있을까 싶은 영역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신선한 작품을 맞닥뜨리며 경이로운 감정이 고양될 때가 있습니다. 헤어 아티스트 가베와 플랜트 아티스트 하이이화는 이런 놀라움을 선사하는 작가입니다. 자개, 레진, 나무 등을 소재로 헤어 스타일링의 신세계를 보여주는 가베는 영감의 원천이 어린 시절의 기억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동양미술과 불교에서 영향을 받은 하이이화는 식물과 전자부품으로 낯선 외계 식물을 만듭니다. 두 아티스트는 익숙함에서 출발해 작품세계를 자유롭게 확장하며 새로운 창의성(New Creativity)을 선보입니다. 안녕하세요. 헤어 아티스트 가베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인공적인 요소와 식물을 결합해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미지 세계의 외계 식물을 만드는 플랜트 아티스트 하이이화입니다. Gabe, a hair artist, creates unique hairstyles using mother-of-pearl, resin, and wood, while HA I I HWA, a plant artist, creates alien plants by adding artificial materials. The work of these two artists, who create new visual experiences with familiar materials, provides fresh inspiration for “Opposites United.” Sometimes, in an area where you think there cannot be anything new anymore, you come across something fresh that exceeds your wildest expectations and inspires a sense of wonder. Hair artist Gabe and plant artist HA I I HWA are two such surprising artists. Gabe, who uses mother-of-pearl, resin, wood, and other out-of-the-ordinary materials to showcase a new world of hairstyling, confesses that his inspiration comes from childhood memories. HA I I HWA, on the other hand, is influenced by Eastern art and Buddhism. She creates strange alien plants using plants and electronic parts. These two artists offer viewers a new sense of creativity by starting from the familiar and pushing the boundaries of their respective art worlds. Hello. I’m hair artist Gabe. Hello. I’m HA I I HWA, a plant artist who combines man-made elements with plants to create alien plants from uncharted worlds that we can’t experience here in the real world.
Let’s
Enjoy Your Discovery!
Let’s Enjoy Your Discovery!
지난 6월 기아글로벌디자인(이하 기아디자인)으로부터 조직 활성화를 위한 워크숍 설계를 제안받았다. 자동차 디자인은 많은 디자이너들이 서로 협업하며 결과물을 완성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디자이너 개인의 크레딧보다는 조직을 우선하는 편이다. 특히 커다란 포부와 의욕을 가지고 입사한 디자이너가 디자인 작업에 몰두한 지 3~5년 정도 되면 리셋을 위한 리프레시가 필요해진다. 이를 위해 창의적 사고를 재충전하는 맞춤형 1일 워크숍 기획이 필요하다는 게 골자였다. 워크숍을 통해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걸까, 조심스레 물어보니 몇 가지로 압축할 수 있었다. 밑줄이 필요한 단어로 빼곡한 문장들에는 구성원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기아디자인의 진심이 가득 담겨있었다. 특히 ‘오퍼짓 유나이티드Opposites United’라는 철학 아래 많은 이들의 영감을 총체적으로 모아 결과물을 도출하는 조직 입장에서, 그 근본을 이루는 디자이너 개인의 정체성과 브랜딩에 신경을 쓰고 계속 소통하려 노력한다는 점은 명징했다. 게임 디자인을 바탕으로 몰입형 워크숍(immersive workshop)을 진행하는 우리 ‘놀공NOLGONG’의 장기를 활용하면 조직과 개인에게 모두 도움 되는 흥미로운 장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In June 2023, I was approached by the Kia Global Design Division (hereinafter Kia Design) to organize a workshop that would revitalize their organization. Automotive design is a process where many designers collaborate to complete a product, so the organization tends to take precedence over individual designer credits. That is especially true for designers who joined the company with great ambition and motivation yet could still use a boost of momentum to reset themselves after three to five years of such immersive design work. The key was to design a customized one-day workshop to recharge their creative batteries. After carefully asking them what they wanted to do during the workshop, I narrowed it down to a few things. Kia Design’s sentences, filled with words that needed to be underlined, contained the organization’s sincere desire to help its members. In particular, it was clear that as an organization that collectively harnesses the inspiration of so many people to produce results under Kia’s design philosophy, “Opposites United,” it still cares about the identity and branding of each designer—which becomes the organizational foundation—and tries to continue communicating with them on an ongoing basis. I thought we could create an exciting opportunity that would benefit both the organization and the individuals themselves by leveraging NOLGONG’s extraordinary ability to conduct immersive workshops based on game design.
디자이너 로베르트 클로스.
그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Designer Robert Klos. Hear his various stories.
아주 어릴 때부터 자동차, 기차, 자전거를 참 좋아했어요. 몇 살인지 기억도 안나네요. 기계적인 면모를 띤 움직이는 사물에 항상 관심을 빼앗겼죠. 아파트 창밖을 내다보며 저 멀리 지나가는 열차의 화물칸 갯수를 세곤 했다니까요. 동네에 처음 보는 차가 지나가거나, 큰 트럭을 발견할 때면 뛸 듯이 기뻐했던 경험도 기억나네요. (웃음) 또 다른 취미는 그림 그리기였어요. 건축물이나 아파트 설계도를 그렸는데, 건축사무소에서 일하시던 할머니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어요. 물론 자동차도 자주 그렸습니다! TV에 나온 F1 자동차를 따라 그리곤 했죠. 제가 디자인에 관심을 가진 특별한 계기가 있어요. 14살 때 제 사촌이 제품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었어요. 그가 만든 작업물을 본 순간 깨달았죠. ‘내가 하고 싶은 건 바로 이런 거였어!’ 저는 제품 디자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릴 적부터 늘 제 넋을 빼놓던 자동차를 디자인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어요. 하지만 목표를 이루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어요. 당시 제가 살던 폴란드 바르샤바에는 자동차 회사가 없었고,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할 길도 묘연했어요. 그래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공부를 했답니다. 시간이 흘러 2017년부터는 기아유럽디자인에서 일할 수 있었죠. 지금 이렇게 《기아 디자인 매거진》과 인터뷰를 하는 거 보니, 결국 꿈을 이룬 게 아닌가 싶네요. 하하. Ha, that’s a very tricky yet straightforward question. The answer to it might be a bit too long, though, if I would go into every detail. Anyway… Ever since I can remember, I have been fascinated by cars, trains, and bicycles; I have no idea why. Everything that was moving and had some technicality always got my attention :). I remember looking out the window of the flat I lived in as a kid and counting wagons of trains passing by in the distance. I remember feeling super happy seeing a new car or big truck on our street. Also, for some reason, I can’t explain why I was drawing a lot: architecture and plans of the apartments (I think my grandma, who was working in the architecture office, influenced me a bit; my dad is a fantastic drawer, too, by the way!) And, of course, I was drawing cars! Especially F1 Cars when I watched it on TV (I was six years old). Things evolved quite a bit over the years, and finally, when I was 14, I got interested in art and design. My cousin was studying Product design and showed me some stuff he was working on. BUM, that was it! I decided to take it a step further and try car design, even though we didn’t have any car design school or car industry in Poland. It took some time, some moving to different countries and learning, but hey, now I am here, talking to Kia Design Magazine, so I think things worked out quite well in the end :)
선입견을 넘어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드랙 아티스트 나나영롱킴
Beyond Prejudice: Advancing Toward a World of Infinite Possibilities — Nana Youngrong Kim, Drag Artist
나나영롱킴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드랙 아티스트다.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배우의 길을 모색했지만, 남녀의 고정된 성역할과 로맨스가 주를 이루는 관습적 연기에서 한계를 느끼던 그는 우연히 드랙 아티스트를 조명한 영화 〈프리실라〉와 〈헤드윅〉을 접했고, 영화에 등장하는 드랙 아티스트의 화려한 의상과 소품에 마음을 빼앗기며 드랙 문화에 빠져들었다. 그때부터 현재까지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기존의 클럽 무대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문화 예술 장르에 도전하며 ‘성소수자들만의 문화’라는 드랙의 선입견을 허무는 데 지속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브라운아이드걸스, 마마무, 박효신, 유노윤호 등 다양한 K팝 아티스트와 협업했고, 럭셔리 브랜드 베르사체, 모스키노, 로에베, 루이 비통 등의 러브콜을 받았으며, 코스메틱 브랜드 헤라HERA의 캠페인 모델로 활동하며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발매했다. 그는 드랙을 주제로 한 개인 다큐멘터리 〈NA, NA〉를 제작하고, 한국 드랙 아티스트로는 유례없이 사진전을 여는 등 드랙 문화의 확장성을 계속 증명하는 중이다. Korea’s drag culture, once considered “cross-dressing” and enjoyed by just a small group of people, is now entering a new phase. Today, different definitions and categories of drag culture are emerging, and drag artists are expanding into a variety of genres. One name on this new cultural map is Nana Youngrong Kim, one of Korea’s leading drag artists. As a drag artist, Kim embraces freedom of expression and the diversity of genres, direct proof of his belief that drag is the act of being able to be absolutely anything. Drag culture is a liberating medium in that it can help anyone in the world move forward in the direction of their choice. Kia Design Magazine met up with Kim and listened to his perspective and attitude to change many of the stereotypes surrounding drag and highlight the infinite possibilities of drag culture as a driving force to enrich our times.

선입견을 넘어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드랙 아티스트 나나영롱킴 Beyond Prejudice: Advancing Toward a World of Infinite Possibilities — Nana Youngrong Kim, Drag Artist

‘여장남자’로 치부되며 소수의 인원이 향유하던 한국의 드랙 문화가 새로운 흐름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드랙 문화에 대한 다양한 정의와 카테고리가 등장하며 드랙 아티스트는 다양한 장르로 확장을 시도 중입니다. 이런 새로운 지형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을 대표하는 드랙 아티스트, 나나영롱킴입니다. 드랙 아티스트로서 나나영롱킴은 표현의 자유로움과 장르의 다양성을 소화하며 자신의 신념을 몸소 증명하고 있습니다. 바로 ‘드랙이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행위’라는 믿음입니다. 드랙 문화는 세상 모든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자유를 부여하는 매개와도 같습니다. 《기아 디자인 매거진》은 나나영롱킴을 만나 드랙을 둘러싼 고정관념을 바꾸고, 우리 시대를 더욱더 풍요롭게 만드는 원동력으로서 드랙 문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하는 그의 관점과 태도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Korea’s drag culture, once considered “cross-dressing” and enjoyed by just a small group of people, is now entering a new phase. Today, different definitions and categories of drag culture are emerging, and drag artists are expanding into a variety of genres. One name on this new cultural map is Nana Youngrong Kim, one of Korea’s leading drag artists. As a drag artist, Kim embraces freedom of expression and the diversity of genres, direct proof of his belief that drag is the act of being able to be absolutely anything. Drag culture is a liberating medium in that it can help anyone in the world move forward in the direction of their choice. Kia Design Magazine met up with Kim and listened to his perspective and attitude to change many of the stereotypes surrounding drag and highlight the infinite possibilities of drag culture as a driving force to enrich our times.

About the Artist

나나영롱킴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드랙 아티스트다.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배우의 길을 모색했지만, 남녀의 고정된 성역할과 로맨스가 주를 이루는 관습적 연기에서 한계를 느끼던 그는 우연히 드랙 아티스트를 조명한 영화 〈프리실라〉와 〈헤드윅〉을 접했고, 영화에 등장하는 드랙 아티스트의 화려한 의상과 소품에 마음을 빼앗기며 드랙 문화에 빠져들었다. 그때부터 현재까지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기존의 클럽 무대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문화 예술 장르에 도전하며 ‘성소수자들만의 문화’라는 드랙의 선입견을 허무는 데 지속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브라운아이드걸스, 마마무, 박효신, 유노윤호 등 다양한 K팝 아티스트와 협업했고, 럭셔리 브랜드 베르사체, 모스키노, 로에베, 루이 비통 등의 러브콜을 받았으며, 코스메틱 브랜드 헤라HERA의 캠페인 모델로 활동하며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발매했다. 그는 드랙을 주제로 한 개인 다큐멘터리 〈NA, NA〉를 제작하고, 한국 드랙 아티스트로는 유례없이 사진전을 여는 등 드랙 문화의 확장성을 계속 증명하는 중이다.

Nana Youngrong Kim is one of Korea’s most recognized drag artists today. Kim studied theater and film in university to pursue a career as an actor but felt limited by conventional acting, which is dominated by fixed gender roles and romance stories between men and women. After stumbling upon The Adventures of Priscilla, Queen of the Desert and Hedwig and The Angry Inch, which shed light on drag artists, he was fascinated by the colorful costumes and props of the drag artists in the films and immediately fell in love with drag culture. In the 18 years since then, he has continued to play a role in breaking down the prejudices about drag as a queer culture by venturing beyond the traditional club stage and into various genres of arts and culture. Over that same time, he has collaborated with a wide array of K-pop artists, including Brown Eyed Girls, Mamamoo, Park Hyo Shin, and U-Know Yunho. He has also been approached by luxury brands such as Versace, Moschino, Loewe, and Louis Vuitton. HERA, a Korean cosmetics brand, chose him as a campaign model and released several collaborative products. Most recently, he has continued to prove the expansiveness of drag culture by producing a personal documentary on the subject of drag, NA, NA, and holding a photo exhibition, which was unprecedented for a Korean drag artist.

‘드랙drag’은 사회가 부여한 정의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모습과 행위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문화를 일컫는다. 우리가 어림잡아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유서 깊은 역사를 갖는데, 드랙의 어원을 설명하기 위해서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희곡을 쓰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다. 여성이 무대에 서지 못하던 당시에는 남성이 극 중 여성의 역할을 연기했는데, 이때 남성이 입은 거대한 드레스 자락이 ‘끌린다(drag)’라고 말했던 것에서 따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1930년대 이후 드랙은 LGBTQ+ 문화와 결합한다. 그때부터 시스젠더 게이 남성이 화려한 메이크업과 의상을 통해 ‘여성성’을 부각하는 드랙퀸을 선보이며 드랙 문화를 이끌어 왔지만, 시간이 흐르며 오늘날 드랙의 양상은 점점 다채로워지고 있으며, 아티스트마다 드랙에 대해 내리는 정의 또한 다양하다.

“Drag” refers to a culture where people are free to look and act the way they want to, without being bound by socially imposed definitions. In fact, it actually has a much longer history than most people assume. To explain the etymology of drag dates all the way back to Shakespeare’s time, when he was writing plays. At a time when women weren’t allowed on stage, men played the roles of women in his plays, and it’s believed that the hems of the huge dresses they wore dragged and became the source of the word “drag.” Since the 1930s, drag has become intertwined with LGBTQ+ culture, with cisgender gay men leading the way while they show themselves off as drag queens by emphasizing their “femininity” through colorful makeup and costumes. Over time, however, aspects of drag have become increasingly diverse, with different artists defining the concept differently.

드랙을 둘러싼 여러 해석과 시도의 기저에 깔린 것은 드랙이 지닌 예술성이다. 드랙은 표현력과 창의성을 동원한 움직임을 통해 성규범에 따라 부여된 사회적 역할을 통합하고, 금기를 깨면서, 공연 예술의 저변을 넓혀 왔다. 무대에서 시작한 담론을 예술적 창조 행위로 성장시킨 드랙 문화는 예술의 적통으로 여겨지는 미술기관에서도 자신의 영역을 구축 중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동시대 미술관인 휘트니 미술관이 역량 있는 신진 작가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지난 2017년 ‘퍼피스 퍼피스Puppies Puppies’는 자유의 여신상 의상을 입고 대중 앞에 서는 드랙 퍼포먼스, 〈Liberty〉를 선보이고, 세계적인 공공미술 기관인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Hayward Gallery가 2018년 기획전 《DRAG: Self-portraits and Body Politics》을 통해 저항을 위한 정치적 도구로서의 드랙의 의미를 살펴본 것은 드랙이란 시류를 다루는 다양한 예일 것이다.

Underlying the many interpretations and attempts to define drag is its artistry. Through movements that mobilize expressive power and creativity, drag has unified social roles assigned by gender norms, broken taboos, and pushed the boundaries of performance art. Drag culture grew a discourse on stage to an artistic act of creation, and now it’s establishing its own realm even in art institutions that are considered to be legitimate exhibitors of art. In 2017, 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a leading contemporary museum in the U.S., presented Liberty, a drag performance in which the contemporary artist Puppies Puppies dressed up as the Statue of Liberty, as part of the Whitney Biennial, where talented emerging artists take center stage. A year later, the Hayward Gallery in London, a global public art institution, explored the meaning of drag as a political tool for resistance through the 2018 exhibition DRAG: Self-portraits and Body Politics. These represent just two examples of how the trend of drag is gaining more attention.

우리 문화 속에서도 드랙은 꽤 양감 있는 역사를 가진다. 나나영롱킴이 드랙 공연을 펼치는 ‘트랜스’는 오픈 30주년이 다 돼간다. 그런데도 드랙 하면 최근에 생긴 재미있는 문화로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그도 그럴 것이 드랙 문화가 수면 위로 본격적으로 떠오른 지 6~7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나영롱킴이 올해로 18년 차 드랙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밝힐 때마다 사람들이 놀라워하며 나이를 되묻는 상황이 종종 발생할 정도로, 우리 사회는 드랙을 이제 막 태동기를 지난 문화로 간주하기 일쑤다. 18년 전부터 드랙 아티스트로 활동했다는 말은 곧 지금처럼 빛을 보기까지 10년 넘는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다는 뜻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나영롱킴은 드랙 문화에 대한 선입견을 불식시키고 더 많은 사람과 향유하기 위해서 어떤 행보를 보였을까.

Even in Korean culture, drag has a relatively long history. The drag queen club Trance, where Nana Youngrong Kim currently performs in drag, is approaching its 30th anniversary today. Still, most people think of drag as a “fun part of the culture” that emerged only recently. That’s because it’s only been about six or seven years since drag culture surfaced meaningfully in Korean society. So much so, in fact, that when Kim reveals that he’s been a drag artist for 18 years, people are often surprised and ask him how old he is; many people in Korean society tend to think of drag as something that just recently emerged. Yet Kim has been a drag artist for 18 years, which means he has had to wait over a decade to win recognition for what he’s been doing all along. Over the years, what has Kim done to dispel prejudices about drag culture and enjoy it with a broader audience?

“초창기에는 ‘나나영롱킴. 댄서, 싱어, 퍼포먼서’라고 적은 명함을 들고 돌아다니면서 파티가 열리면 불러달라고 말했어요. 드랙쇼 클럽에 고정으로 나가 공연을 하는 방법이 가장 쉬웠지만 이 재미있는 드랙쇼를 우리만 즐기긴 싫었어요. 어떻게든 외부에 알리고 싶었죠.
지금 보면 패기가 넘쳤어요.”
— 드랙 아티스트 나나영롱킴

“In the early days, I would go around with business cards that said “Nana Youngrong Kim. Dancer, singer, performer,” and tell people to call me if they had a party. The easiest way to work was to perform regularly at drag show clubs, but I didn’t want to keep this fun drag show to ourselves. I wanted to get it out there somehow. Looking back on it now, I was very ambitious.”
— Nana Youngrong Kim, Drag Artist

당시 드랙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고, 스마트폰이나 소셜 미디어도 없던 시절이었다. 낯선 이에게 드랙 문화를 알리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명함 뿌리기라니,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확신과 애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시도다. 하지만 패기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었다. 드랙은 화장과 의상, 액세서리 등을 통해서 매력적인 시각 이미지를 전달하는 게 아주 중요한 행위 예술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공연에 설 수 있을 만큼 꾸미기 위해서는 드랙으로 번 돈 중 절반을 다시 드랙을 준비하는 데 써야 했다. 한 달에 서너 번 있는 공연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드랙을 지속하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나나영롱킴은 생활을 영위하는 일부터 해결하면서 돈을 모아야겠다고 결론 내리고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전업 직장인으로 생활한 지 3년 정도 되었을 무렵, 나나영롱킴은 온라인에서 드랙 아티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장면을 목격한다. 미국의 유명 드랙 서바이벌 프로그램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RuPaul’s Drag Race〉 시즌 8에 ‘김치’라는 이름으로 출연한 한국계 미국인이 Top 3에 들면서 한국에서 화제를 모은 것이다.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 드랙 아티스트 김치의 활약은 나나영롱킴에게 다른 자극으로 다가왔다. 드랙 아티스트로의 복귀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야근을 마치고 우연히 회사 책상 모니터에 비친 자기 모습을 마주하면서, 자기가 소망하는 자리는 사무실 책상이 아니라 무대라는 결론을 얻는다. 그는 그날로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드랙 신에서 활동을 재개한다.

At the time, very few people knew anything about drag, and there were no smartphones or social media. The best way to introduce strangers to drag culture was by handing out business cards! It was an impossible endeavor if Kim didn’t have the confidence and love for what he was doing. However, ambition alone was not enough. Drag is a performance art that relies heavily on conveying attractive visual images through makeup, costumes, and accessories. In order to make sure he looked good enough—from head to toe—to perform, he had to spend half of the money he made from drag performances just to get ready for the next one. With three to four performances a month, it was impossible to keep up with drag art while also paying the bills. Eventually, Nana Youngrong Kim decided that he needed to save money, and so got a day job to make a living and stopped performing.

Kim had been working full-time for about three years when he saw some online chatter about a drag artist. A Korean-American named Kim Chi, who appeared on season 8 of the famous American drag reality show RuPaul’s Drag Race, made waves in Korea when she placed in the top three. The public’s curiosity about the drag artist sparked a different motivation for Nana Youngrong Kim. It made him think about returning to drag art. One day, after working overtime, he stumbled upon his reflection on the monitor at the office and realized that the place he wanted to be was not at his office desk but on the stage. He quit his job that same day and resumed his activities in the drag scene.

나나영롱킴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자기 영역을 구축하고 드랙 아티스트로서 대중과 호흡하는 데 성공한다. 초창기에 비해 사뭇 다른 양상이 펼쳐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소셜 미디어의 역할에 주목한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고 많은 사람이 소셜 미디어에 익숙해지면서 이제 모두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누구나 원한다면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찍어 업로드하며 수많은 사람에게 송출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것이다. 이런 상황은 나나영롱킴을 비롯한 드랙 아티스트가 자신의 가능성을 아낌없이 표현하며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는 계기로 기능했다. 그런데 정말 소셜 미디어가 모든 것을 바꾼 걸까?

Kim succeeded in establishing himself relatively quickly and connecting with the public as a drag artist. Why did it play out so differently than in his early days? The short answer is social media. With the ubiquity of smartphones and everyone’s familiarity with social media, it’s become a time when everyone can reveal themselves for who they really are. Anyone can take a photo or video of themselves, upload it, and send it out to a massive audience if they want to. That has allowed drag artists like Kim to capture the public’s attention while also freely expressing their potential. But has social media really changed everything?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삶을, 자기 인생을 살잖아요. 자기가 주인공이면 화려해도 되지 않을까.
새드보다는 해피엔딩, 안 그래요?”
— 드랙 아티스트 나나영롱킴
(헤라 2021 ‘I AM CAMPAIGN’ 중에서)

“Everyone lives their life, their own life, and if you’re the main character in it, you can be glamorous. It’s a happy ending, not a sad one, right?”
— Nana Youngrong Kim, Drag Artist
(from HERA 2021 “I AM CAMPAIGN”)

코스메틱 브랜드 헤라의 ‘I AM CAMPAIGN’ 영상에서 나나영롱킴은 우리 모두가 자신을 위해 각자의 삶을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길 제안한다. 커머셜 광고의 문법 안에서 던지는 문안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대중이 그를 바라보며 무엇을 기대하고 충족할 수 있는지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평소 모습에서 벗어나 여성성과 남성성 모두를 탐험하고 실험하는 드랙은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교란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진정한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싶지만, 사회의 시선이 두려워 선뜻 실행하지 못한 많은 이에게 해방감과 통쾌함을 선사하는 매개 역할을 맡는다. 규격화된 사회에서 해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대중은 자연스럽게 드랙 문화에 호기심을 갖게 되고 드랙 문화를 향유하고 소비하는 자발적인 구성원으로 변한다. 드랙 문화가 21세기 들어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얻게 된 데에는 이런 카타르시스의 성취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밥상을 차려줘도 못 먹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나나영롱킴의 성공은 대외적인 상황이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가 아니다. 그가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은 머릿속으로 생각한 건 어떻게든 빠르게 실현하는 실행력에 있다. 스스로 고백하길 자신의 가장 큰 무기라고 지칭하는 실행력은 방대한 활동 영역에서 잘 드러난다. 무대 공연을 차치하고도 나나영롱킴이 활동하는 범주는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뮤직비디오, 브랜드 캠페인 모델, 광고 등 다른 이에 비해 굉장히 넓은 편이다. 특히 그는 작년과 올해 한국의 드랙 아티스트로서 유일무이하게 전시회까지 열었다. 작업의 피사체 역할 뿐 아니라 아이디어를 내고 콘셉트를 잡고 촬영을 구성하고 모델 캐스팅과 스타일링까지 도맡는 총괄 디렉터로 전시를 준비하고 개최했다. 그가 이처럼 기존의 역할에서 벗어나 드랙 아트의 확장성을 증명하며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었던 동력은 어디서 기인할 걸까? ‘드랙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라고 믿는 그의 태도와 관점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In the “I AM CAMPAIGN” video for the cosmetics brand HERA, Kim suggests we all take charge of our own lives and be the hero in it. It’s a statement made within the grammar of commercial advertising, but it’s also an opportunity for the public to clearly see what they can expect and fulfill when they look to him as a role model. By stepping out of your comfort zone and exploring and experimenting with both femininity and masculinity, drag culture is not only about disrupting gender stereotypes. Indeed, for many people who want to express their true selves unapologetically but are afraid of what society will think of them, it serves as a medium that presents a sense of liberation and exhilaration. Upon discovering the possibility of liberation from the norms of an always-follow-the-rules society, the public naturally shifts more toward curiosity about drag culture and becomes voluntary members of drag culture who enjoy and consume it. The achievement of this catharsis has played a crucial role in the explosion of public interest in drag culture in the 21st century.

Yet many people can’t eat even if the table is set for them. Nana Youngrong Kim’s success is not a natural outcome of external circumstances; the secret to his public appeal is his ability to turn ideas in his head into reality quickly. As he puts it, the ability to execute is his greatest weapon, and the ability is evident in his vast range of activities. Aside from stage performances, Kim’s range of activities is much broader than many other drag artists and includes movies, dramas, documentaries, music videos, modeling for brand campaigns, and commercials. In particular, he was the only Korean drag artist to hold gallery exhibitions last year and this year. In addition to being the subject of artworks, he prepared and organized the exhibitions as an executive director. He devised the ideas and concepts, organized the photoshoots, and cast and styled the models. Where does he find the drive to break out of his traditional role and try different things, proving the scalability of drag art? The answer lies in his attitude and perspective that drag can be anything.

“거리를 둘러보세요. 실제 드랙 퀸 같은 차림으로 거리를 걷는 여성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드랙 아트에서 중요한 건 여장이 아니에요. 인물, 동물, 사물 등 세상 무엇으로든 변신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 드랙 아티스트 나나영롱킴

“Look around the streets, and you won’t see women walking down the street dressed like typical drag queens. The essence of drag art isn’t about cross-dressing. It’s the ability to transform into anything in the world—people, animals, and objects.”
— Nana Youngrong Kim, Drag Artist

드랙에 대한 관심이 대중문화의 수면 위로 올라온 상황에서 나나영롱킴은 주어진 상황을 더 멀리 내다본다. 과장된 화장과 가발, 화려한 액세서리를 걸치고 굴곡 있는 몸매를 드러내는 방식만이 드랙 아트라고 생각하는, 소위 ‘여장남자’에 대한 고정관념이 여전히 팽배하기 때문이다. 만일 여장이 드랙 아트의 전제가 아니라면, 무엇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까? 그는 행위자가 상상하는 그 어떤 모습으로든 분할 수 있는 자유로움에 주목하길 당부한다. 아티스트가 욕망하는 어떤 것이든 자유롭게 표현하는 무한한 가능성이 그가 생각하는 드랙 예술의 요체인 셈이다.

지난해 치른 첫 번째 개인전의 콘셉트는 애니메이션 〈은비까비〉에서 영감을 받아 〈더 스포트라이트The Spotlight〉 연작과 〈옐로우 맘바Yellow Mamba〉 연작으로 구성했다. 전자가 정석대로 일을 처리하는 은비라면, 후자는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고 일을 처리하는 까비로 서로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를 위해 앞에서는 풍성한 헤어 스타일링 등 과거의 드랙 하면 상상하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분했고, 뒤에서는 화려한 노란색 드레스에 검은 복면을 쓰고 검은색 권투 장갑을 끼는 등 현재에 맞게 진화하는 드랙의 방향성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유구한 전통을 가진 과거의 드랙과 새로운 예술로 진화하는 동시대 드랙의 타임라인에서 나나영롱킴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선택해 드러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사진으로 증명한다. 〈더 스포트라이트〉 속 짙은 화장과 풍성한 헤어, 〈옐로우 맘바〉 속 얼굴 전체를 뒤덮은 새까만 가면, 그 무엇도 자아를 감추는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더욱더 과감하게 드러내는 도구다. 제한 없는 표현을 위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드랙 아트의 가능성을 이해하고 자신의 활동에 반영해온 나나영롱킴의 유연한 시각은 자신을 냉철하게 인식하는 면모에서도 엿볼 수 있다.

With interest in drag rising to the surface of pop culture, Kim looks far beyond the obvious. The stereotype of the so-called “crossdresser”—in which many people believe that the only way to make drag art is to wear exaggerated makeup, wigs, colorful accessories, and show off one’s curved figure—is still very much alive and well. But if cross-dressing is not the premise of drag art, what is? Kim calls attention to the freedom of the performer to transform into whatever form they can imagine. The infinite possibilities for artists to express whatever they desire is what he considers the essence of drag art.

The concept for Kim’s first solo exhibition last year was inspired by the animation Eunbi & Kkabi’s Once Upon a Time and consisted of the series The Spotlight and Yellow Mamba. The character in the former series is Eunbi, who does things according to the rules, while the latter is Kkabi, who acts and does things according to her emotions. To this end, in The Spotlight, Kim played a stereotypical role of past drag—with voluminous hair styling, for example—while in Yellow Mamba, he wore a colorful yellow dress, black mask, and black boxing gloves to show the evolving direction of drag in the present clearly. When viewed through a timeline of past drag (with its long tradition) and contemporary drag (which is evolving into a new art form), Kim’s photographs demonstrate his confidence in the freedom to choose and present himself as he pleases. The heavy makeup and full-bodied hair in The Spotlight and the full-face, jet-black mask in Yellow Mamba are not devices to hide the self. On the contrary, they are tools for revealing himself more boldly. Kim understood the potential of drag art to be anything for unlimited expression and has reflected this through his activities. Kim’s flexible viewpoint can also be seen in his keen self-awareness.

“사람들은 종종 페르소나와 제 자신 사이에 괴리감을 느끼지 않는지 묻곤 해요. 하지만 사실 저는 페르소나를 설정하지 않아요. 메이크업을 하고 화려한 의상으로 변신한 존재도 나나영롱킴이고, 그렇지 않은 자연스러운 상태 역시 모두 나나영롱킴입니다. 본질적인 차이가 없어요.”
— 드랙 아티스트 나나영롱킴

“People often ask me if I don’t feel a sense of separation between my persona and myself, but the truth is, I don’t set up a persona. I am Nana Youngrong Kim when I’m in makeup and fancy clothes, and I am Nana Youngrong Kim when I’m in my natural state. There’s no intrinsic difference.”
— Nana Youngrong Kim, Drag Artist

드랙 아티스트를 설명할 때 ‘페르소나persona’라는 단어를 자주 듣게 된다. 고대 그리스에서 연극을 올릴 때 배우가 쓰던 가면에서 기원한 페르소나는 개인이 밖으로 표출하는 공적인 얼굴로, 실제 성격과는 다르게 타인의 눈에 비치는 모습을 의미한다. ‘드랙 아티스트는 페르소나를 구축한다’라는 인식이 지배적일 정도로 많은 드랙 아티스트는 페르소나를 설정한다. 실제로는 낯선 사람에게 말을 잘 걸지 못할 정도로 수줍음이 많더라도 당당한 성격의 페르소나를 구축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를 위해서 페르소나의 설정은 매우 유용하다. 하지만 무대에서 내려오고 일상에서 마주하는 본연의 모습과 페르소나 사이의 간극은 드랙 아티스트가 흔히 겪는 심리적 혼란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지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드랙 아티스트인 나나영롱킴은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딱 잘라 말한다. ‘드랙 아티스트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라는 태도로 퍼포먼스에 임하는 것처럼, 그는 자신을 인식할 때도 내면에 있는 여러 특질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긍정하며, 표출할 뿐이다. 이런 면모는 올해 개최한 개인전 《NA, 나》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전시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인 ‘더 페르소나 프리즘The Persona Prism’에 따르면, 페르소나는 나나영롱킴 자신이며 빛이 프리즘을 통해 총천연색으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아티스트 본인 또한 전시회를 통해 내면의 다양한 면모를 표출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즉 자기 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가장해서 연기하지 않고, 자기 안에 이미 존재하는 여러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나나영롱킴이 추구하는 예술적 테마의 핵심이다.

You’ll often hear the word “persona” used to describe drag artists. Originating from the masks worn by actors during theatrical performances in ancient Greece, a persona is a public face that an individual presents to the public. It is different from their actual personality. Many drag artists set their own personas to the point where there’s a common understanding that drag artists build personas. It’s not unusual for someone so shy they can’t talk to strangers to create a persona and project a confident personality. Personas are very useful for outstanding performances. However, the gap between the persona and the real person they are offstage and in their daily lives is a common source of psychological turmoil for drag artists.

Interestingly, Nana Youngrong Kim, the most famous drag artist in Korea right now, is very clear when he says that he doesn’t have a persona. Just as he approaches his performances with the mindset that “a drag artist can be absolutely anything,” when it comes to self-perception, he simply accepts, affirms, and expresses the many qualities within him as they are. This was evident in his 2023 solo exhibition Na, Na. According to one of the exhibition’s main themes, “The Persona Prism,” the persona is Nana Youngrong Kim himself, and just as light spreads through a prism in all its natural colors, so too does the artist express various aspects of his inner self through the exhibition. In other words, it is the core of Kim’s artistic theme not to pretend to be something that is not already there in himself, but to fully show the various aspects that already exist within him.

“사람들을 만나면 늘 듣는 말이 있어요. “해보고 싶은 걸 다 하고 사는 것 같아서 부러워요.” 근데 이게 꼭 저만 가능한 건 아니거든요. 저와 교감하는 대중도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 드랙 아티스트 나나영롱킴

“I always hear something when I meet people: ‘I envy you because you seem to be doing everything you want to do.’ But it’s not necessarily just me. I want the people I interact with to have the courage to say, ‘I can do this, too.’”
— Nana Youngrong Kim, Drag Artist

나나영롱킴이 지금껏 드랙 아티스트로서 행한 수많은 시도는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다’는 통념에 반론을 제기해온 시간으로 바꿔도 큰 무리가 없다. 그가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면 ‘나다움’에 대한 믿음을 바탕 삼아 속도감 있는 실행력으로 구축한 선택의 순간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것을 해낸 이 통쾌한 저항은 제한 없는 변신의 가능성을 품은 드랙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나영롱킴의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평범하고도 중요한 교훈은 고정관념을 잠시 접어두고 ‘나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라는 쉬이 믿기 힘든 사실을 인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걸 표현하는 용기로 가득한 신념 앞에서라면, 비록 시작은 미약할지라도 그 끝은 분명 창대할 지니. 

Kim’s numerous forays into performing as a drag artist could easily be characterized as a time when he has challenged the conventional wisdom that you can’t do everything you want to do. Looking back on his path, Kim’s life has been filled with moments of choice, built on a belief in his own uniqueness, and executed with speed. This exhilarating resistance to accomplish so much is the essence of drag, which holds the potential for unlimited transformation. So perhaps a mundane and important lesson we can learn from Kim’s story is to set aside our stereotypes and recognize the often unbelievable truth: I, too, can be free. With the courageous conviction to express anything and everything, your beginnings will seem humble, so prosperous will your future be.